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회사에 이런저런 사정들이 있다면서 친한선배가 전화를 걸어왔다. 반가운 마음에 한참 푸념을 들어주고 있었는데, 선배가 갑자기 자신의 회사에서 프리랜서 일을 부탁하려고 한다며 본론을 꺼냈다. "이거 근데, 정규직 수준의 업무량인데다 하던 일이 아닌데요. 에이, 제가 할 수 있겠어요." 그랬더니 그는 그렇지 않다며 네가 했던 일과 비슷한 일이다, 이게 건당 얼마를 주는데, 이 정도면 꽤 괜찮은 조건이다, 한 달로 치게 되면 얼마 정도는 된다, 너는 이쪽 분야 경력도 없는데 잘 쳐주는 거다,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니다, 시간도 얼마 안 들이고 일할수 있지 않겠느냐, 아는 사람들과 일하니 편할 것이다 등등등 끝도 없이 승낙해야 할 조건을 내세웠다. 업계에서 얼마 정도를 보통 부르는지도 모르고, 언뜻 듣기에는 괜찮은 조건인 것 같아 솔깃하기도 했다. 이 선배가 내 생각을 해서 연락을 준 것도 고맙고 말이다. 물론, 모르는 분야 일을 한다는 점이 선뜻 내키지는 않았지만 이것 또한 추가소득이 아니겠나 하며 긍정회로를 돌려보다가한 2주 정도 뒤 선배가 생각해 봤느냐며 거듭 전화 왔을 때, 그제안을 승낙했다.
거기까지는 순조로웠다. 이어서 선배의 동료분이랑 계약 관련 통화를 하게 됐다. 대충 일 돌아가는 얘기를 다 하고 난 뒤 '어우, 생각보다 일이 많은데?' 싶었다. 그런데 그가 이런 통화에서는 돈이 중요하지 않겠느냐며 말을 꺼냈다. 그런데, 그의 제안 가격이 그 선배가 말한 것보다적었다. "제가 듣기에는 그것보다 더 많았는데..." "네가 경력도 없고, 전에 사람도 그 정도 받았고..." 그는 얼렁뚱땅 대화를 황급히 마무리 짓고 전화를 끊었다.
세상에, 내 몸값이 지금 거래 직전에 깎인 거야? 고개가 갸웃해지는 조건이었다. 지금보다 월 수십만 원 더 받자고 정규 일자리만큼의 일을 얹는 건데, 그마저도 두 번이나 확인받았던 금액보다 30만 원 정도 적게 벌게 될 판이었다. 적으면 적고, 많으면 많은 돈인데 알아서 챙겨주면 안 되나 싶어, 이 일을 소개해준선배에게 전화를 했더니 이번에는 갑자기 마음에 안 들면 안 해도 된다며, 일할 사람은 많다고 소리를 높였다. 아니, 내가 뭘 잘못한 건가?
몇 시간 뒤 더 윗사람과 이야기가 된 것인데 내가 통화한 그 동료분이 그 내용을 모르는 것 같다며 사과성 연락을 그 선배 나름대로 해왔다. 아니 그런 것 같았다. 그럼 당연히 원래 부른 것 대로 받으려나 싶었다. 불안한 마음은 그대로였지만. 그리고 일단 인수인계받으러 오라 해서 싱숭생숭한 마음으로 며칠 뒤 회사를 갔다. 얼굴 보고 얘기하면 될까 싶었던 마음도 있다. 하지만, 그 '윗사람'은 면담과 동시에 기대를 처참히 뭉그러뜨렸다. 연봉 얘기가 나오자 잘 모르는 일일뿐더러, 자신은 절대 높여줄 수 없다, 한 번도 그런 얘긴 한 적이 없다며 발뺌을 했다. 전임자에게 무례한 짓을 내가 저지른 것인 마냥 그 자리에서 훈화말씀을 10분이나 들었다.
계약서도 쓰지 않은 상태로 (고용이 된 게 맞는 거겠지? 아직 확신이 없다.) 인수인계를 핑계로 사람을 불러 가기는 갔는데, (일단 이에 대해서는 정산이 되는 건지 어쩐지 모르겠다.) 회사에도 전임자는 주 3~4회는 왔다며 매일 출근하라는 뉘앙스까지 얹어졌다. 이런 얘기를 그 회사 사람들에게 이야기했더니 대체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면서 다들 대신 화를 내주었다. "네가 지금껏 어떻게 했는데." 상황이 바뀌는 건 없었지만 조금 마음이 풀리기는 했다. 그들에 대한 서운한 감정은 그대로 남아있다. 처음부터 말했으면 좋았잖아요.
당근마켓 거래를 하면서 나는 별의별 사람을 다 보았다고 생각했다. 그중 가격 후려치기는 빈번했으니까. 왜 무료로 나눠준다고 하면 뭘 나눠주는지도 생각 안 해보고 일단 신청하고 온다는 사람도 있고, 제가 먼저 챗을 걸었다면서 싸움을 걸거나, 대뜸 반말로 가격을 1/3로 후려치는 일까지 많지 않은가. 그런데 이게 내 몸값을 두고서도 벌어지는 일이었다니. 그리고 믿고 따르는 친한 사람에게서.
워낙 친한 선배라 사람 구하기 힘들다며 붙잡으면 교통비가 좀 들고, 이동거리도 좀 멀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일해드려야지 하는 마음으로 임해보았는데, (업무력이 어떨진 모르니까 순전히 이건 내 쪽의 의사일 뿐이다. 이젠 당장 자르고 싶은데 못 자르는 것일 수도?) 수지가 안 맞아요 수지가. 흑흑, 이런 내 마음을 알긴 알까. 어떻게, 조금만 더 안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