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서 Aug 29. 2019

1. 1000만 원 모으기

<2 장> 계속 이렇게 살 순 없잖아

이 글은 청소년, 청년, 혹은 아직 진로를 고민하는 직장인을 위한 글입니다. 무슨 전공을 선택해야 하고 어떤 직업을 가져야 하는지 고민하는 모든 친구들을 위해 글을 써 봅니다. 제가 방황하던 시절 누군가가 옆에서 말해 주었으면 했던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하고 싶은 걸 다 해보자.' 


나를 위해서 살겠다고 생각하고 하고 싶은 것을 떠올리니 해외에 가고 싶었다. 공부를 할수록 세상이 궁금했고 세계를 보고 싶었다. 3학년을 마칠 즈음 영국으로 어학연수를 가겠다고 마음먹고 휴학계를 냈다. 연수가 끝나면 유럽여행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형편상 집에 손을 벌릴 수는 없었다. 돈을 벌어야 했다. 





다들 한 번씩 꿈꿔보셨죠? 저기 저 사이에 내가 있는 모습을




영국으로 어학연수를 갔다 온 후기를 보면서 대략 얼마 정도가 필요한지 알아봤다. 6개월에 1500만 원 정도가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왔다. 아르바이트를 하면 평균 월급은 100만~130만 원 정도 벌 수 있었다. 목표는 1,000만 원 모으기. 일단 1000만 원이란 금액을 달성하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기말고사기간에도 틈틈이 아르바이트 공고에 지원했고, 기말고사가 끝나자마자 12월부터 아르바이트를 시작할 수 있었다. 


일을 하면 연수 기간이 줄어들 수 밖에 없다. 최대한 영어를 접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했다. 서울에 있는 영어학원 공고에는 전부 지원했다. 대부분 탈락했지만, 한 군데에 합격할 수 있었다. 계속 실패하면 어떤가, 한 번만 성공한다면 성공률은 100%인데. 일을 시작하고 시간이 지난 후에 원장님께 물어본 적이 있다. “원장님, 제가 경력이 없었는데 왜 선생님으로 뽑아주신 거예요?” 원장님은 나를 한참 쳐다보다가 대답했다. “어학연수를 가기 위해 돈을 모으고 싶다는 말이 기특했거든요.” 그때 느꼈다. 간절함은 길을 만들어 낸다는 것을.





이런 영어 선생님은 아니었지만...




"선생님 이건 어떻게 읽어요?"

"이게 무슨 뜻이에요?“


초등부 영어 선생님이었다. 소리영어라는 것을 이때 처음 알게 됐다. 듣고 말하는 것에 집중하는 학원이었다. 아이들은 선별한 문장들을 종일 되감아 듣고 따라 말했다. 신기한 점은 새로 등록한 학생도 몇 주만 지나면 발음이 원어민과 비슷해진다는 점이었다. 어린나이인 것도 있고, 선입견도 없기 때문에 들리는대로 영어의 리듬과 강세를 익혔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발음이 좋아지니 영어로 말하는 것을 좋아했고, 궁금한 게 있으면 바로 질문을 했다. 내 업무는 이런 질문들에 대답하는 것이었다. 과제를 잘했는지도 체크하고, 학부모님께 특이사항이 있으면 전달도 했다. 


'이런 건 이렇게 바꾸면 좋겠는데?'

'이런 양식이 없으니 하나 만들어볼까?'




갑자기 아이디어가 샘솟는다!



일이 조금씩 익숙해지자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서 했다. 워드와 파워포인트는 대학 과제를 하면서 충분히 익숙해진 상태였다. 오래된 서류 양식들을 워드파일로 깔끔하게 정리했고, 상담카드 양식도 만들었다. 찾아서 일하니 원장님과 부원장님의 칭찬도 듣게 됐다. 


편입 영어는 문법, 단어, 독해가 전부다. 그러다 보니 말은 한마디도 못 했다. 원장님은 나에게도 초등부에 있는 동화책을 시간 날 때마다 소리내어 읽으라고 했다. 교실 한쪽 벽면이 온통 동화책이었다. 일하는 기간에 50권을 읽었다. 아이들과 똑같이 테이프를 들으며 쉐도잉을 했다. 물론 이 시간으로 말이 트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영국에서도 귀가 먼저 트였던 것은 이때 수없이 들었던 동화책 덕분일 것이다. 





    

항상 가지고 다녔던 찍찍이! 무려 모든 것이 수동!





중학생은 미국 교과서로 공부하고 있었다. 영어로 된 교과서를 읽고 이해하는 데 무리가 없었다. '중학생들은 이미 영어 교과서를 읽고 있는데... 나는 이 상태로 어학연수를 가도 되는 걸까.' 내 영어 실력이 중학생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니 자존심이 상했다. 아이들을 보며 자극을 많이 받았다. 


환경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배우고 싶은 것이 있다면 보고 들을 수 있는 환경으로 뛰어들어야 한다. 나는 일을 하는 8시간 내내 영어에 노출되어있었고 실력이 뛰어난 아이들을 보며 끊임없이 자극을 받았다. 영어에 대한 욕구를 더욱 끌어올렸다. 학원에서 이미 어학연수를 시작한 셈이었다. 혼자 있을때면 영국에 있다고 상상하면서 대화를 중얼거려 보기도 했다.





환경 안으로 뛰어들자!



