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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그란도나츠 Sep 14. 2024

추석 때, 프랑스 파리에서 갓생살기합니다.

제주도 신혼여행 간 한 여성의 한풀이


결혼을 하고 달라진 점 가운데 가장 큰 것은 더 이상 민족대이동 대열에 끼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시댁에서 '너희끼리 잘 놀아라'하시고, 친정은 가까운 덕에 대부분이 동으로 서로, 남으로 북으로 그간 만나 뵙지 못했던 친척들을 보기 위해 이동하는 가운데 우리만 평온한 주말을 맞이하는 것이다. 특히 나는 남편과 사택에 살고 있어서 아파트 단지는 더욱 조용해진다. 이게 보통의 명절이었다. (2018년 추석 때 친척댁을 간 건  내가 미혼이기 때문이었다. 그때 인사 릴레이를 간 건 아주 다행이다. 아니었다면 입양한 고양이는 만나지 못했을 테니 끔찍하다. 혹시 궁금하다면 이 링크를 타고 가세요. 아기 고양이 사진 주의. https://brunch.co.kr/@storybook/44 )


이번 추석은 한층 업그레이드된 계획을 실행할 예정이다. 남편이 승진을 위해 5년을 바치기로 하여 몇 년간 휴가를 못 갈 것을 대비하고, 우리의 5년 차 결혼생활을 기념하고, 곧 있을 남편의 결혼

생일을 대비하는 등등 등등 갖은 핑계를 다 만들어서 무려 유럽의 프랑스라는 나라를 가기로 하였다. 그것도 파리 말이다


조금 전 아주 대강 소개했지만 우리는 2020년 11월 말의 어느 날 결혼하였다. 주위 분들도 100명밖에 모시지 못하고, 해외를 나가려면 앞뒤로 2주 씩의 격리기간을 거쳐야 했던 때였다. 해외로 신혼여행을 간다는 건 맞벌이인 우리에게는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할 것이었다. 심지어 나는 그때 "설마 2주 비울 건 아니지?"라는 말을 상사에게 들어서 겨우 일주일 신혼여행을 다녀왔다. 그것도 제주도로. 80년대 결혼하신 우리 부모님과 같은 곳을 들르고, 같은 곳에서 사진을 찍고, 같은 곳에서 밥을 먹었다. 그리고 꿈같은(아니, 꿈이었으면 좋겠는) 3박을 마친 뒤 이번엔 사흘간 코로나 시국에 못 오신 양가 어르신들을 만나 뵈는 데에 시간을 썼다. 그러니까 이동 시간 다 빼면 일주일 휴가를 써 놓고 꼬박 48시간 정도 제대로 놀았던 셈이다.


그러니 나는 이번 여행에 아주 목숨을 걸기로 하였다. 추석 때 프랑스 파리에서 갓생 살기 프로젝트되시겠다. 13시간 걸려 가는 곳을 3박 5일만 가는 제 주제를 잘 알고 있는 만큼 이미 나는 잠자는 시간 빼고 파리의 분위기를 한껏 느껴볼 작정이다.



벌써 맛집 리스트를 나름대로 추려 노션이라는 메모 어플에 장식해 두었다. 그래봤자 저녁은 3일 먹을 텐데도. (노션은 사용법이 꽤나 까다롭기 때문에, 제대로 하기 위해서 유튜브를 보며 노션 사용하는 법까지 숙지했다. 나는 J에 빙의한 P.  MZ의 선두주자가 되고 싶은 젊은늙은이다.) 또 구글맵을 켜서 현지에서 동선 최적화를 꾀해보았다. ('꾀했다'가 아닌  '꾀해보았다'인 이유는 '장소 저장'만 해두었기 때문이다. '장소저장'은 그냥 거기 가고 싶다고 지도에 깃발을 꽂는 표시를 남겼다는 뜻이다.) 특히 루브르박물관이며 모든 미술관은 섭렵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나름의 루틴도 짜 두었다. 그중 하나는, 매일 아침의 일정을 정한 것이다. ㅁ 아침 커피+바게트  ㅁ 아침 커피+바게트 ㅁ 아침 커피+바게트이다. 이걸 아는 언니는 코웃음을 치며 내게 파리는 크루아상이 맛있다고 했다. 그래서 커피+크루아상으로 루틴이 바뀔지도 모른다. (이 언니는 우리의 숙소를 지정해 준, 파리지앵이다. 아주 멋지지 않나. 프랑스에 거주하며 일하는, 아름다운 30대 한국인 여성. 그런데 잠시, 글을 쓰다 보니 뭔가 이상하다. 이걸 계획이랍시고 받아주었다니, 언니도 혹시 P?) 저따위의 계획을 세워두었지만, 일찍 일어나 새벽의 프랑스를 음미하고 해가 떠오르는 센 강의 모습을 보고, (실제로 보이는지는 모른다.) 낮 시간은 최적화된 동선에 따라 박물관을 두루 섭렵한 뒤, 유람선을 타고 노을과 함께  파리의 스카이라인을 감상한다는 것 이 나의 예정된 갓생라이프 되시겠다.


문제는 이 계획 실현을 위해 나는 이번주 이미 실수로 갓생을 살아버렸다는 거다. 화요일부터 2건의 일을 거의 완수에 가깝게 처리했으며, 그제는 새벽 2시까지, 어제는 밤 10시 30분까지 노예처럼 일했다. 오늘은 KTX에 탄 채 일을 끝마칠 무렵, 집중이 되지 않아 이 글을 썼다. '내리지 않으면 곧 문을 닫을 것이고, 차고지로 함께 이동하는 수밖에 없다'는 취지의 살벌한 KTX 안내방송을 듣고 황급히 컴퓨터를 닫고 나서야 기차창 너머로 기사에서만 보던 한산한 역귀성 길을 경험하였다. 다들 참 열심히 집에 가는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역 앞의 호텔로 이동해 또 일을 했다. 누가 나를 때리는 듯한 졸음이 몰아치기 전까지 일을 했다. 그리고 새벽 5시 알람소리와 함께 일어나 공항철도에 쪼그리고 앉아 이 글을 고치는 것이다.


갓생 피곤한데, 꼭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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