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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동 누나 Jul 19. 2022

그림 찾기를 해볼까! 여름 도쿄(2)

지브리미술관이 나의 집이면 좋겠다.

2017년 8월 23일


지난겨울 츠키지 시장을 다시 확인하고 싶었다. 아침 일찍 지하철을 타고 도착한 시장은 마침 휴일이다. 그래도 드문드문 문을 열고 있는 가게들이 있다. 초밥집에서 이른 아침을 먹고 초밥집 사장님 추천으로 라면을 먹었다. 지난겨울의 라면만큼은 아니지만 길거리 라면은 맛있다. 디저트로 북해도산 멜론 한 조각을 맛보고 긴자까지 걸었다. 아침의 긴자 거리는 저녁만큼 화려하지 않지만 여전히 사람들로 북적인다.

(아침의 긴자 거리)

긴자에서 지하철을 타고 미타카 역에 내리니 출구 표지판에 지브리 뮤지엄(GHIBLI MUSEUM) 글자가 선명하다. 미타카 역은 지브리뮤지엄 역이다. 사람들이 한 줄로 걸어간다. 만화 '토토로'에서 고양이 버스를 타는 것처럼 마음이 벌써 하늘로 올라간다. 역 밖으로 나오니 만화의 주인공들이 가득 새겨진 노란 버스가 우리를 기다린다.

(지브리 뮤지엄 버스)
(지브리 뮤지엄   /     천공의 섬 라퓨타 만화의 로봇 )

지브리뮤지엄 내부의 사진을 찍을 수 없다. 창문에도 의자에도 벽에도 만화 속으로 들어온 느낌이다. 토토로와 라퓨타의 부엌을 실제로 재현한 작은 공간에서 토토로 만화의 주인공 사츠키가 만드는 도시락도 전시되어있다. 만화의 장면을 담은 스테인글라스 창문, 동그란 계단, 지브리 뮤지엄에서만 볼 수 있는 단편영화 상영관에는 아이들을 위한 의자가 있다.

(지브리 뮤지엄 /  카페의 메뉴판)

영화를 좋아하는 딸의 생의 첫 영화는 '토토로'였다. 딸은 유치원을 다닐 무렵 영화관에서 본 첫 번째 영화에 5점 만점을 주었다. 지브리 뮤지엄 안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전 세계에서 온 여행자들, 어른들이 토토로나 다른 만화 캐릭터의 인형을 들고 다니는 모습이다. 뮤지엄 샵에서는 어른들이 인형을 들고 계산하기 위해 행복한 얼굴로 긴 줄에 서 있다. 지브리 뮤지엄은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지만 아이들의 세계를 떠나고 싶지 않은 어른들을 위한 공간이기도 하다


다시 미타카 역 스타벅스에서 말차 아이스크림과 긴자에서 사 온 모찌를 먹고 힘을 낸다. '도쿄국립신미술관 National Art Center, Tokyo'으로 간다. 얼마 전 우연히 기획전시만 여는 일본 국립신미술관의 쿠사마 야요이 전시에 관한 기사를 읽었다. 국립신미술관 앞마당의 나무들까지 쿠사마 야요이의 빨강 땡땡이 옷을 입고 길게 늘어선 줄의 사람들 역시 빨강 땡땡이 옷으로 드레스 코드를 맞춘 사진이다. 나도 빨강 땡땡이에 동참하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국립신미술관의 이번 개관 10주년 전시는 '알베르토 자코메티'이다.


도쿄국립신미술관은 건물 만으로도 예술작품으로 평가되는 최고의 미술관이다. 상설전시가 없고 기획전시만 하는 국립미술관이라니 놀랍다.

(도쿄국립신미술관  National Art Center, Tokyo)/ 역삼각형 원뿔이 거대한 기둥처럼 서 있다.
(자코메티 전시 포스터)

자코메티의 초기작부터 후기 작품까지 130여 점의 조각과 스케치, 유화도 볼 수 있다. 16개의 방중에 13번 방부터는 프랑스의 매그재단미술관에서 대여해 온 작품이다. 특히 13번 방에는 '걸어가는 사람' 작품들이 여러 방향으로 전시되어 있다. 조용한 공간에서 작품을 바라본다. 외로운 삶을 견디고 걸어가는 고뇌가 느껴진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 찍은 자코메티가 비를 맞으며 시내를 걷는 사진을 어디선가 보았다. 후줄근한 코트로 머리를 가리고 몽파르나스 자신의 아뜰리에로 걸어가는 사진이다. 그때 자코메티는 그의 성공을 예견했을까? 그는 사진처럼 그에게 주어진 예술의 길을 조용히 걸어가는 사람이다. 일본의 3대 거짓말 중 하나인 미야자키 하야오는 매번 은퇴를 번복하고 스튜디오에 앉아 만화를 그려낸다. 내가 좋아하는 이탈리아 화가 '모란디'는 평생 고향을 떠나지 않고 결혼도 하지 않고 수도승처럼 오로지 정물화만 그렸다.


프랑스 남부 매그재단 미술관 정원에 자코메티의 '걸어가는 사람'이 전시되어 있다. 정원에 전시된 자코메티의 '걸어가는 사람'은 땅을 밟고 비와 바람을 맞으며 서 있다.


국립신미술관에서 지하철을 타고 신주쿠역으로 나오니 저녁이다. 딸과 신주쿠역 근처 긴타코 타코야키 음식점에 들어갔다. 내부에 의자는 없다. 사람들은 서서 맥주와 타코야키를 먹고 얼른 나가는 분위기다. 창가에 서서 타코야키와 시원한 생맥주를 마신다. 창으로 어두워지는 하늘과 밝아지는 빌딩과 바쁘게 지나가는 표정 없는 사람들을 본다. 그들은 어디로 가는가? 나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이제 남은 나의 시간을 어떻게 채워야 하는가? 하는 생각을 하며 차가운 나마비루를 마신다. 그리고 신주쿠 거리로 나선다. 오늘은 목적 없이 걸어도 좋다.



-에필로그-

다음 해 2018년 예술의 전당에서 알베르토 자코메티 전시가 열렸다. 외로운 철학자의 작품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전시를 찾았다. 예술의 전당은 검은 공간에 작품을 전시했다. 도쿄국립신미술관의 전시와는 다르다. 우연히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전시를 두 번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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