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토내해의 날이 밝았다. 어제의 흐린 하늘은 사라지고 맑고 투명한 햇살이 인사를 한다. 다행이다. 베네세 하우스 뮤지엄 야외에 전시되는'Open-Air Works' 20개의 작품을 찾아야 한다. 작품 번호 1번이 쿠사마 야요이의 '호박 Pumpkin'이다. 나오시마 미야노우라 항구에 도착했을 때 반겨주었던 빨강 호박이 아닌 노랑 호박이다.
쿠사마 야요이 '호박 Pumpkin'
조용히 잠들어 있는 베네세하우스 뮤지엄에서 짐을 가지고 나왔다. 따뜻한 햇살이 비추는 뮤지엄 입구에 고양이가 앉아 우리를 바라본다. 캐리어를 끌고 걸어 내려오니 노란 호박이 보인다. 호텔 라운지에 짐을 맡기고 파크동으로 연결되는 건물을 둘러본다. 뮤지엄 샵과 조각 작품이 전시된 야외로 연결된다. 깔끔하고 정갈하며 소박한 건물이다. 그러나 건물 어디에서나 보석 같은 그림이나 사진, 조각을 찾을 수 있다.
히로시 스기모토 'Pine Trees' / Park 동 로비에 설치된 작품 /Benesse Art Site Naoshima 홈페이지
Teresita Farmandez 'Blind Blue Landscape'/ 파크 동 복도를 따라 설치된 작품
바다와 야외조각 정원이 보이는 'Terrace Restaurant'에서 뷔페로 아침식사를 한다. 언제나 배고픈 여행자에게 아침 식사는 하루를 지탱해주는 양식이지만 이곳의 아침은 특별하다. 빵과 계란 야채와 소시지 등 아침식사 종류는 다르지 않지만 재료의 신선함 때문인지 바다와 야외조각 작품을 바라보는 특별한 아침식사는 정말 맛있다.
그런데 조용한 아침을 깨우는 소리가 들렸다. 6명쯤인가 한 테이블을 차지한 아주머니들의 높고 큰 데시벨의 이야기 소리, 웃음소리가 테이블을 건너 건너 내게로 왔다. 걸쭉한 사투리의 아주머니들 중 한 분의 목소리가 유난히 컸는데 자기 집에서 일하는 사람이 하루 7만 원을 받으며 몇 시간, 일 다운 일을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세상이 돈 벌기 너무 쉬운 것 아이가!" 아주머니의 끝없는 자랑과 입담이 식당을 울렸다. 다른 아주머니들이 깔깔 웃는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딸이 그만 나가자고 일어섰다.
니키 드 생팔의 조각정원을 지나 쿠사마 야요이의 노란 호박을 보며 걷고 있는데 다시 익숙한 사투리가 들려왔다. 정원에서도 바닷가에서도 노란 호박 앞에서도 아주머니들의 깔깔 웃음소리가 울렸다. 아주머니들은 노란 호박으로 다가와 자리를 떠나는 나에게 사진을 부탁했다. 나는 사진을 찍었다.
'Open-Air Works' 20 중에서 작품 1번 호박을 지나 지도를 들고 나머지 작품을 찾아 걷는다. 지중미술관에서 보았던 월터 드 마리아의 '보이는 /보이지 않아도 아는/ 알 수 없는 Seen/ Unseen Known/ Unknown'을 찾았다. 화강암의 커다란 원형 구가 세토내해의 풍경을 반사해 보여준다. 이 작품은 콘크리트 안에 숨겨져 있다. 찾느라 고생했다.
월터 드 마리아 '보이는 /보이지 않아도 아는/ 알 수 없는 Seen/ Unseen Known/ Unknown'
(Naosima Nature, Art, Architecture 책 사진)
멀리 미국 키네틱 조각가 조지 리키의 '세 개의 철판'이 바다를 바라보고 서 있다. 넘어질 듯 보이는 거대한 철판은 바람에 조금씩 움직인다.
조지 리키의 '세 개의 철판 The Three Squares Vertical Diagonal'
오다케 신로는 폐선의 뱃머리를 모래에 설치했다.
오다케 신로 'Shipyard Works: Cut Bow'
니키 드 생팔 'Cat, Camel'
니키 드 생팔 'Elephant'
몇 시간을 걸었을까. 딸과 열심히 20개의 Open Air Works를 찾고 베네세하우스 아트샵에 들러 오늘을 기억할 작은 선물을 구입했다. 니키 드 생팔의 조각 작품들이 사랑스럽다. 파크 동의 복도를 지나 로비에서 캐리어를 찾고 작은 버스를 기다린다. 어제 미술관에서 보낸 밤이 꿈만 같다. 미술관 복도를 지날 때마다 또 다른 숙소'오벌 Oval'로 향하는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안도 다다오의 작품 '오벌'을 보지 못한 것이 아쉽다. 버스가 도착하고 하얀 장갑의 운전사 아저씨가 내렸다. 버스는 나오시마의 또 다른 작품 목욕탕을 지나간다. 좁은 시골길이 정겹다. 우리는 작은 집들이 모여있는 동네에 내렸다.'이에 프로젝트', 7채의 오래된 집에서 펼쳐지는 현대미술 작품을 감상하려 한다.
베네세하우스 호텔 로비에 처음 도착했을 때 너무 소박한 로비의 모습에 놀랐다. 하지만 호텔에서도 미술관에서도 과하지 않은 아름다움에 매료된다. '과시는 결핍의 산물이다.'라는 글을 어디선가 읽었다. 안도 다다오의 지중미술관도 베네세하우스도 어쩌면 더하기가 아닌 뺄셈의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다. 히로시 스기모토의 사진도, 오랜 시간의 노출로 완성된 바다의 모습도, 가장 단순하고 근원적인 모습이다.
나는 과시할 것도 자랑할 것도 없다. 'Live and Die' , 언젠가는 끝을 향해 달려가는 삶에서 시간이 많이 남아있지 않을 수도 있다. 내가 작은 섬 나오시마에 온 이유를 알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