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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그란도나츠 Sep 06. 2024

밀가루 반죽을 떡이라 부르다니, 쌀빵 같은 말 하네

쩝쩝박사의 되지도 않는 항변이지만 들어주신다면 싸워보겠습니다

내 상식 선에서 용납되지 않는 단어가 언젠가부터 내 주위를 맴돌기 시작했다.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고, 이건 새벽같이 일어나 오후면 문을 닫는 전국의 모든 떡가게를 우롱하는 단어다. (우리 집은 떡집을 하지 않는다.)


밀떡.


아니, 가래떡이라 함은 쌀을 불려 곱게 간 반죽을 한 덩이로 익혀 기계에서 뽑아내는 게 아니던가. 하얗고 포동포동한 흰 떡이 길게 쭉 뽑아져 나오면 아래 큰 대야에 받아두었던 찬물에 퐁당 넣어 빠르게 식힌 후 가위로 숭덩 잘라 만드는 그것을 우리는 가래떡이라고 부르기로 사회적으로 합의한 것이 아니었느냐는 말이다. 그런데 얼마 전 유튜브였나 TV에서 '밀떡볶이'라는 생소하고도 충격적인 단어를 들었다. 대체 우리가 언제부터 떡을 밀가루로 만들었던 거지? 심지어 쌀로 만든 떡을 사용해 만든 '떡볶이'를 '쌀떡볶이'라고 부른다고? 비통한 심정을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쫀득하고, 쫄깃하고, 조직도 치밀한 데다가 손가락 네 개를 모아야 간신히 그 둘레를  채우고, 그런 두께에도 간간한 소금 맛이 전체에 배어있으며, 빨간 떡볶이 양념을 묻혀 크게 앙 베어 물면 잇자국이 예쁘게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쌀) 떡이 버젓이 유통되고 있는데, 누런 밀가루 반죽을 새끼손가락 만한 떡볶이 떡 모양으로 잘라 만들어 비닐에 진공포장해서 판매하는 그것이 '떡'이라는 이름을 사칭해 '밀떡'이라고 불린다니. 말세다.




내가 떡볶이에 맛을 들였던 시기는 아마 22년 전쯤이었을 거다. 당시 우리 아파트에는 매주 화요일마다, 다른 단지에는 매주 목요일마다 같은 분식집이 장터에 나왔다. 가물가물하지만 당시 떡볶이 가격이 2천 원, 어묵이 3백원했고, 내가 제일 좋아하던 김말이는 5백 원, 오뎅 국물은 공짜였다. 매주 화요일이면 장터에 살 게 없나 기웃대는 엄마 치맛자락을 붙잡고 따라 나가 꼭 이 집 떡볶이를 사 먹었다.


건강에 좋은 떡볶이를 만들어주겠다며 설탕을 무지막지하게 아끼던 (아니 아예 안 넣으셨던 거 같다.) 어머니표 떡볶이와는 달리 살짝 매콤하면서도 단 그 양념에 숭덩숭덩 눈앞에서 잘라준 (쌀) 떡과 네모 반듯하게 잘린 오뎅, 그리고 달큼하고 질겅질겅 씹는 맛이 있는 양배추 조각을 포크로 집어먹고, 좀 전에 고른 김말이 튀김을 아주머니가 한 번 더 뜨거운 기름에 튀겨 조각내 준 것을 한 차례 양념에 버무려 먹는 그 맛. 입이 짧아 갈비뼈까지 드러나는 체중을 가져 5학년 때에도 2학년 때 입던 옷을 그대로 입던 나지만, 떡볶이를 먹을 때에는 초록색 멜라민 접시에 나온 일 인분 몫을 다 해치우곤 했다. 쫄깃한 떡을 한 입 베어 물면 그 흰 면이 아쉬워 또 빨간 양념을 묻혀 먹고 그러다 보면 한 접시가 다 끝나있었지. 손가락에 묻은 양념을 쪽 빨아먹고 휴지로 손을 닦은 뒤 그사이 식은 오뎅 국물을 찹찹대며 "안녕히 계세요" 인사를 하고 엄마를 따라 장터를 한 바퀴 휙 돌고 집에 가곤 했다. 이 맛이 아른거려 화요일에는 목요일을, 목요일에는 화요일을 기다렸다.


그런데 밀떡이라니! 이건 마치 쌀빵과 같은 말이다. 


쌀빵은 일반 빵을 먹으면서 좀 더 건강을 생각한다는 사람들에게 빵의 식감을 어느 정도 따라한 대체식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쌀빵은 주류도 아니고, 일반빵의 지위를 넘보지도 않는 딱 그 정도의 위치를 고수하고 있다. 쌀은 떡으로 만들어져야 했지만 빵이 되어버린 제 주제를 안다는 말이다! 게다가 우리는 밀가루로 만든 빵은 밀빵이라고 하지 않잖은가! (호밀빵은 또 몰라) 대체 떡에 '쌀'을 붙여주어 '밀떡'이라는 기호식품과 구별해주어야 하느냔 말이다!! 또 왜 잘 팔린다는 건데! 건강에 안 좋다면서 밀가루로 만든 빵은 저어하면서 왜 밀떡을 좋아하는 건데!


(쌀) 떡볶이에 관해서는 아름다운 추억이 깃든 나인만큼 감히 (쌀) 떡으로 만든 떡볶이를 쌀떡볶이라고 부르고, 밀가루 반죽으로 만든 떡볶이를 밀떡볶이라고 부르는 것은 용납할 수가 없다. 내가 국립국어원은 아니지만 (쌀) 떡볶이는 떡볶이로, 밀가루 반죽으로 만든 떡볶이는 밀떡볶이라고 부르는 것을 차선으로 제안한다. (감히 밀가루 반죽이 떡볶이의 이름을 사칭하는 것은 죄다. 부르르.) 암, 이 정도라면 괜찮은 것 같다.




쌀값이 떨어져 우리 농민들은 햅쌀 수확 시기를 앞두고 논을 갈아엎고 있다. 쌀 소비도 예전만 하지 못해 정부의 비축물량에 기대는 게 현실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농사지은 쌀로 떡을 해달라고 하면 비싸서, 아니 수입 쌀을 써야 해서 안 해준다고도. 한때는 우리 화훼농가 살리기라고 해서 꽃도 여러 번 샀는데, 우리 다 같이 가치소비를 위해 우리 쌀로 만든 가래떡으로 떡볶이를 해 먹어보자! 찡긋.


(아참, 이 글은 우리 집 떡볶이 요리사인 남편에게 헌정하고자 한다. 밀떡을 사보겠다는 남편의 말을 몇 주간 곱씹은 끝에 나온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쌀떡이 천지에 깔린 상황에서 우리 집에 밀떡을 들일 수는 없다는 나의 강한 의지 표현이기도 하다. 오늘 떡볶이를 해달라고 졸라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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