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평온은 인지의 반복

"진흙 속에 평온"

by 루치올라

사람들은 평온을 감정이라 여긴다.

하지만 진짜 평온은 ‘느끼는 것’이 아니라, ‘반응하지 않는 것’에 가깝다.

처음엔 흔들리던 감정도, 반복되는 상황 속에서 익숙해지고, 결국엔 무심해진다.

이 무심은 무감각이 아니라, 안정된 인지의 결과다.

어떤 자극이 와도 과잉 반응하지 않고, 해석의 틀을 달리함으로써

감정의 중심을 스스로 붙잡는 능력.

나는 이 과정을 연꽃에 비유하고 싶다.

진흙 속에서 피어나지만 흙탕물에 물들지 않는 꽃.

앞서 이야기한 아타락시아처럼, 연꽃은 ‘그 속에 있으되, 그와 같지 않은 존재’다.

우리는 매일 수많은 자극 속에서 살아간다.

말 한마디, 눈빛 하나, 지나가는 사람의 표정에도 쉽게 휘청인다.

심지어 가까운 사람일수록 그 영향력은 더 크다.

“먹을 가까이하면 검어진다.”

이 말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늘 불안하고 공격적인 사람 옆에 있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감정의 결을 닮아간다.

물들어 가는지도 모른 채, 그 감정의 기류 속에서 자신을 잃는다.



문제는, 그렇게 물들어 간 자신을 자책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 탁해진 마음의 원인을 누군가에게 돌리며 살아간다.

‘내가 이토록 변한 건 너 때문이야.’

결국, 마음은 이중고에 시달린다.

자기 자신에 대한 미움과, 그 탓을 돌릴 대상에 대한 원망.

그래서 평온은 단지 조용한 마음이 아니라,

자극에 휘둘리지 않는 반복된 인지 훈련이다.

연꽃처럼, 진흙 속에서도 스스로를 지켜내는 사람.



그런 사람은 아무리 혼란한 세상에서도

자신의 중심을 잃지 않는다.

익숙함이 때로는 무기가 된다.

반복된 자극 속에서 감정은 더 이상 요동치지 않고,

그 속에서 우리는 ‘반응하지 않을 자유’를 얻는다.

평온이란,

결코 조용한 환경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가장 소란한 자리에서

내면의 조용함을 선택할 수 있는 힘.

그것이야말로, 진짜 평온이다.

연꽃이 진흙 속에서 피어나듯,

우리도 어지러운 삶 한가운데서

스스로를 피워낼 수 있다면

그곳이 곧, 아타락시아다.




연꽃은 진흙 속에서 피어난다.
그러나 진흙에 물들지 않는다.

– 불교 경전에서 유래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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