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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a Jul 23. 2019

비행기에서 즐기는 다중문화체험

day1. 아이슬란드행의 설렘을 증폭시켰던 것들

장기 비행을 즐기는 편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원래 나는 멀미광이라는 거다. 지하철이나 차를 타면 울렁울렁여서 엄마 무릎에 엎드려 있는 게 어린 날의 일상이었다. 온 가족이 나의 멀미를 걱정했다. 아직도 내 방에는 엄마가 떨어질세라 챙겨주는 멀미약이 놓여있다. 그런데 비행기만은 달랐다. 성인이 된 지금도 대중교통을 타면 간혹 멀미를 하지만 비행기에서는 책도 읽고 영화도 보고 심지어 글도 쓸 수 있다. 바퀴가 육지에 닿지 않아서일까. 아니면 나도 아비정전의 아비와 같이 발 없는 새과인가? 물론 장시간 이코노미석에 앉아있는 건 해가 지날수록 다리도 저릿저릿하고 목도 따갑지만 비행하는 동안 읽고 보았던 글, 영상들은 신기하게도 뇌리에 강한 인상을 남겨왔다. 어떤 공간도 시간도 아닌 특수함 탓일까. 그래서 나는 비행기에서 자는 시간이 아깝다. 나에게 여행을 준비하는 행위는 비행기를 타면서 볼거리, 들을거리를 챙겨가면서부터 시작된다.



#에어플레인모드


바다를 건너는 비행기에 있는 동안 우리는 어떤 시간 속에서 부유하는걸까. 정확한 시간을 말할 수 없고 그 어떤 곳의 점유도 아닌 공간에서, 우리는 원 소속과 평소의 일과를 정의해주었던 시간을 버리고 유랑한다. 아이슬란드로 가는 비행기에 앉아 에어플레인 모드 직전에 지인들에게 생사에 대한 연락을 나눴다. 분명 아무 일이 없겠지만 사람들은 내 안부를 걱정해준다. 부러움이 섞인 하트를 날려주기도 하고 평소 하지 못했던 애정 담긴 따뜻한 말도 건넨다. 그렇게 여행이 반복되며 연락들도 반복되지만 이상하게 그 시간은 매번 뭉클하다. 지인과 나의 유대를 경험하는 시간이기도 하고, 떠남이 임박했음을 실감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음악


이번 여행지는 다른 곳도 아니고 아이슬란드다. 거대 자연이 시야를 압도하는 그곳에 청각도 보조를 맞추려면 음악이 빠질 수 없다. 아이슬란드가 목전에 다가왔음을 담뿍 느끼기 위해서 비행기에서부터 아이슬란드산 음악을 들었다. 여행을 계기로 이 나라 출신의 음악가들을 찾아보니 유독 몽환적이고 음산하면서도 웅장함이 공존했다.

Asgeir - Was their nothing

Asgeir - in the silence 앨범 수록 (2013)

나는 이 음악으로 아이슬란드행 발권 꼬심(?)에 넘어갔다. Sigur Ros의 뒤를 잇는다는 92년생 천재 아티스트. 포크에 기반을 둔 전자, 신시사이저 음에 가스펠을 연상시키기도 하면서 몽환적인 사운드가 압권이다. 보컬에서는 아이슬란드 대자연의 거칠한 질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실제로 설산을 앞에 두고 양옆으로는 대평원이 펼쳐지는 아이슬란드와 찰떡이었다.

Of Monsters and men - Little talks, Dirty Paws

My head is an animal (2012) 앨범 수록

아이슬란드의 인디 포크 밴드. 출시되자마자 빌보드, 얼터너티브, 락 차트에 오른 어마어마한 앨범 수록곡들. Little talks는 사운드가 경쾌하기도 하고 힘이 있어서 스포츠 팀의 응원 음악으로 써도 좋을 것 같다. 베토벤의 합창처럼 사람의 목소리를 연주 사운드로 쓰는 게 더욱 흥을 돋운다. 그렇다고 중심 없이 무자비하게 흥겨워지지 않는다. 가사도 범상치 않아 한 껏 상상력을 자극한다. 신비한 목소리의 여성 보컬 나나와 남성 보컬 라기의 조화가 좋다.


David bowie - Space Oddity /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OST

The secret life of walter mitty (2013) 앨범 수록

아이슬란드를 배경으로 한 이 아름다운 영화의 ost 중 데이빗 보위의 음악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그야말로 기묘한 우주 공간 속에 있는듯한 여행지와 잘 어울리는 선곡.


다섯(dassut) - 바다처럼

Youth (2019) EP 앨범 수록

아이슬란드에 가기 전에 나와줘서 고마워!

