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 있기에, 덜 집착하고 더 자유롭게 영원하지 않음을 아는 지혜
지극한 이치를 잊고 살고 있지만
모든 생은 반드시 유한하다.
시작이 있기에 끝도 있고,
무언가에 지나치게 집착하기엔
끝은 언제나 예상보다 빠르게 다가온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마치 영원할 것처럼 끝을 외면하지만,
끝이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는 순간,
삶은 오히려 평화와 자유가 선명해진다.
그 깨달음을 단 한 문장으로 실천한 철학자가 있다.
나는 이 대목에서 그의 이야기가 문득 떠오른다.
삶 자체가 철학이었던 자,
정복할 수 없는 자유인이었기에
알렉산더는 디오게네스를 찾아간 것이다.
알렉산더는 세상을 정복했지만,
자신은 여전히 욕망과 성취의 굴레에 묶여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반면, 디오게네스는 아무것도 갖지 않았지만
그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에게 주인이었고,
절대적인 내면의 자유를 지닌 자였다.
그래서 어느 날, 정복자 알렉산더 대왕은 철학자 디오게네스를 찾아갔다.
세상을 호령하던 젊은 왕은, 햇살 아래 태연히 누워 있는 디오게네스에게 말했다.
“소원이 있다면 무엇이든 들어주겠다.”
그러자 디오게네스는 가볍게 대답했다.
“비켜주시오. 햇빛을 가리고 있소.”
디오게네스는 세상의 부와 권력, 명예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알고 있었다.
모든 것은 결국 사라지며,
진정한 자유는 소유가 아니라,
욕망으로부터의 이탈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우리는 종종 잊는다.
끝을 잊고 살아가는 삶은,
끝없는 소유와 확장에 매달리기 쉽다.
더 많은 것, 더 높은 자리, 더 큰 이름을 쫓다가
정작 중요한 것을 잃어버린다.
그러나 삶이 유한하다는 단순한 진실을 받아들이고
필연적으로 물어봐야 한다.
“나는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우리가 붙잡을 수 있는 것은
끝없는 시간도, 불멸도 아니다.
단지 지금 이 순간,
스스로가 의미 있다고 여기는 삶의 방향이다.
디오게네스처럼,
세상의 온갖 제안과 유혹 앞에서도
“그것은 내게 불필요하다”고
단호히 말할 수 있는 자유의 힘.
그것이야말로, 유한한 삶을 진정으로 빛나게 한다.
사람들은 더 많은 것을 가지기 위해
오늘을 팔고, 자신을 잃어간다.
하지만, 그는 덜어냄으로써
더 넓은 세상을 품었다.
어떤 왕도, 어떤 부자도
그토록 가볍고 당당하진 못했다.
그는 대낮 햇살 아래 누워 말하곤 했다.
“내 그림자조차 내 것이 아니다.”
그 한마디에 담긴 자유는
어떤 제국의 국경선보다 넓었다.
불필요한 것을 거절할 수 있는 당당함,
그것은 곧
무엇을 선택하지 않음으로써,
무엇이 진짜 나인가를 아는 자의 태도이다.
무언가를 반드시 갖지 않아도 흔들리지 않는 사람,
그는 이미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것이 철학이 말하는 자족의 진리요,
존재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단단한 평온이다.
그리고 그 마지막 고요 속에서,
그는 세상이 줄 수 없는 평화를
오롯이 품었다.
붓다 (Buddha)
“모든 것은 무상하다. 그러므로 집착은 고통의 원인이다.”
– 유한함을 받아들이는 것이 해탈의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