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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그란도나츠 Sep 16. 2024

파리까지 와서 바게트만 먹어야겠네

프랑스의 살벌한 물가 체험기


프랑스 파리로 가는 티켓을 몇 달 전 예매한 뒤로 가장 고민했던 주제는 역시 '돈'이었다. 교통비야 대중교통을 타면 되니까, 가장 많이 쓰게 될 식비가 우선 걱정이었다. 블루리본 식당을 방문했다든가, 현지인 맛집을 방문했다든가, 현지에 10년 산 지인에게 추천받은 맛집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소개한다든가 하는 수많은 블로그 정보가 온라인에는 쏟아졌다. 2주나 수십 개의 블로그를 전전한 결과, 아침 6유로, 점심 16유로, 저녁 32유로라는 나름의 타협안을 도출해 냈다. (한 블로거가 자신만만하게 추천한 식비 예산이기도 했다.) 한국 돈으로 치면 아침 9천 원, 점심 2만 4천 원, 저녁 4만 7천 원 정도의 돈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넉넉하지 않은가.


나는 그 글을 제멋대로 믿고, 설마 이만큼이나 쓰겠어하면서 60만 원 정도의 식비 예산을 잡았다. 하루 일 인당 50유로, 두 명이 100유로, 3일 치면 300유로인데, 혹시 다니며 틈틈이 물을 마시거나 하는 추가 지출이 있을 수 있으니 넉넉히 100유로를 더 넣어 400유로를 준비했다. 참고로 400유로면 60만 원이 조금 못 미치는 돈이다. 남편이 지난달 조금 아껴 쓴 생활비가 50만 원 정도 됐으니, 2인 가족에서 1인이 한 달간 쓰는 총액보다 많은 돈이다. 숙박비 등등을 포함해 몇 달 발급받아놓은 은행의 트래블카드900유로를 환전해 넣었고 이런저런 이유로 추가로 400유로를 인천공항에서 인출하기로 했다. 다해서 1,300유로, 그러니까 190만 원이 넘는 거금을 외화로 바꾸었다.


공항에서 파리로 가는 기차표에 무려 3만 5천 원을 내고, 파리 시내에 도착했다. 아는 언니의 도움을 받아 맛집을 소개받고, 바로 옆에 마트에서 바게트와 치즈와 와인 병을 샀다. 와인은 5점 만점에 3.7점을 받은 제품임에도 7유로대의 가격이었다. 숙소에서 여행의 마무리를 가성비로 자축했다.


문제는 다음 날 아침이었는데, 시차 적응을 제대로 못해 우리는 새벽 5시에 눈을 떴다. 일출을 보겠다며 정처 없이 센 강을 옆에 두고 40분쯤 걸었다. 의도치 않게 우리의 원래 목적지인 루브르에 도착했다. 눈앞의 정경이 아름답기는 한데 손이 얼고, 이제 몸도 으슬으슬 추워져왔다. 시간은 8시도 됐고, 우리가 예약한 12시 30분이 되려면 어디든 이동하거나 해야 하는데 걸을 엄두는 났다. 눈에 띄는 자전거 무리가 있어 검색을 해보니 파리시에서 공영자전거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런데, 자전거당 600유로라는 거금을 자전거 대여 보증금으로 받고 있었다. 좋은 교통수단을 싼값에 얻었지만, 수중에 당장 200유로만 남았다.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했다는 괴소문을 뒤늦게 보았다.)



그래도 걷는 것보다는 나은 선택이어서 에펠탑과 추천받은 빵집, 콩코드 광장 등을 구경하고도 시간이 남았고, 좀 멀어 주저했던 프랑스 가정식 식당을 가보기로 했다. 식사를 하려면 30분을 기다려야 한다고 해 강제로 모닝커피 타임이 왔다. 한 잔에 3.5유로, 5천2백 원 수준이었다. 사진을 찍고 지도앱을 켜느라 31% 남은 휴대폰으로 고르고 골라 오리 콩티(다리를 구운 것이다.) 소 브루기뇽(와인갈비찜이다.)를 골랐다. 11시 30분이 되자 칼같이 와준 웨이터 덕분에 첫 주문으로 받아볼 수 있었다. 문제는 55유로, 8만 2천 원 정도 하는 음식이 입맛에 맞지 않았다. 소고기를 장조림처럼 잘게 뜯어 깨작거렸다. 급기야 남편의 오리 콩티와 바꾸어 먹었다. 꾸역꾸역 다 비운 덕에 4시간의 루브르 탐험은 마칠 수 있었지만 식사는 만족스럽지 못 했다.


저녁은 더 가관이었다. 추천받은 식당을 가기로 했는데 오늘 휴무라고 했다. 어제 봐둔 피자 가게 두 곳을 추려 남편이 이곳이 양이 많아 보인다며 고른 식당으로 향했다. (사실 내가 예산 내에 돈을 쓰기 위해 피자집을 고르는 꼼수를 쓰기는 했다.) 연세가 좀 있는 어르신이 손에 밀가루를 묻힌 채 우리를 맞았다. 마르게리따에 잠봉이 들어간 피자, 이렇게 두 판에 26유로, 4만 원 조금 안 되는 돈을 냈다. 와인은 8유로쯤 하니까 다해서 식사에 든 총비용이 5만 원 정도 됐다. 그런데 세상에. 집에 와서 피자 상자를 열어보니 생바질이 아니라 마른 바질가루에 얇아서 딱딱한 느낌의 도우, 부족한 토마토소스에 냉동 모차렐라가 올라가 있었다. (남편 말대로) 비싼데 맛도 없으니까 물가가 비싸게 느껴졌다. 화가 날 지경이었다. 오히려 점심 직전에 먹은 1.3유로짜리 바게트 한 개가 훨씬 맛있고, 경제적이기까지 했다.


하루만에 수중에 있던 1,300유로 중 120유로만 남았다. 우리는 귀국 전까지 바게트만 뜯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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