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불안과 함께 살아가는 법

"불안의 다른 각도"

by 루치올라

‘불안을 없애는 법’, ‘불안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법’

같은 콘텐츠가 넘쳐난다.

이런 콘텐츠가 많다는 건, 그만큼 현대인들이 심각한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불안을 조금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저 없애려는 감정이 아니라,

그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불안의 기저에는 낮은 자기 효능감이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나는 내가 나를 컨트롤할 수 없어." 이 무의식이야말로 불안을 키우는 불쏘시개다.

불안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이기도 하고,

살아온 경험이 교훈으로 정리되지 못해 남겨진 감정의 잔재이기도 하다.

살아갈 날에 대한 막연한 불안, 살아온 날들에서 비롯된 상처가 뒤섞여 오늘의 불안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불안을 단순히 나를 괴롭히는 존재,

내 삶을 방해하는 악마처럼 여기기보다는 오히려 분석하고 관찰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그것은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몸과 마음의 진지한 생존 본능이며,

나를 잃지 않으려는 깊은 내면의 신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불안을 무릎 꿇리게 하는 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불안을 억누르거나 피하는 것이 아니라 불안이 다가오는 순간, 곧바로 인지하는 것이다.

"아, 또 왔구나." 이처럼 존재를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불안은 이미 일정 부분 힘을 잃는다.

불안은 감정이지만, 실은 잘못된 인지에서 비롯된 결과일 수 있다.

불안은 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오히려 내면의 균형을 무너뜨리고 스스로를 지치게 만들 뿐이다.

예전에는 불안을 무조건 억누르거나 회피했다.

그러나 그런 방식은 불안에게 "나는 약해"라는 메시지를 주는 셈이다.

이제는 다르게 대응해야 한다.

"전처럼 너한테 휘둘리지 않아. 이번엔 내가 너를 다뤄보겠어."

이것이야말로 불안에게 지배당하지 않는 길이다.

같은 방식으로 대응하면 불안은 언제나 같은 방식으로 나를 제압할 것이다.

이제는 내가 불안을 다루어야 한다.

그 첫걸음은 이성적인 인지다.

그렇게만 해도 무릎을 꿇는 쪽은 내가 아니라 불안이 된다.




많은 사람들은 불안을 무조건 없애야 할 감정으로 여긴다.

하지만 불안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반응일 뿐이다.

실체가 없음에도 우리는 그 앞에서 얼어붙고, 숨고, 흔들리고, 초조해한다.

이제부터 불안을 싸워야 할 대상이 아닌 평생을 함께해야 할 감정,

삶의 동반자로 받아들여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살아 있는 동안 매 순간 처음 가는 길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1분 후, 1초 후조차 우리는 아직 살아보지 않은 시간 속을 걷는다.

처음은 언제나 설렘과 두려움을 동시에 품는다.

그래서 불안은 살아 있다는 증거이자 살아 있는 한 계속될 감정이다.

우리는 종종 "나쁜 일이 일어날 거야"라는 생각을 무의식적으로 반복한다.

이것이 바로 부정적 자기 대화이며, 자기 암시이고, 재앙화 사고이다.

현실과 분리된 생각을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이는 인지 왜곡, 그것이 불안을 실체로 만들어버리는 함정이다.

이럴 때 필요한 힘은 생각과 사실을 구분하는 능력이다.

그 힘이 바로 진실을 꿰뚫는 지혜이며, 회복의 시작점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불안이 찾아왔을 때 절대 도망치거나,

억누르려 하지 말고 그 감정을 관찰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아, 불안이 찾아왔구나." 그림자처럼, 감정의 한 형태로 바라보는 것이다.

이렇게만 해도 불안은 내 감정이 아닌 내가 다룰 수 있는 대상으로 전환된다.

이것이 인지적 대처의 핵심이다.




그리고 생각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또 다른 효과적인 방법은 움직임이다.

몸이 움직이면 감정은 멈춰 있을 수 없다.

실제로 많은 불안장애 환자들이 운동이나 노동을 통해 증상을 완화한 사례가 많다.

약물은 일시적인 증상을 줄일 수는 있어도 생각의 구조 자체를 바꾸지는 못한다.

우리는 자주 과도한 통제로 불안을 잠재울 수 있다고 착각한다.

"조심해. 혹시 잘못되면 어쩌지?"

이런 염려는 마치 미래를 통제할 수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하지만,

사실상 현실과는 무관하다.

염려가 미래를 바꾸지는 못한다.

냉정한 이성으로 이 생각이 현실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따져볼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불안은 점점 더 커져만 간다.

그래서 나는 말하고 싶다.

불안은 싸워야 할 적이 아니라 이해하고 활용해야 할 자원이라고.

그 감정은 삶을 더 진지하게 살아가게 만드는 가장 인간적인 흔들림이다.

불안이 찾아올 때마다 그것을 성장의 원동력으로 바꾸는 사람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이끌어가는 사람이다.

자기감정을 자기 손으로 다스릴 줄 아는 사람, 그 사람이 진정으로 강한 사람이다.

우리는 이제 불안을 피하거나 없애려 하지 말고,

그 감정을 다르게 마주하는 법, 그리고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것이 오늘 우리가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온전한 자기 삶을 살아가는 길이다.





에픽테토스 (Epictetus) – 스토아 철학자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사물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우리의 해석이다.”
→ 불안은 실체가 아니라 우리의 해석이라는 통찰을 강조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Marcus Aurelius) – 로마 황제이자 스토아 철학자
“당신의 힘은 외부의 사건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당신의 반응에 달려 있다.”
→ 불안을 다루는 ‘이성적 인지’의 중요성을 강조


알랭 드 보통 (Alain de Botton) – 현대 철학자
“우리가 괴로운 건, 잘못된 감정 자체가 아니라 그 감정을 다루는 방식이다.”
→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다루는 기술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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