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비가 올 듯 말 듯 꾸물꾸물하다가 결국 와르르 쏟아졌던 날의 일이다. 아는 언니에게 (뜻밖의) 임신 사실을 알리고, 놀란 그녀의 마음을 잠재울 겸, 내가 헬육아의 길을 걷게 된 것을 환영할 겸사겸사(육아체험)해서 그 집에 놀러 갔다. (이 언니는 세 돌이 안 된 남자아이를 키우고 있는 집이다.)
언젠가 커뮤니티를 떠돌아다니는 사진에서 혈기왕성한 강아지의 체력을 이길 건 아이들 밖에 없다고 하는 증거사진을 본 적이 있다. 작은 간이 수영장에서 흠뻑 젖은 개가 지친 표정으로 나오는 모습과 뒤에서 아직 놀고 있는 아이들의 뿌연 형상을 대비한 것이 백미인데, 나는 그 사진이 주는 교훈을 이날 알고 갔어야 한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30개월쯤 되었다고 했던가, 아이는 나를 친근감 있게 '이모'라는 호칭으로 애정을 담아 부르며 손을 잡아끌었다. 새로운 장난감(사람)이 온 것을 환영하는 의미였다는 것을 알았어야 했지만, 나는 아이가 해달라는 대로 장난감을 가지고 논다, 춤을 춘다며 조금 뛰어놀았다. 이렇게 애처럼 놀아본 게 언제던가.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배가 살살 아프기 시작한 것이다. 쿡쿡 쑤셨다. 이거 뭔가 이상하다며 자리에 앉아 '시체놀이'와 '환자놀이'를 하겠다고 우겼다. (의사 놀이를 싫어하는 이 아이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하튼 다섯 시간가량의 육아체험을 하고 내게 남은 건 만신창이의 몸과 정신뿐이었다. (아들은 힘들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문제는 이때 시작됐다. 미약하게나마 있던 입덧 증상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상쾌한 공기가 폐로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고, 코에서 폐까지 이어지는 기관지에 걸리는 냄새는 하나도 없었다. 특정 음식만 생각하면 메슥거리던 속도 잠잠했다. 입덧이 사라진다는 것, 남편이 언젠가 읽어준 적 있는 내용이었다. 입덧이 없길래 뱃속에서부터 효도하는구나 했더니, 아기가 숨을 안 쉬는 것이었다는.
배가 쿡쿡 쑤시던 일반적인 증상도 더 아픈 것 같고 이래서는 안 될 것 같아 주변의 의료인들에게 싹 연락을 돌렸다. 뭔가 이상하면 가보라는 것이다. 세상에, 이만큼 무서운 밤은 없었다.
다음날 아침, 9시 30분에 연다는 병원을 9시까지 도착하겠다는 일념으로 출발했다. (9시 30분에 도착했다.) 토요일 오전인데도 얼마나 사람이 많은지. 한 시간여 기다려 드디어 뵙게 된 주치의 선생님의 용안! 일찍 병원에 오게 된 이유를 듣고 한 차례 주의사항을 읊어주시었고, 죄인이 된 나는 침대에 누웠다. 정말 잘못되었을까? 심장소리를 고 난 뒤에도 초음파가 꺼지면 심장이 멎는 것 아닐까 하는 불안에 시달렸다. 물론 잔소리를 좀 더 듣고 나니 정신이 들었다. 무거운 것 들지 말고, 무리한 운동 하지 말고, 멀리 여행하지 말고 등등등. 그래, 내가 엄마가 되었으니 (엄마라니!) 잘 키워내야 하는구나. 큰 결심 하며 병원을 나섰다.
그리고 그 다짐을 눈앞에 아로새기기 위해 이날, 내 가슴 높이까지 오는 유아차를 당근으로 구입했다.신난다. (아기는 아직 유아차 자크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