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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다정 May 21. 2023

여름을 사랑하는 이유

여름에게서

여름을 좋아하는 이유를 말해보라고 한다면 수만 가지를 얘기할 수 있지만... 아무래도 가장 좋아하는 이유를 꼽아보라 한다면.


모든 게 분명하게 보이는 계절이라서 좋아한다고 말하고 싶다.


모든 게 분명하게 보이는 계절이라니? 그렇게 따지면, 봄도 가을도 겨울도 분명하게 보이는 건 매한가지인데... 여름만 특별히 분명하게 보인다는 건 무슨 말이냐고 할 수 있기에 아래와 같이 짧게 이유를 적어보겠다. (사실 길다)


다들 여름의 햇빛이 얼마나 뜨겁고 선명한 지 아실 테다. 뜨거운 태양 아래서 좋아하는 사람의 얼굴에 있는 점이나 주근깨가 더 분명하게 보인다. 심지어 보이지 않아도 될 모공조차도 아주 분명하게 말이다. 또한 무성하게 핀 초록 잎들이 바람에 쓸려 넘실넘실 대는 움직임들도 분명하게 잘 보여서, 나는 가끔 산책을 하다 그 장면을 멍하니 바라보게 된다. 마음이 편해지는 장면이랄까. 바람이 이끄는 대로 흔들리는 초록 잎들이 참 예쁘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여름은 일찍 해가 뜨기 때문에, 아침에 일어났을 때 모든 것들이 너무도 분명하게 보인다. 겨울과는 정반대다. 여름 아침 7시에는 모든 게 분명히 보일 만큼 밝은데, 겨울 아침 7시에는 모든 것들이 어두워서 빛이 필요하다. 저마다의 장점이 있겠지만, 나는 여름 사랑단이므로 여름 아침 7시가 더 좋다. 운전을 하다 보면 또 어떤가. 아스팔트 도로 위 뜨거운 기운을 받아 일렁이는 아지렁이까지 분명히 보이는 계절이 여름이다. 더위를 피해 들어간 카페 안,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시키면 금세 송골송골 맺히는 물방울마저도 분명하게 보이는 계절이 바로 여름이다. 등산을 하다 보면 콧속으로 들어오는 공기의 습기도 분명해진다. 심지어 비 오는 날에도 그렇다. 비 오는 날 여름 속에서 만난 녹색들은 더욱더 선명하게 보인다. 비 오는 날과 비 오지 않는 날의 녹색을 비교해 보시라. 비 오는 날의 녹색은 더욱더 깊어지고 밀도 있고 중후하다. 내가 참아왔던 감정을 차근차근 다 쏟아내고 싶을 정도로 믿음직스러운 색이 분명하게 된다. 


여름은 왜 이렇게 분명한 게 많은 걸까. 보내고 싶지 않은 계절이다. 그래서 나는 이 여름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보내고 싶지 않은 것들은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므로. 


삶을 살다 보면 분명하지 않은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는 걸 배우게 된다. 분명하게 정의를 내릴 수도 없고, 분명하게 내 생각을 말할 수도 없고, 분명하게 행동할 수도 없는 상황들이 닥쳐온다. 그때마다 내 삶에게 닥치지 말고 그냥 닥쳐! 하고 싶지만... 분명하지 않은 것도 삶의 일부니까 받아들이기로 한다. 대신 모든 것들이 분명한 계절 여름을 더욱더 사랑하기로 다짐한다.


분명하지 않은 삶 속에서, 분명하게 보이는 여름을 사랑한다. 언젠간 여름만 있는 나라에서 살게 되겠지? 그때가 되면, 겨울을 사랑하게 되려나. 분명하지 않은 미래지만, 지금은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나는 여름을 분명히 사랑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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