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인지로 길들이다
내 안에는 두 마리 늑대가 산다.
하나는 분노, 질투, 슬픔, 자기혐오로 이루어진 늑대,
다른 하나는 사랑, 연민, 용기, 평온으로 이루어진 늑대다.
이 두 마리는 매일같이 싸운다.
그 싸움의 피해자는 언제나 나다.
매번 불안에 휩쓸리고,
사소한 말 한마디에 며칠씩 무너진다.
이럴 때면 문득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다.
북미 원주민 체로키족 전통에서 전해지는 오래된 우화다.
“사람의 마음에는 두 마리 늑대가 산단다.
마음속에서 늘 싸움이 벌어지지.
어느 늑대가 이길까요?”
손자가 묻자,
할아버지는 조용히 대답했다.
“우리가 더 많이 먹이를 주는 늑대가 이긴단다.”
그리고 이긴 늑대는 그 사람의 말과 행동,
삶 전체에 깊은 영향을 미치게 된단다.
그 말이 내 안에서 자리를 잡았다.
지금 내 감정은, 수많은 선택들의 결과다.
그리고 그 선택을 자각하는 힘이 바로 ‘메타인지’다.
메타인지란 단순한 인식이 아니다.
감정을 바라보는 감각,
즉 감정에 휘말린 나를 한 발짝 떨어져 바라보는 ‘또 하나의 나’.
그 눈으로 나는 묻는다.
“나는 지금 어떤 늑대에게 먹이를 주고 있는가?”
이 자기 인식의 힘을
고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누구보다 먼저 중요하게 여겼다.
그가 자주 인용한 격언은
델포이 지역의 아폴론 신전 입구에 새겨진 말이었다.
“너 자신을 알라.”
그 말은 결국,
내 안에서 어떤 감정이 나를 지배하고 있는지,
어떤 늑대가 나의 에너지를 먹고 자라나는지를
스스로 자각하라는 뜻이다.
그 먹이를 먹고 자라난 늑대는
나의 사고방식과 선택, 말과 행동을 지배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자신의 선택과 그 결과를 먼저 들여다봐야 한다.
철학자 칸트는 인간을
“자기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라 했다.
이건 누구에게도 의존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왜냐하면, 누구도 나 대신 아파주지 않기 때문이다.
불교에서는 메타인지의 힘을 ‘관(觀)’이라 부른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감정을 관찰하는 힘.
그 힘이야말로 고통과 혼란을 이겨내는 가장 근원적인 방식이다.
나는 이제 안다.
감정을 억누르거나 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감정을 바라보고,
내가 어느 감정에 에너지를 쏟고 있는지를 들여다보는 것.
그리고 깨달았다.
다 쏟아버린 감정은
나를 지키고 구할 다른 에너지마저 고갈시킨다는 것을.
진짜 용기란,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제대로 마주하는 것이고,
진짜 자유는
그 순간의 선택에서 비롯된다.
나는 오늘도 내 안의 늑대들과 살아간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지금 나는 어떤 늑대에게 먹이를 주고 있지?”
그 질문 하나가,
내가 내 삶을 잃지 않도록 밝혀주는 등대가 된다.
"우리가 더 많이 먹이를 주는 늑대가 이긴다."
– 체로키족 전통 우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