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동 누나 Jul 18. 2022

그림 찾기를 해볼까! 여름 도쿄(1)

그해 늦여름, 세상에서 가장 복잡한 거리 시부야 스크램블 교차로

2017년 8월 22일


지난겨울 도쿄 미술관 여행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도쿄 미술관에 관한 책은 아직도 많은 미술관을 남기고 있고 나는 노트북을 켜고 최저가 항공권을 찾고 있었다. 여름휴가가 끝나는 8월의 마지막, 드디어 최저가 항공권과 마음에 드는 가격의 취소 불가 호텔을 찾아냈다. 이번에는 도쿄 미술관뿐이 아니다. 하코네의 미술관을 찾아간다.


하코네에서 1박 하는 일정 때문에 교통이 편한 신주쿠의 작은 호텔에 체크인을 했다. 짐을 두고 나와 지하철을 타고 시부야의 타워레코드로 간다. "No Digging No Life"라는 글이 우리를 반긴다. 딸은 원하는 CD를 구입하고 거리의 더위와 열기를 식히려 시부야역 맞은편 스크램블 교차로가 보이는 스타벅스로 들어갔다. 진한 말차 프라푸치노를 마시며 딸과 나는 유리창으로 보이는 스크램블 교차로를 건너는 어마어마한 사람들을 지켜보았다. 과연 세상에서 가장 복잡한 교차로이다.

타워 레코드 시부야

딸은 본인이 찾아낸 점심식사를 예약한 레스토랑이 얼마나 기대되는지 말한다. 어렵게 예약한 음식점의 예약시간에 늦지 않도록 우리는 일어섰다. 시부야 스타벅스에서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함께 교차로에서 파란 불을 기다리며 딸은 나의 휴대폰을 들고 음식점으로 가는 길을 확인하고 있었다. 여행비용을 절약하려고 나의 휴대폰만 로밍을 했다. 스크램블 교차로의 파란 등이 켜지고 나는 길을 건넜다. 교차로를 건너고 돌아보니 딸이 보이지 않는다.


교차로의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는데 딸은 보이지 않는다. 나의 휴대폰은 딸이 가지고 있고 연락할 방법도 없다. 나는 시부야 역으로 들어가 지하철 도큐 도요코선으로 뛰어갔지만 그곳에도 딸이 없었다. 다시 시부야 스크램블 교차로에 돌아왔다.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른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지나간다. 다행히 지나가는 한국 남자와 여자 커플에게 다가가 딸과 연락이 안 되는데 딸이 나의 휴대폰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고 나의 전화번호를 저장해서 카톡으로 연락해달라고 부탁했다. 친절한 커플 덕분에 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딸은 교차로를 건너지 않고 지하도로 내려갔었다. 딸은 엄마가 야쿠자에게 끌려갔다고 생각했다고. 딸은 영화를 너무 많이 본다. 어쨌든 세상에서 가장 복잡한 교차로에서 딸을 잃어버리고 다시 상봉했다.


딸은 울다가 웃는다. 다시 도큐 도요코선 지하철을 타고 나카메구로에 내려 뛰었다. 다행히 10분 늦게 음식점에 도착했고 멋진 식당에서 최고의 음식을 먹었지만 최악의 영화를 찍은 셈이었다. 영화의 끝이 해피엔딩이어서 정말 다행이다.

(우여곡절 끝에 찾아간 음식점   HIGASHI-YAMA STUDIO /임시휴업이라고 나와있다.1-chōme-21-25 Higashiyama  )
(정갈하고 맛있는 점심)

멋진 음식점에서 맛있는 점심을 먹었지만 숨이 가쁘고 심장이 두근거린다. '만약에'라는 단어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앞으로는 각자의 휴대폰을 사수하기로 했다. 나카메구로의 골목을 걷는다. 언덕이 많아서 힘들다. 스웨덴 커피숍 PNB에서 시나몬롤과 드립 커피를 마시고 다시 걷는다. 다이칸야마 츠타야 서점을 향해 가는 길에 예쁜 가게와 건물이 눈길을 끈다. 멀리 보이는 다이칸야마 츠타야의 여름은 더 푸르고 아름답고 풍성하다.

( 츠타야 서점 가는 길  /   PNB 커피 )

서점에서 잡지를 보고 여행책을 읽고 2층 카페에서 진저에일을 마시고 다시 아래층에서 사진집을 본다. 여간해서는 지갑을 열지 않는 딸은 책을 사기 위해 십만 원의 거금을 지출했다. 딸은 츠타야 서점에 예술 관련 책들이 많아서 너무 좋다고 한다. 지난겨울에도 그랬지만 여름의 서점은 더 활기차다. 나이가 들면, 흰머리를 쓸어 올리며 책방에서 일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어려운 일이 아니어도 좋다. 이런 공간에서 나이가 들어가면 좋겠다는 꿈을 가져본다.


(다이칸야마 츠타야의 카페/  계단의 그림)

츠따야 서점에서 나오니 저녁이다. 하늘이 짙은 푸른색에서 검은색으로 변해간다. 다이칸야마 역으로 가는 길에 예쁜 가게와 카페가 줄지어 있다. 맥주와 간단한 안주를 파는 작은 가게로 들어가 딸과 시원한 맥주와 아보카도 라이스 크리스피를 먹었다.

(다이칸야마 역 근처의 저녁 풍경)
아보카도, 라이스 크리스피 안주와 맥주


신주쿠역 무인양품에서 눈에 잘 띄는 파란색 여름 모자를 샀다. 화려한 신주쿠역을 지나고 건물을 따라 걷는다. 긴 하루가 지나간다. 긴자의 호텔보다 더 좁은 방에서 기차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었다. 오늘의 사건은 조용히 간직하려 한다. 만약에 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너무 무섭지만 웃음이 나온다. 하필이면 시부야 스크램블 교차로에서!


여행은 언제나 예상하지 못한 일들의 연속이다. 살아가는 일도 마찬가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