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동그란도나츠 Nov 06. 2024

로컬푸드 다니다가 청년농하고 싶어지는 이야기

올해는 고민을 좀더 해보자


중학교 때쯤엔가 온라인 마켓이 처음 생겼다. 아마 지마켓이었던 것 같은데, 어린 나이에 돈도 없으면서 고르고 골라 만 얼마 하는 보세 옷을 하나 시켰다. 온갖 곳에 작고 흰 하트 무늬가 있는 따뜻한 기모 재질의 분홍색 후드였다. 옷 보는 법도 모르고, 쇼핑이라고는 한 번 제대로 해본 적도 없이 교복에서 잠옷이나 아니면 엄마가 사주신 티셔츠 따위나 입던 내가 고른 옷이니 아마 옷 퀄리티는 물어 무엇하겠는가. 중학생 머리가 간신히 뚫린 목을 지나갈 정도였고 (머리를 묶은 채 입을 수 없었다.) 땀이 전혀 흡수되는 재질도 아닌 데다가, 무엇보다 따뜻하려고 산 기모옷임에도 바람이 불면 기온이 그대로 느껴졌다. (안에 뭔가를 입기엔 좀 작은 느낌이었다.) 이 옷을 구매한 이후 나는 꼭 입어보고 같은 품목을 세일할 때 산다든가, 아웃렛을 가서 산다든가 하면 했지 온라인에서 옷을 절대 사지 않았다. 온라인 쇼핑 경험을 그렇게 망치고 나니, 옷을 살 엄두가 안 나긴 했다.


온라인쇼핑 불신지옥에 빠진 나는, 그래서 20년이 지난 지금도 온라인 쇼핑을 거의 안 한다. 이건 식품을 살 때도 거의 비슷하다. 온라인에서 구할 수밖에 없다든가, 아니면 오프라인에서 검증이 됐다든가, 아니면 정말 입소문 난 제품이 아니면 온라인상에서 (구매할 때까지 억겁의 시간이 걸리는 건 오프라인도 마찬가지지만) 내 지갑을 여는 건 쉽지 않다. 아니, 구매도 구매인데 배달비가 4~5천 원씩 붙어대는데, 그걸 굳이 감수하면서 살 이유는 무엇이냐는 말이지.


오프라인 매장도 원래는 대형마트를 다니다가 최근 몇 년 사이 나만의 소비 트렌드가 바뀌었다. (한동안 집 앞에 큰 마트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형마트를 애용했는데 한 번 가면 5만 원, 10만 원의 기적을 보여주는 통에 아마 그때 우리 집 앵겔지수가 최악이었을 것이다.) 로컬푸드라는 것을 알게 된 탓이다. 뭐 다르겠어, 하고 살았는데 어머니를 따라가보았다가 내가 푹 빠져버렸다. (뒤에서 소개할 딸기 때문이다.) 일단 제품당 4~5천 원 하는 배달비도 안 들고, 그날그날 따오는 제품을 심지어 농부의 이름을 걸고 제품을 내놓다 보니 신선도 체크는 저절로 되어 여러모로 편리하다. (느낌 탓일까 냉장고에 똑같이 두어도 오래간다.)


내가 자주 가는 로컬푸드 매장은 두 곳이 있는데, 로컬푸드마다 저마다 저렴하거나 혹은 좋은 품목이 따로 있다. 이건 농부들이 가격을 직접 매기기 때문인 것 같다. 한 곳은 계란이 어마무시하게 싸다. 그냥 계란 말고 난각번호가 2번인데, 30구 기준 일반 특란보다 2천 원 비싼 정도다. (계란을 이런 데서 사 먹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건 꽤 오래되었다. 일전에 친할머니를 따라 할머니댁 인근의 양계장을 갔는데, 어린 나이에 보기에도 그 좁아터진 우리에 아파트식으로 닭들에게 알을 빼내는 것을 보고 아주 잔인하다고 생각했다.) 다른 것도 좋다고 하는데, 사실 그 집에서 저렴한 것은 닭알 하나뿐이다. (과일은 백화점 가격이다!)

특이하게 생겼지만 딸기다.

