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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서 Nov 17. 2019

2. Yes or Yes 영국 생활

<2 장> 계속 이렇게 살 순 없잖아


‘연서님 환영합니다’    


히스로 공항에 도착한 후 홈스테이까지 픽업해 줄 기사님을 만났다. 전수한, 내 이름이 적힌 플랜카드를 들고 있던 그분의 이름이다. 큰 키에 조금 마른 몸, 눈꼬리가 내려간 인상에 갈색 정장을 입은 기사님이 영국에서 유일하게 아는 사람이 되었다. 날씨는 선선했고, 하늘은 넓게 트여있었다. 우리는 공항 주차장으로 걸어갔다.   


"집이 꽤 멀더라고요, 그리니치 맞죠? 세계표준시간인 곳."

"네, 맞아요. 여기서 많이 먼가요? 어떤 동네인지 잘 모르겠어요."

"한 시간 반 정도 걸릴 것 같아요. 동네는 저도 안가봐서 모르겠네요."    


4개월 동안 머물게 될 홈스테이는 그리니치 근처에 있었다. 최종 배정이 되기 전까지도 몇 번 변동이 있던 터였다. 주소가 적힌 종이를 손에 꼭 쥐고 창문 밖을 바라봤다. ‘여기가 런던인가.’ 공항 근처의 시골길을 달리고 있으니 실감이 나지 않았다. 런던아이도 빅벤도 템즈강도 아직 나를 설레게 하는 것들은 아무 것도 없었다. 비가 올 것 같은 회색 하늘과 영어로 적혀있는 도로 표지판 만이 영국에 있다는 것을 알려줄 뿐이었다.    

 

상상하고 있었다. 넓은 정원이 있는 고급스러운 이층집을. 정원에는 아이들이 세인트 버나드 같은 대형견들과 뛰어놀고, 늦은 오후쯤엔 우유를 넣은 차를 마시면서 가족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지 않을까. 그런 생활을 하면서 영어를 배울 수 있다니 가슴이 뛰었다.    


"여기네요."

"여기요??"    


도착한 곳은 인적이 드문 골목길이었다. 정원이 있을 틈이 없었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3층짜리 빌라들이 골목의 시작점부터 끝까지 줄을 지어 있었다. 집을 복사 붙여넣기 할 수 있다면 이런 느낌이었을 거다. 차가운 바람이 불어왔다. 한참 주소를 보던 기사님은 "여기네요."라고 말하며 56이라고 적혀있는 현관문 앞에 가방을 내려놓았다.     


"계세요~"


똑똑, 아무도 나오지 않는다. 다시 한번 똑똑, 아까보다 조금 더 세게 두드렸다. 그러자 문이 열렸다.    


"안녕! 어서 와요. 네가 연서구나, 들어와. 영어이름은 있니? 없어? 그래, 오늘부터 너를 ‘쑤’라고 부를게."

‘???’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아니, 뭐라고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랩처럼 흘러나오는 영어에 해석기능이 정지됐다. 문이 열리면서 일반인 몸집의 두 배는 넘어 보이는 흑인 여성이 밖으로 나왔다. 그녀의 목소리는 쨍하고 날카로웠다. 기사님과 나는 떠밀리듯 현관문 안으로 들어왔다. 침착하게 내 소개도 하기 전에 영어 이름도 정해졌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 있자, 기사님이 대신 홈스테이맘과 대화를 했다. 그리고는 내 방은 3층이라며 3층까지 캐리어를 옮겨주셨다. 30kg에 육박하는 이민가방을 말이다.

    

"만약에, 정말 만약에 도움이 필요하면 이리로 전화줘요."     


그의 이름 세글자가 적힌 명함이었다. 작고 얇은 종이가 손 위에 놓여졌고 정적이 흘렀다. 기사님은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괜찮을 거라고 걱정하지 말라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나를 다독여주셨다. 런던의 홈스테이는 흑인 가정에서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된 건 한 참 뒤였다. 그날 밤, 텅 빈 2인실에서 조각난 상상을 끌어안고 울었다.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홈스테이맘의 이름은 잭키였다. 잭키는 내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녀가 하는 말은 영어가 아니라고 느껴졌다. 일단 너무 빨라서 이해할 수가 없었다. ‘쑤!”라고 한마디만 하면 온몸이 긴장됐다. 그녀와 마주치면 항상 웃는 얼굴로 ”Yes, Yes”만 했다. 'No'를 해본 적이 없다. 무슨 말인지 몰랐으니까. 후에는 그녀와 마주치는 것조차 무서워서 11시가 넘어서야 집에 들어오곤 했다.    