8개월 동안 1000만 원을 모았다. 더 값진 건 스피킹의 기초 실력을 닦을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주어진 일뿐 아니라 주도적으로 일을 해 본 경험도 생겼다. 연수 기간이 짧아질 수밖에 없었지만, 나에게 투자할 수 있는 돈을 벌어본 첫 경험이 됐다. 


'와…. 뭐가 이렇게 많지.'


강남역에 10분만 걸어 다니면 건물마다 붙어있는 유학원 간판을 볼 수 있다. 인터넷에 검색하면 사이트가 끝도 없이 나온다. 유학원을 통해서 등록은 해야 하는데 어느 유학원을 선택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제일 큰 학원 3곳을 선택해서 방문해 보기로 했다. 유학원마다 1시간 동안 상담을 받았지만 딱히 마음에 드는 곳은 찾지 못했다. 취업보장까지 패키지로 상품을 판매하는 곳이 많았고, 무엇보다 그런 곳은 총 금액이 예산을 훨씬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상담원은 유학원과 제휴한 어학원으로 등록하라고 홍보하기에만 바빴다. 





건물에 하나씩은 보이는 유학원 간판... 많다 많아



'영국 어학연수 전문, 김영주 유학원'

'여기는 뭐지? 처음 보는데?'


브랜드 어학원의 형식적인 상담에 지쳐있었을 때, 한 유학원의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영국만 전문으로 한다고 하니 관심이 갔다. 네이버 카페에 가입해서 유학원의 후기를 꼼꼼히 읽었다. 출국 전, 연수 중, 연수가 끝나고 돌아온 사람들의 후기까지 확인했다. 세심하게 챙겨주는 유학원이라고 했다. 그리고 원장님이 유쾌한 분이라고 했다. 바로 상담을 예약하고 강남역 사무실로 방문했다.


"오호호호, 연서 학생이구나, 어서 와요, 여기 앉아요, 호호호."

"아, 네 안녕하세요."


영주 언니는 딱 봐도 푸근한 인상이었다. 얼굴에는 장난기가 가득했고 들어가자마자 웃음소리가 사무실에 가득 찼다. 언니와 다른 직원 한 명, 총 두 명이 운영하는 작은 유학원이었다. 


"그래, 어디로 가고 싶어요?"

"런던이나, 브라이튼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런던을 가고 싶긴 한데 예산에 안 맞는 것 같아서 고민이에요."

"오호호호, 한 번 같이 봐요. 예산이 얼마예요?"

"천만원이고, 9월부터 1월까지 4개월 동안 학원에 다니려고요."

"호호 그렇구나, 찾아보면 되죠."


원장님인데 원장님 같지 않고 아는언니 같았다. 트레이드 마크인 '오호호호'로 시작되는 웃음소리는 긴장을 풀게 했다. 언니는 예산에 맞춰서 갈 수 있는 어학원들을 함께 찾아봐 주었다. 





사진만 봐도 '오호호호~' 하는 웃음소리가 들릴 것 같은 영주언니     *** 홍보 아닙니다 ^^*** 




"오전 수업만 하면 4개월에 300~400 정도 들 것 같네요, 여기 EF랑 EmbassyCES라고 두 군데가 괜찮아요. 우리 학생들도 몇 명 공부하고 있는데 후기도 좋아요."

"아 정말요? 위치가 어디에 있는 거예요?"

"EF는 런던 중심에 있어요. 대신 한국 학생들이 조금 있는 편이에요. EmbassyCES는 중심부에서 남쪽인 그린위치 근처에 있어요. 학생별 국가가 조금 더 다양하고 소셜프로그램이 다양하죠, 가격도 조금 저렴한 편이고요. 어때요?"

"홈스테이를 하고 싶은데 연계도 해주나요?"

"네, 금액이 조금 들긴 하지만 첫 달은 연계하는 게 좋을 거예요. 그러면 근처에 주거지가 많은 EmbassyCES가 나을 것 같네요. 오호호호"

"좋아요, 견적 부탁드릴게요."


영주 언니는 예산 범위 내에서 원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어학원을 추천했다. 처음부터 예산을 맞춰 놓고 비교하니까 선택하기 편했다. 특히 내 입장에서 생각해 주는 점을 보고 '여기다!' 라는 마음이 들었다. 유학원을 선택할 때 신뢰 관계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해외에서 무슨 일이 있어도 편안하게 연락할 수 있는 사람, 가족처럼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 영주 언니는 그런 사람이었다. 


600만 원을 순식간에 썼다. 학원비와 홈스테이비용이 400만 원, 비행기 100만 원, 기타 물품 구매에 100만 원. 버는 건 어렵지만 쓰는 건 한순간이라는 생각에 한숨이 나왔다. 하지만 이날을 위해 열심히 모은 것이 아니었던가. 



내가 선택한 EmbassyCES London, 정말 딱 이렇게 생겼다



경험하는데도 용기가 필요하다. 나는 한 번도 해외여행을 나가 본 적이 없었다. 외국인과 대화해 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나를 해외로 나가게 했다. 더 큰 세계를 보며 나의 한계에 부딪혀 보고 벽을 넘어보고 싶었다. 돈이 없어서 돈을 벌었고, 영어를 배우고 싶다고 생각해서 영어학원에서 일했다. 간절함 덕분에 숨어있던 용기도 나타난 것이 아니었을까. 


2009년 9월 7일, 커다란 이민 가방을 들고 인천 공항에 도착했다. 생애 첫 출국이다. 가서 잘 적응 할 수 있을까? 두려움 반 설렘 반으로 비행기에 올랐다.

이전 05화 5. 나를 위해 사는 삶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