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게는 시간이 키운다.
처음에 들고 있었던 건 100그램에 불과했다.
그까짓 감정 하나쯤이야,
가볍다고 여겼고,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이상했다.
무게는 변하지 않았는데,
그 감정은 점점 더 나를 짓눌렀다.
손끝은 저리고, 마음은 숨 막히도록 답답해졌다.
그것은 무게의 변화가 아니라, 시간의 변화였다.
너무 오랫동안 쥐고 있었던 탓이었다.
감정도 그렇다.
오래 껴안고 있을수록, 처음보다 더 무겁고 더 깊어진다.
사람들은 말한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
하지만 어떤 감정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아프다.
묻어두었다고 사라지는 게 아니다.
내 안에서 조용히 부풀어 오르고,
형체를 바꿔 다시 나를 흔든다.
우리는 종종 과거를 외면한 채 앞으로만 가려한다.
하지만 진짜 회복은, 과거로 돌아가는 일에서 시작된다.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을 되돌리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되돌릴 수는 없지만,
그날의 상처를 다시 이해하고 새롭게 해석할 수는 있다.
그 이해는 타인을 향한 도덕이 아니다.
누군가를 용서하라는 윤리도 아니다.
그저,
그날의 나에게 다가가
이야기를 들어주는 일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지.
그땐 네가 가진 모든 걸 다해 견뎠던 거야.”
과거를 재해석할 수 있어야,
지금의 나를 다시 살아낼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여전히 과거의 목줄에 매인 채,
지금이라는 이름의 시간에 휘둘리며 살아가게 될지 모른다.
진짜 이해는,
내 안에 남은 상처의 옆자리에 조용히 앉는 것이다.
누군가 위로해 주기를 기다리는 대신,
내가 나에게 말을 건네는 일이다.
그제야 깨닫는다.
상처는 아물지 않은 채로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반드시 덮거나 지워야 하는 게 아니라는 걸.
그저,
그날의 나를 놓아줄 수 있을 만큼
이제의 내가 단단해졌다는 걸 아는 것.
결국, 우리는 그 무게를 버리는 게 아니라,
그 무게를 견딜 수 있는 팔과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오늘도 나는,
내 과거의 어딘가에서 아직도 웅크리고 있는 나를
다시 데리러 간다.
가만히 손을 내밀어, 말없이
그 아이의 등을 한 번 쓰다듬어주는 것으로.
칼 융 (Carl Jung)
"나는 내가 극복한 바로 그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I am not what happened to me, I am what I choose to bec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