”쑤, 이것 좀 만들어 줄래?“    


일요일 아침, 거실에서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잭키를 만났다. 조용히 토스트 한 장만 먹고 나가려다가 딱 걸렸다. 그녀는 스크램블을 만들고 있었다. 프라이팬을 넘겨받고 투명한 흰자가 흰색으로 변하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어느새 테이블에는 레드빈과 토스트, 버터와 잼이 올려져있었다. 런던에서 맞는 일요일 아침, 처음으로 집에서 브런치를 먹었다. 5일 내내 도망만 다니다가 처음으로 다른 학생들과 식사를 같이한 것이었다. 홈스테이에는 총 6명의 학생이 살고 있었다. 몇몇은 시티투어를 나갔고 인도네시아에서 온 에피파니와 몽골에서 온 아므라가 테이블에 앉았다. 갑자기 잭키가 내 손을 잡았다.     


”기도하자.“    


내 눈이 커지자 에피파니가 나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옆 사람의 손을 잡고 잭키가 하는 기도를 들었다. 색다른 경험이었다. 그녀는 오늘의 식사에 감사했고, 가진 것에 감사했다. 함께 사는 학생들을 만난 것을 감사했고, 학생들의 가족을 위하는 기도까지 했다.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는 이 사람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구나. 외적인 것만 보고 판단했었구나.’    


말투 때문에 잭키가 항상 화가 나 있다고 생각했고, 흑인이라는 점 때문에 나도 모르게 경계하고 있었다. 제대로 얘기를 나눠본 적도 없다. 그냥 마음속으로 ‘잭키는 이런 사람일거야’라고 정의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 후 잭키를 대하는 나의 모습이 달라졌다. 그녀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겠으면 ”다시 한번 천천히 말해줄래요?”라고 물어봤고, 천천히 설명해주는 말을 들은 뒤 아니라고 할 것들은 아니라고 했다. 내 의견을 조금씩 얘기하기 시작했다. 수업이 끝나면 집에서 저녁을 먹으면서 한 가지라도 얘기를 나눌 수 있도록 노력했다.    


우리는 모두 다른 환경에서 자랐다. 태어난 국가가 다르다면 피부색이 다를 수 있고, 생김새가 다를 수 있다. 언어가 다를 수 있고, 표현 방식이 다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걸로만 누군가를 정의할 수는 없다. 상대방과 대화하고 얘기해 보기 전까지 외적인 모습만으로 정의한다면 소중한 인연을 놓치고 살게되지 않을까. 


같은 점만 있는 사람은 없다. 쌍둥이 형제도 생각과 가치관이 다르다. 누군가와 가까워 지고 싶다면 나와 다른 점을 인정해야 한다. 잭키와의 관계를 통해서 배운 것은 선입견을 갖지 말자는 것과 먼저 마음을 열고 다가가지 않으면 상대의 마음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 깨달음은 나의 영국 생활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6개월 동안 100명의 외국인 친구들을 사귀고 깊이 교류할 수 있었던 것은 비행기에서 내린 타지에서의 첫 날, 잭키의 집 현관문 앞에 오게 된 덕분이었다.    


겉으로 보기에 우리 엄마와 잭키는 다른 점 투성이었지만 그녀는 ‘홈스테이맘’이었다. 엄마처럼 이불을 차고 자를 나를 보며 아침에 살짝 덮어주기도 하고, 생일에는 상다리가 휘어지게 요리도 해주고, 필요한 생활용품은 없는지, 먹고싶은 것은 없는지 엄마처럼 계속 물어보기도 했다. 잔소리가 심해졌고 여전히 화 난 목소리이지만 이제는 안다. 그녀가 날 신경써주고 있다는 것을. 4개월 동안 그녀의 집에서 생활하고 마지막으로 인사할 때 이렇게 얘기했던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었을까.  


“영국에서는 당신이 나의 엄마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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