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8년 추석 때의 일이다. 컨디션이 좋을 때에도 몸놀림이 둔한 아버지는 (어디가 아프신 게 아니라 그냥 조선시대 양반처럼 잘 뛰지도 않으시고 느긋하시다.) 으레 그렇듯 추석 당일 오전 10시가 넘어서야 친척들 인사를 다니기 시작하셨고, 오후 다섯 시쯤이었나 드디어 마지막 집 순회를 하러 들어선 참이었다.
"야옹"
어딘가 어수선한 마당 분위기. 작은 고양이 7마리가 마당 이쪽저쪽을 쏘다녔고, 어미는 다 부서져 가는 회전의자에 길게 드러누워 발을 핥아 얼굴에 문대고 있었다. 한 달 반쯤 전에 동네 고양이 한 마리가 마당에 들어와 몸을 풀었다고 했다. 그런데, 한두 마리 낳겠지 했던 것이 7마리나 연달아 낳은 바람에 저걸 어찌해야 할지여간 골치가 아니라고. 어쨌든 고양이는 귀여웠고, 어미는 카오스의 아주 순한 녀석이었는데, 7마리는 모두 색도 성격도 제각각으로 마당을 굴러다니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유독 온몸이 검은 한 마리가 내 눈에 띄었는데, 배가 고팠는지 개사료 봉지가 쌓인 마당 구석에 형제들을 우르르 끌고 가 흙바닥에 두 뒷다리를 지탱하고 몸을 위로 쭉 길게 늘이고 있었다. 사료 봉지를 고 작은 발로 이리저리 만져보기도 하고, 올라탈까 고민하는 모습이 여간 귀여운 것이 아니었다. 고 까만 녀석의 뒤를 노란 줄무늬나 노랗고 흰 바탕의 고양이들이 뒤에서 기웃댔다. 고양이들의 재롱을 보다가, 집에 발을 들였다. 그것도 잠시였고 고양이들의 귀여운 모습이 눈가에 아른거리는 탓에 안 그래도 어색한 명절 분위기는 더 어색하게 느껴졌다. 친척 어르신의 말을 귓등으로 넘기며, 나는 몰래 거실을 빠져나와 마당으로 향했다.(고 생각했다.)그런데, 우르르 모두가 내 뒤를 쫓아 나오는 통에 모두가 마당 한편에서서 고양이를 구경하게 되었다.
이미 한 마리의 고등어 무늬 고양이를 키우고 있던 나는 귀여운 저 모습을 구경이나 하고 가야지, 했는데 금세 따라 나온 어머니께서 "동생 만들어줄까?"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 말씀을 핑계로 친척 할머님은 안 그래도 처치 곤란이었던 고양이를 한 마리 품에 안기기로 작정하신 양, 이리저리 새끼 고양이를 잡으러 다니셨다.
하지만 고양이 한 마리를 안겨보겠다는 할머니의 각오에도 불구하고 그 특유의 느릿한 몸짓에는 대부분의 고양이가 영 잡히지 않았다. '이러다 안 데려가면 어쩌나' 초조해하는 어르신의 생각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어르신의 눈에는 아무래도 흰색이 섞인 예쁘장한 녀석들이 더 마음에 쏙 들어서 그런 녀석들만 골라주셨는데 그 놈들은 막다른 곳에서 잡히더라도 발버둥을 쳐 곧 빠져나갔다.
하지만, 내가 마음을 뺏긴 녀석은 이미 따로 있었다. 까만 고양이. 아까 그 개 사료 봉지를 뒤적이던 장난꾸러기가 맞다. 짧은 다리를 쭉 뻗어 보이는 데까지 보겠다는 그 집념이 얼마나 귀여웠는지, 저 녀석만 마음에 든다면야 나는 데려가리라. 어머니의 허락이 떨어진 즉시부터 들던 생각이었다.