사실 이번 여행의 프리퀄은 국내 밴드 다섯(dassut)의 정규 공연이었다. 음악 취저인 우리는 이 여행의 단합심을 5월 다섯의 콘서트를 함께 다녀옴으로써 확인했다.  Camel이란 곡부터 주목하고 있었던 신예지만 이번 EP 앨범은 정말 훌륭하다. 특히 <바다처럼>은 올해의 음악이라고 생각될 정도. 보컬은 혁오와 카더가든의 분위기를 반반씩 닮았지만 10센치의 처연함까지 조금 더 보탰다고 할까. 거기에 <점심시간>, <사진첩>과 같은 노래에서 들려주는 기타 리프는 밴드 다섯만의 고유한 색깔이다. 특히 <바다처럼>의 일렉기타는 출렁이는 바다를 연상케 한다. 아이슬란드의 대자연과도 묘하게 어울리는 보컬의 까칠까칠 긁는 소리와 강한 기타 리프 꼭 감상해보시길.



#책


일정이 빡빡해 독서할 여력이 될까 싶었지만 명색이 독서모임 친구들과 가는 여행이라 한 권 챙겼다. 얼마 전 감히 인생소설이라 할 정도로 재밌게 읽은  <안녕 주정뱅이>의 작가 권여선의 신작 <레몬>을 가져갔지만 예상대로 여행지에서 한 줄도 읽지 못했다....


하지만 이 여행의 사전학습처럼 우리에게는 여행 전 필독도서가 있었다.


김영하 - 여행의 이유

동네책방 특별판으로 구매한 <여행의 이유>, 2019, 문학동네

나는 김영하 작가의 장편보다는 단편이 좋고 단편보다 산문이 더 좋다. 때마침 <여행의 이유>가 출간하자마자 서로 약속이나 한 듯이 책을 주문해 미리 읽었고 한 친구는 품에 가지고 왔다.



#영화


 영화를 정말 사랑하는 나는 비행기에서 볼 영화를 고심 또 고심한다. 영화를 고르는 스스로의 원칙이 있다. 한번 보았던 영화보다는 새로운 영화를 챙겨 담아간다. 비행기는 흔들리고 건조한 공간이다. 너무 함축적이고 오래 깊게 생각하게 하는 영화보다는 스토리 역동도 있고 재미있어야 하지만 단순 킬링타임용은 아쉬울 것이다. 적당히 스토리라인도 있고 생각할 만한 펀치라인도 있는 영화가 좋다.


아사코, 2018

핀에어 기내에서 보았던 영화 <아사코>

올해 상반기에 국내 개봉한 영화 <아사코>. 아이슬란드로 가는 비행기에서 첫끼를 먹고 보았다. 평범한 기승전결이 담긴 로맨스라 보기에는 어딘가 미스테리하고 비범해 보였는데 실제로 그랬다. 절제된 감정선과 요란하지 않은 카메라 무빙 덕에 한동안 멈춰서 아사코가 내린 선택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자 눈시울이 붉어진 나를 발견했다. 새롭고 안정적이지 않은 것이 매력적으로 보였던 어리고 어리석었던 나와 아사코가 조금은 동일시되었다. “그래 난 당신을 이해해. 무엇이 중한지 두 번째에 깨닫게 됐으면 된거야.” 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팟캐스트


음악도 조금 지루해지고, 영화도 한 편 보아서 다른 편을 이어서 집중해보기 부담스러울 때 나는 팟캐스트를 꺼내 듣는다.


문학이야기, 신형철 방송 편(2013~2014)

여행지에 듣기 좋은 <문학이야기 제 8회, 문학과 여행>

신형철 문학평론가가 2013년~2014년에 걸쳐 진행했던 이 팟캐스트는 농도가 짙다. 문학 해설의 진면목을 들을 수 있는 팟캐스트. 이 방송을 들으며 평론가를 알게 됐고 단순 내러티브 위주나 재미 위주의 방송에서 벗어나 있음에 열광했고 지금은 중단되었지만 모든 편을 다운로드하여 두고두고 듣는다. 구성도 좋다. ‘문학의 만남’에서는 저명한 작가들을 초대해 작품에 대해 대화하고, 성격, 대화, 관계, 여행, 천재 등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문학 작품들을 빌려 그의 단상을 소개한다. 문학을 섭렵한 델리케이트한 평론가가 문학을 매개로 인생에 대한 고찰을 담은 보물 같은 팟캐스트다.


재즈가 알고 싶다 - 데이브니어

졸릴 즈음 나른하게 듣기 좋은 팟캐스트 <재즈가 알고 싶다>


비행기에서 온 몸이 저릿저릿해지고 집중력이 극하강할 때 즈음에 책과 영화를 내려놓고 편안하게 듣기 좋다. 매회 20여분이라 호흡이 짧다. 국내 재즈 보컬리스트와 연주자들이 나와 재즈의 역사를 연재하기도 하고, 재즈곡의 노랫말을 풀어주기도 하고, 즉석 재주 연주를 하기도 한다. 졸릴 때 즈음 듣지만 듣다 보면 또 재미있어서 잠이 안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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