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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그란도나츠 Sep 09. 2024

엄마, 이제 그릇 좀 팔면 안 될까요

전문가급 솜씨, 나만 보기에는 너무 아까워서 그래요


거짓말 좀 보태 우리 집에는 어머니께서 직접 만든 그릇이 찬장에 백 개는 쌓여있다. 어머니께서 전문 도예가는 아니시지만, 한때 공방을 다니며 열심히 해온 취미생활의 결과물이다.


사실, 취미 생활의 결과물이라고 하기에는 미적으로 여타 그릇 브랜드들에 비해 뒤지지 않는 모양새를 자랑한다. 밥공기 한 개를 만들어도 그 안이나 바깥쪽에 야생화가 잔뜩 피어있는 까닭이다. 보통 디자이너들이 만든 그릇들을 보면 꽃을 그려도 한 두 송이 그리고 말던데, 손잡이에도 컵 안 쪽에도 바깥쪽에도 심지어 아랫면에도 예쁜 꽃을 그려넣은셨다. 어머니께서는 취미생활에 그친 얕은 실력이라고 점잔을 빼시지만, 도예가 선생도 엄마가 만든 디자인을 가져다 쓰고 팔아도 되느냐고 물을 정도로 의외의 실력을 가지고 있으신 데다가 실제로 그런 것들을 판매까지 한 것을 보았다. (경제적으로 퍽 아쉬운 일이다. 개런티를 받았어야지!) 나는 쓰는 그릇들은 집에서 예쁘게 쓰고, 이가 조금 나가면 회사까지 들고나가 쓴다. (귀한 물건을 누추한 곳에 온전한 상태로 가져갈 수 없다.) 특히 빨간 야생화가 수십 송이 그려진 컵에 커피를 담아달라 하면, 어딘가 무채색 느낌의 스테인리스 텀블러 소유자들과는 차별화된 느낌마저 드는 것이다. "우리 엄마가 만드신 컵이에요." 하면 갤러리에 늘 전시회를 하는 작가의 딸인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엄마표 질그릇이다. 우리 집에 개수도 가장 많고, 쓰임새도 가장 많다. 자세한 성분과 구입처는 모르지만, 점토를 손으로 반죽해 넓혀낸 것이다. 잘 들여다보지 않아도 그릇 크기며 넓이가 제각각인 것이 핸드메이드의 매력이다. 어떤 것은 조금 더 넓고 어떤 것은 조금 더 좁게 구워진 탓에 블록 쌓기를 잘해서 넣는 쾌감도 있다. 국그릇이며 대접이며, 엄마의 손자국이 흐리멍덩하게 표시되어 있기도 하다. 비슷한 종류의 것들은 비슷한 손자국이 나 있고, 엇비슷한 위치에 같은 모양새의 꽃들이 그려져 있다. 딸에게 주려고 만드신 거라 그런지 마감새가 그릇가게 구경 갔을 때 본 것들이나 디자이너들이 만들었다는 것보다 훨씬 좋다.

넓고 얕으며 오목한 그릇에는 대체로 파스타나 비빔국수 같은 요리를 올린다. 손 한 뼘 정도 되는 크기의 밑바닥에 소복하게 쌓으면 소박한 요리의 느낌이 잘 살아난다. 질그릇 특성인지 설거지를 할 때면 빨간 양념이 아주 밴 것처럼 보일 때가 있는데, 말려놓고 보면 그 색은 사라져 버린다. 늘 봐도 왜인지는 모르지만 희한한 일이다.

더 넓고 깊은 그릇은 세 명이 국을 퍼먹을 때 담아놓는 용도로 쓴다. 다들 그릇에 담겨온 양을 보면 '너무 많은데'라고 하지만, 막상 먹기 시작하면 딱 알맞은 양이다. (나는 냄비째로 식탁에 올리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냄비만 한 크기의 이 그릇은 무려 연꽃을 그려 넣으신 데다가 큰 크기를 고려해 손으로 잡을 수 있는 손잡이를 양쪽에 한 개씩 달아 푸른빛 채색을 해 놓으셨다. 지금 글을 쓰면서 꺼내보니 손잡이의 위치가 살짝 비뚜른 것 같기는 한데, 크게 신경 쓰이는 바는 아니다.


이 외에도 손바닥만 한 찬그릇도 십 수개, 언젠가 대학생 때 자취하며 어머니께 받은 절대 깨어지지 않는 코펠도 한두 쌍 섞여있다. 그러다 보니 종종 깨 먹기는 하여도 그리 크게 티가 나지는 않는 것이다. (문제는 잘 버리지 못하겠다. 하나하나 내 애정까지 묻어버려서!)


우리 집에 와 있는 녀석들 뿐 아니라 본가에도 벽면 하나가 이런 그릇들로 빼곡하다. 이런 탓에 나는 언젠가 이것들을 팔아보마 하고 넌지시 제안을 해 보았는데, 언제는 좋다고 했다가 언제는 아주 무덤에다 함께 매장해 달라고 하시는 통에 이게 장난인지 진심인지 헷갈리기도 하였다. (그래, 엄마의 진심은?)


실제로 판매에 나서본 적은 없다. CS도 올 것 같고, 깨졌다 하면 엄마 성격상 새로 하나를 만들어주마 해 수지가 맞지 않을 것도 같기 때문이다. 그건 나의 고민이고, 가마를 하나 구해야 한다는 둥, 흙 만지는 법을 새로 배워야 한다는 둥 엄마는 핑계가 하도 많아 셀 수조차 없다. 하지만, 이 예쁜 것들을 나만 알고 나만 사용하는 것은 퍽 아쉬운 일이다. (심지어 안 쓰는 그릇을 고양이와 강아지 간식 그릇으로 사용하다가 그것을 사진으로 본 직장 동료는 "고양이가 나보다 예쁜 그릇에 먹네"라고 하였다.)


싫다 저어할 것을 알면서도 계속 말을 꺼내는 것은 엄마가 얼른 용기를 내서 사회에 이것들을 자랑스레 내보였으면, 그런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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