검은 고양이를 안아보고 싶다고 여러 차례 말하는 나를 두고 도망가기를 반복하는 노란 고양이, 흰 고양이를 잡으려시던 할머님은 결국 그놈들 분양을 포기하고, 내가 말한 검은 고양이를 집어 들었다. 장난꾸러기 성미와는 달리 의외로 순순히 할머님의 손에 들려와 내 품에 안겼다. 심지어 양팔을 쭉 뻗어 나를 끌어안는 시늉까지 했다.
"얼굴이라도 봐야 할 것 아니니."
몸을 떼어서 얼굴을 보려 하자, 저를 떼내려는 듯이 느꼈는지 이 고양이는 나를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 옷자락이 떨어져 나갈 지경이었다. 한쪽 팔을 떠보려 해도 온몸에 힘이 잔뜩 들어간 이 녀석은 내게 착 붙은 껌처럼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우스운 상황에 아버지의 허락마저 떨어졌다.
"그놈이 명줄이 긴가보다."
그렇게 품에서 떨어지지 않던 녀석은 데려가주마, 하고 마당 한 구석에 있는 3kg짜리 열무 상자를 꺼내 차에 넣어놓자 몸을 쏙 그 자리에 넣더니 원래 제 자리였던 마냥 잠을 쿨쿨 자기 시작했다. 외가댁까지 가는 사이 잠 한 번 깨지 않고 말이다.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는 외할머니의 눈을 피해 반입에 성공했지만 곧 들켰고, 고양이의 배변권 확보를 위해 모래를 퍼온다거나 겁먹은 고양이가 안마의자 밑에 들어가는 등 웃지 못할 사건이 터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 친구는 결국 외할머니의 사랑마저 차지하고 말았다.
지붕 안쪽을 쥐가 우다다다, 매일 밤 뛰어다니는 소리가 났다고 하는데 요 작은 녀석이 하도 야옹 대면서 나를 따라다니다 보니, 그 소리를 쥐가 들은 게다. 1박 2일 동안 쥐들이 우다 다하는 소리가 점차 줄어들더니 떠날 무렵쯤에는 아예 쥐들이 거처를 옮겼다는 것 같았다. 할머니는 아주 만족해서 국물 멸치 따위를 고양이에게 건네시기도 했고, 우리가 떠난 이후에 가끔 집을 찾아오는 고양이들이 눈에 띄면 밥도 챙겨주셨다고 했다.
이렇게 데려온 녀석은 내가 내 동생 삼기로 했고, 이름은 초코, 까망 등 털 색을 따서 지으려는 후보가 많았다. 결국 어머니는 '초코'를 강력하게 미셨는데, 첫째와 비슷한 느낌 때문에 첫째 고양이가 헷갈려했다. 그 바람에 내가 끼어들어 처음부터 강력하게 밀었던 시골 지명을 따서 지었다. 참고로 고양이의 이름은 전라도의 한 지명인데, 낭랑하고 보석 같은 그 이름이 내 이름 삼아도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이다.
그리고 이 고양이는 십 분의 일 크기에도 불구하고 첫째를 따라다니며 털을 뽑거나 앙, 깨무는 등 언니 기강을 잡다가, 내가 독립을 하면서는 아주 내게 쫓겨나버렸다. 나도 첫날 이불속을 파고들어 엄지발가락을 앙 물고 흔적도 없이 도망친 이 녀석을 데려다가 하도 혼을 내어놓아야만 했다. 깨갱, 하고 다음 날부터는 아주 무릎냥이가 되어 살게 되어 아주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안 좋은 일이 있으면 품에 안겨 그릉대며 달래주거나, 좋은 일이 있으면 함께 이사를 해주었다. 공식 전 남자 친구, 현 남편은 내가 어머니와 동남아 여행을 갔을 때 일주일이나 이 녀석을 맡아 키워주거나 (이 당시에는 전 남자 친구가 아닌 썸남 신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캣타워를 사다 바치기도 하며 환심을 샀다.
어쨌든 이건 제 때에 맞춰 제가 가진 이례적인 팔힘을 자랑한 덕에 나와 동고동락을 함께하는 가족으로 발전한, 한 고양이가 간택에 성공한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