어떤 곳은 과일이 아주 싸다. 분명 이날 따온 것 같은데 잘 고르면 저렴하게 맛있는 과일을 구할 수 있다. (문제는 저렴한 가격에 눈이 뒤집혀 똑같은 값을 주고 몇 박스씩을 산다는 거다.) 이곳에서 몇 년 전에 처음 킹스베리라는 딸기 신품종을 처음 먹어보았는데, 주먹 한 개보다 큰 딸기가 있다는 데 놀랐고 무슨 게임에서 나오는 과일 이름 같은 것이 달고 과육도 치밀하고 저세상 과일 같아 그 철 내내 그 집 과일만 골라 대어 먹었다. 이때 문제는 사람들도 이걸 알아서 아침에 가지 않으면 한참이나 비싼 값이 매겨진 다른 집 과일만 먹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다른 곳에는 없는 딸기 오픈런인 셈이다.) 한 번은 일찍 갔다가 딸기 가격표를 붙이는 이 분과 마주치고는 성덕이라도 된 마냥 인사를 하고 진열한 딸기를 냉큼 집어오는 행운도 있었다. (그때 딸기 농사를 가르쳐려달라고 할 뻔했다.) 물론, 이곳도 얼마 전에 오후 늦게 가보니 무도 비싸고, 배추도 비싸고 그랬다. 이전에 이곳에서 산 고구마는 한 달째 비워지지 않고 있다. (고구마는 강아지의 소울푸드이지만, 내가 이 고구마를 강아지에게 차마 주기가 좀 그랬다. 짬처리하는 것 같아서.)

로컬푸드와 비슷한 느낌의 농산물 직거래 카페도 종종 들어가 보는 곳 중 하나다. 자타공인 귤벌레인 나는 (귤을 많이 먹는다는 뜻이다.) 겨울 느낌만 났다 하면 귤을 사들이기 시작해서 온갖 귤친척(한라봉, 황금향 등등)들을 집에 들인다. 그러다 보니 하도 비싸서 직거래 카페라는 것을 알게 됐는데, 식자재마트보다 저렴하거나 훨씬 저렴한 수준에서 농부와 직거래를 할 수 있다. 게다가 규격 외 농산물을 뜻하는 (최근 못난이라고 불리는) '공품'이라는 게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공품으로 귤 10kg 한 박스를 만 얼마, 이만 얼마에 들여놓다 보면 대형마트든 길거리 귤 트럭이든 쉽사리 과일을 집어 들지 못하게 된다. 공품 노예가 된 것이다. 올해는 멜론 세 박스를 (실험한 다치고) 비가 한 달 넘게 안 오던 여름날 언젠가 사서 나 하나, 남편의 처갓댁 하나, 내 시댁 하나 보냈는데 더 쟁이지 않은 걸 후회했다. (그다음 주에 바로 비가 왔다.) 이렇게 달고 시원하고 아삭한 멜론이라니. 멜론이 아삭하다는 건 듣도 보도 못 했는데, 멜론은 아삭한 게 일품이라는 걸 그때 알았다.


어쨌든, 하고 싶은 말은 농산물 직거래라는 것이 생각보다 쉽고 소비자로서도 큰 경제적 이득을 보는 일이었다는 말이다. (물론 농산물인 만큼, 당도가 떨어진다거나 하는 건 늘 도박이다. 그래서 온라인 쇼핑을 할 땐 330만 원짜리 당도계를 가지고 농민들이 재서 보여주는 것만 산다.) 아쉬운 점은 내 주변에 이렇게 농산물을 도매가격으로 파는 분이 없기 때문에 로컬푸드 매장이든, 온라인 카페든 한 다리를 거쳐야 한다는 거지만.


아니, 차라리 내가 농사를 지을 줄이라도 알면 좋을 텐데. 과실수 몇 그루, 배추 몇 포기, 고추 몇 포기, 옥수수 몇 대, 고구마 몇 줄기, 호박 몇 줄기 해서 제철 나는 농산물을 마음대로 따먹을 텐데 말이다. (내 수고비는 0으로 쳐야 것이다.) 아직 딸기 농사꾼의 꿈은 접지 못했다. 내년 딸기를 맛보고 딸기 농장 문하생으로 들어가든가 무슨 수를 낼 것이다. (실상은 동숲의 작물도 제대로 못 키우고, 수확도 제대로 못하는 판이다)


그나저나 이 와중에 시아버지께서 나를 제치고 먼저 소일거리로 농사를 시작하셨다. 서울 땅값이 얼마나 비싼지 한 고랑에 18만 원을 주고 배추, 파, 생강 같은 것들을 심어 키워 먹고 있다고 하셨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배추가 2만 원 하고, 애호박이 3~4천 원 하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진단 얘길 전해드렸더만, 올해는 드디어 돈값을 하겠구만 하셨다. 껄껄. 물론 배춧값이 지금은 떨어지고 있고, 속도 덜 여물어서 김장은 못 하셨다고 하니 점점 꿈과 멀어지는 셈이다. 농사 잘 짓는 것만도 어려운데 파는 타이밍도 맞춰야 하니, 역시 농사는 하늘이 내리는 것이라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