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나름 인지도 있는 언론사에 면접을 보았다. 오랜만에 비즈니스 캐주얼이 아닌 정장을 말쑥하게 차려입고 (다행히 맞았다.) 새벽 댓바람부터 발걸음을 재촉해 나왔다. 그날, 갑자기 10도 이상 뚝 기온이 떨어지면서 롱패딩에 긴 양말에 발을 쑤셔 넣고 나오는 길이었다. 전날 이사를 급하게 한 탓에 초행길인 데다, 지하철 태업으로 도착 시간보다 한참 전에 출발했지만 점심 먹을 시간은 있을지 걱정도 되었다. (실제로 예상보다 30분 늦었다.) 그럼에도 1시간 30분여 걸리는 예비 출근길(이라 생각하며)을 설레는 마음으로 바삐 걸어갔다. 지하철 출발점 인근이라 다행히 자리는 충분했고, 임산부석에 앉아 이미 외워버린 1분 자기소개를 머리가 빠개지도록 머릿속으로 외고 또 외었다.
면접을 한 시간 반여 남기고 인근 역에 도착했다. 많은 사람들이 추위 속에서 얇은 코트만 입고 동동거리며 나를 지나쳤다. 점심시간이 가까워 온 탓에 두셋이 모여 식당으로 나오며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귀를 때렸다. 김밥이나 샌드위치 따위를 사들고 다시 사무실로 복귀하는 사람들도 여럿 눈에 띄었다. 지방근무만 돌다가 오랜만에 보는 서울의 활기찬 모습이었다. 몇 년 전 호기롭게 지방근무를 시작하기 전엔 나도 저들 중 하나였는데.
오면서 찾아본 분식집에 들어가 쫄면 한 그릇을 시키고 주변을 둘러봤다. 삼삼오오 모여 라면에 김밥을 시켜놓고 잡담을 하며 먹다가 황급히 사라지는 모습. 그래, 면접 두 번만 잘 보면 이 인근에서 저들 중 하나가 되겠구나. 생각보다 많이 나온 음식에 허겁지겁 먹고는 면접장으로 향했다.
면접 직전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한끼 했다.
면접은 실망스러웠다.
제대로 이력서를 읽어보지 않고 들어온 면접관들, 제멋대로 해석해 놓고 내게 잘못의 화살을 돌리는 면접관, 깊이 없는 질문 수준. 이력서에 적혀 있는 것만 읽었어도 내 경력과 수상 실적이나 사내 포상 등에 대해서 제대로 알 수 있을 텐데 그에 대한 노력조차 하지 않은 게 분명했다.지원자가 어떤 생각으로 이 일에 임해왔는지, 그 결과물은 어떤 과정으로 만들어졌는지, 그런 게 궁금해야 할 게 아닌가. 면접장에 불러놓고 고작 묻는 게 (이력서에 뻔히 적혀있는) 이 상은 누가 줬어요 따위라니.과연 누가 이 사람들에게 직원을 뽑을 자격을 준 것인지 회사의 능력마저 의심되었다.
분했다. 내가 이런 회사마저 취직을 위해 매달려야 한다니. 면접 하나 보러 추위에 달달 떨면서 한 시간 넘게 지하철을 타고 온 것, 급하게 밥을 먹어야 했던 것, 면접장에서 그런 모욕적인 질문을 듣고도 그저 들었던 것, 어제 이사를 해놓고도 멀쩡한 척 달려온 것, 기대를 갖고 이곳에 왔던 것까지 모든 게 분했다. 주 6일 근무는 기본(실제 벌어지는 일이라고 한다), 현재 받는 월급보다 급여도 훨씬 적어질 판인 데도 한 후배는 자신은 이 회사에 가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결혼도 해야 하는데 상대방이 지방 근무는 도저히 못 받아들이겠다고 했다고. 뭐 이 친구도 결국 나랑 비슷한 처지다.
면접 전날, 내가 남편과 열심히 연습한 멘트가 있다. 기혼이시네요? (면접에서 이런 얘기 한두 번 들어본 게 아니다.) 따위의 질문이 나오면 "네, 저는 임신 중이고, 출산 후 한 달 정도 몸조리 후 복귀할 예정입니다." 따위의 답변을 하기로 한 씁쓸한 우리의 예상과 우리가 만든 예상 답변. 이렇게까지 지원자에게 궁금한 게 없어서 이 말을 꺼낼 기회조차 얻지 못한 게 다행이라 해야 할지 아니면 불행이라 해야 할지. (이날 누군가는 주량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면접 과정에서 나에 대한 면접관들의 관심을 전혀 못 느꼈듯이, 결과도 당연히 탈락이었다. 나도 이렇게 내게 관심 없는 회사는 안 가고 싶었는데 잘 되었다. 그저 (면접자리라서 제대로 쏘아붙이지 못하고 나온 나의) 수치심과 (그런 질문에 내가 잘못한 마냥 멍청히 죄송하다 해야 했던 나의 태도에 대한) 분노만이 남았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