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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그란도나츠 Nov 08. 2024

세상이 남는 부품 없이 돌아가면 내 자리도 있겠지


얼마 전부터 공기청정기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탁, 타닥 하는 소리인데 마치 연필이라도 들어간 듯했다. 매번 나는 소리는 아니고, 어쩌다 한 번씩 간헐적으로 나는 것이었는데 매번(2~3달이 넘었다.) 결심만 하다 아침잠을 그 소리 때문에 깨는 바람에 작심을 하고 드라이버를 돌려 나사를 풀었다.


공장에서 잘 만들어져 나온 전자제품을 하나하나 해체해 본 적이 있으신지. 생각보다 그 내부에는 별게 없고 (아주 비싼 전자기판이 들어있다.) 다행히 비슷비슷한 나사로 조여져 있다. 또 이음매를 부드럽게 하기 위해 결속하는 부분을 꽤 단단하게 만들거나 꽉 끼어지도록 만드는데, 이게 한 번 빼본다고 조립하는 법까지 알 수 있는 건 아니라서 미리미리 생각을 하고 빼놓아야 한다. 나사가 긴 것 두 개를 제외하고 짧은 것만 한 열두서너 개가 나왔는데 (사실 기억을 제대로 해두어야 하지만, 극 P성향인 나는 또 그러지 못했다.) 일단 한 곳에 잘 모아두는 것만으로 나의 중요한 일은 끝난다.(다만, 강아지가 어슬렁거리다가 물어가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


꽉 맞물리게 조립된 플라스틱 겉면을 이리저리 힘을 줘가며 빼내기는 했는데, 도통 안에 무엇이 걸린 것인지 보이지 않았다. 큰 마음을 먹고 이미 해체를 해두었는데 싶어 360도 회전을 해가며 살펴봤지만 도르륵 연필 굴러다니는 소리만 날 뿐이었다. 평소 소리 나는 대로 해보자면서 전기를 연결하고 전원을 켰더니 다시 그 소리가 반복되었다. 그러더니 가까이 보고 있던 내 눈앞에 막대기 하나 (연필 흑심같이 생겼다.)가 덜커덕 붙는 게 아니겠나. 바로 전원을 껐는데 다행히 모터같이 생긴 곳에 낀 (모터에 낀 거라면 사실 다행은 아니다) 덕에 드라이버를 넣어 빼내 보려고 했지만, 역시 불쌍한 일은 내게만 일어난다는 남편의 저주처럼 그놈이 어딘가로 다시 떨어져 버리고 말았다. 아무래도 제대로 해체를 해야 할 것 같았다.

옆판까지 떼어내기로 했다. 플라스틱이라지만, 끼우는 접합부가 꽉 물려있는 통에 몇십만 원짜리 기계를 고장낼 것 같은 조바심을 더해가며 힘을 줘 끼우는 반대방향으로 힘을 줘 어떻게 어떻게 빼냈다. 그렇게 겉에 하나 더 있던 공기망을 빼내고, 청정기 전체를 들어 뒤집자 긴 막대기 같은 게 하나 툭 하고 떨어졌다. 대체 쓰임새를 알 수 없는 나무 막대기 하나였다. 아이스크림 막대도 아닌 것이 연필심도 아닌 것이 하여튼 우리 집에 있을 모양새는 아니었지만, 들어있었다. (부품이라도 될까 좀 걱정하기도 했는데 다행이었다.) 나사 자리를 제대로 못 찾아 한 번을 다시 재조립해야 하는 수고가 있었지만(다 조립했나 했는데, 나사 하나가 남았다), 마지막 나사까지 제자리에 돌려놓고 보니 언제 그랬냐는 듯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바람소리가 윙윙 난다) 집안의 온갖 먼지를 빨아들이는 공기청정기를 보니 대견하기 그지없다.


제 자리를 못 찾아 남을 뻔했던 나사를 봤을 때, 사실 그냥 테이프에 붙여서 둬? 하는 귀찮음이 앞섰음을 고백한다. 으으, 나는 나사에도 감정 이입을 할 줄 아는 극 F다. 테이프에 붙여두면야 언제 잃어버려도 괜찮을 쓸모없는 부품일 뿐이지만, 조금만 수고를 들여 제자리에 끼워 넣으면 없어서는 안 되는 부품이 되는 게 아니겠나 하는 허튼 생각이 머리를 지배했다. 사실 그 부품이 거기 있어야 하니까 만든 이도 부품을 썼을 테고 은 나사는 너무 서운하지 않겠나. 어차피 또 이렇게 붙여놓으면 잃어버릴 게 뻔하고 말이다.


누군가 내 쓸모를 깨닫고 내가 꼭 맞게 들어갈 곳을 찾아주면 좋겠다. 회사에 9-6 근무를 할 때 보다 잡시간(지금)이 느니 이런 생각도 자꾸 드네. 그저 푸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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