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동그란도나츠 Aug 30. 2024

잠깐의 우울에서 벗어나는 법

불면과 우울은 한 몸이다. 함께 박멸해야 한다.


일주일째 불면에 시달렸다.


살다 보면 바이오리듬이 깨지는 때가 종종 오기는 하지만, 이렇도록 오래간 것은 처음이었다. (보통 하루를 넘기지 않는다.) 처음 불면이 시작된 것은 일요일 밤이었다. 잠이 들려던 찰나, 이미 다 써놓은 글을 저장하지 않고 컴퓨터를 닫았다는 사실이 생각나 벌떡 일어나 컴퓨터 앞에 앉았다. 다행히 임시 저장파일이 생성돼 있었다. 불안한 마음에 저장 버튼을 열댓 번 클릭한 뒤에야 안심하고 다시 침실로 돌아왔다. 문제는 이미 잠이 달아났다는 거지. 피곤하지만 잠에 들지 못하는 상태로 새벽 2시를 넘겼다. 그렇게 불면이 시작됐다.


나는 낮잠마저 자지 못했다.


심신이 지친 나에게 다른 증세들이 동반됐다. 첫날, 바이오리듬이 깨진 것을 축하라도 하듯 전에 없던 피부 알레르기 같은 것이 생겼다. 씻어내니 곧 사그라들었지만 그것은 확실한 전조증상이었다. 이틀차 밤에는 두통이 찾아왔다. 오른쪽 뒤통수를 세로로 가로지르는 욱신거림. 스트레칭을 한다, 폼롤러를 동원한다, 소용이 없었다. 사흘차에는 급기야 우울이 나를 찾아왔다. 내 마음대로 풀리지 않는 현실에 대한 부정과, 직시, 확신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이 뒤엉켜 끊임없이 나를 찾아왔다. 내가 굴러다니는 낙엽만치 초라하게 느껴졌고, 극복할 수 없는 세태는 태풍처럼 크게 느껴졌다. 잠을 자지 못하니 생각이 끊일 시간도 없었다. 눈가에 눈물까지 고였다가 아래로 투둑투둑 떨어졌다.


소파에 드러누운 나에게 키우는 강아지가 찾아와 제 앞발로 내 팔을 벅벅 긁어대는 순간, 고통과 함께 문득 제정신이 들었다. 한나절을 꼬박 두통에 시달리고서야 타*레놀을 내게 셀프처방할 수 있다는 생각이 뒤늦게 찾아왔다. 대체 이 간단한 해결책을 왜 지금까지 생각해내지 못했다는 말인가. 알약 한 알에 물 한 컵을 곧바로 입에 털어 넣었다. 30분이면 된다.


두통을 온전히 느끼는 사이 침잠해 있던 내 우울이 번득 다시 고개를 쳐들려고 했다. 나는 우울 박멸을 위해 운동화를 꺼내 신었다. 집 앞에서 테니스 라켓을 허공에 휘둘러댔다. 부쩍 선선해진 공기 속을 가벼운 라켓이 수차례 질러 다녔다. 내가 가장 최근 성공해 낸 모습을 재연하는 것이다. (19년 차 테린이인 나는 최근에야 테니스에서 가장 기초적인 포 동작을 완성해가고 있다.) 동영상까지 찍어 어제 만든 나의 몸짓과 오늘 나의 몸짓을 비교까지 해보았다. 살짝 땀을 내고 돌아왔지만, 우울은 아직 내 인근 공기층을 얇게 덮고 있었다. 이런, 아직 끝나지 않은 건가.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도 모르게 "으앙" 소리를 내어 울어버렸다. 집으로 오라는 말에 집에서 늘어지게 낮잠을 잘까, 하고 있던 강아지를 냅다 집어 차에 태웠다. 뜨겁게 익어있는 차. 창문을 열고 뜨거운 바람을 내보낸 뒤 그 남은 자리에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쏟아 넣었다. 그날까지 반납해야 하는 책을 도서관에 던져 넣었다. 그날따라 일찍 도서관이 문을 닫았고, 주변 건물이 공사를 하는 바람에 주차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는 불운의 이야기는 굳이 시간을 들여 설명하지 않겠다. 그러는 사이 찬 공기가 감싸는 차를 출발시켰다. "비빔국수를 먹어요" 고속화도로를 질주하는 몇몇 차들 덕분에 생명의 위협을 두어 번쯤 느끼고서야 본가에 도착했다.


눈앞에 닥친 불운이나 생명의 위협 따위를 느끼고 해결하느라, 내 머릿속을 차지하고 있던 작은 우울은 더 이상 힘을 쓰지 못했다. 집에 도착하니 주문한(?) 집밥이 거의 완성되어 있었다. (비빔국수에 국수만 빼고!) 물을 올려 면만 끓여내면 되는 와중에 어머니는 뭔가를 더 넣겠다며 텃밭에서 고추며 깻잎, 박하 따위의 잎을 더 잘라오셨다. 잘 비벼진 면을 둘둘 말아 입에 넣는 동작을 수십 번쯤하고 나니 저녁 한 그릇이 끝나있었다.



불면이 바로 사라지지는 않았다. 새벽 세시 반까지 잠이 들지 않았고, 7시 맘 알람에 눈이 떴다.(도나츠! 일어나!라는 3n년째 육성알람을 듣고 있다.) 강아지를 키우는 이웃주민과 간단한 아침 산책을 하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출장 나가있던 남편이 일찍 돌아와 깜짝쇼(누가 차를 긁었다는 전화에 내려가보니 남편이 등장했다)를 했고, 어제부터 계획했던 가지 덮밥 도시락을 어머니와 점심때 만나 나누어 먹었다. 일이 끝난 뒤 테니스 레슨을 받으며 (또) 혼났다. 일주일만에 고기를 사와 한 상을 잘 차려 먹었다.


그리고 저녁 7시 48분, 나는 잠이 들었다.

이전 16화 월 천만 원을 포기할 용기가 생겼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