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3 장 > 취업의 문 앞에서 방황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일까….'
퇴사한 후 가장 많이 했던 고민이다. ‘다시 취업 전선에 뛰어든다고 하면 무엇을 할까?’ A4용지를 준비하고 사분면을 그렸다. 왼쪽 위에는 좋아하는 일, 오른쪽에는 싫어하는 일이라고 쓰고, 아래쪽에는 관련 직업이라고 썼다. 그리고 떠오르는 대로 다 적었다.
좋아하는 것: 사람, 여행, 영어, 운동, 먹는 것, 새로운 경험 (관련 직업 - 고객 응대, 서비스업, 여행업, 트레이너, 번역, 통역, 요리사 등)
싫어하는 것: 숫자, 컴퓨터, 포장, 단순반복, 앉아있기 (관련 직업 - 회계, 통계, 분석, 자료입력, 창고, 배송 등)
기준은 없었다. 생각나는 대로 썼다. 적다 보니 ‘어? 이거 괜찮겠는데?’ 하고 생각나는 직업이 있었다. 승무원이었다. ‘그래, 여행도 좋아하고 사람 만나는 것도 좋아하고, 서비스업도 잘 맞으니 승무원을 해야겠다. 세계여행도 가능하지 않을까?’ 상상하면 할수록 신이 났다. 승무원이 되려면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서점에서 현직 승무원이 쓴 책을 샀다. 블로그도 찾아봤다. 정보를 모아보니 승무원학원에 다니는 게 최고라는 결론이 났다. 당장 강남에서 제일 유명한 학원 세 곳의 리스트를 만들고, 상담예약까지 했다.
학원은 눈이 부셨다. 번쩍이는 아크릴 간판과 입구에 세워놓은 ‘업계 1위’라는 광고판이 시선을 끌었다. 무엇보다 끝나지 않는 합격자 명단이 입을 벌어지게 했다. 학원 안에는 승무원처럼 옷을 입고 머리를 올려 묶은 학원생들이 지나다녔다. 그 모습이 나를 사로잡았다. 이미 마음은 그들 중 한 명이 되어있었다. 상담 직원은 등록하면 합격할 때까지 모든 과정을 무제한으로 수강할 수 있다고 했다. 커리큘럼은 업계 최고라고 했고 전직 승무원이 직접 강의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오늘 등록하면 10% 할인이 적용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내 카드는 어느새 리더기에 꽂혀 있었다. 다른 두 곳은 상담하러 가지도 않았다. 퇴직금과 남은 월급을 탈탈 털어 200만 원짜리 학원을 등록했다. 그렇게 첫 회사생활로 번 돈은 한순간에 증발했다. 전액 현금으로 낼 수도 없어서 일부 금액은 할부로 냈다. 마이너스로 마무리한 셈이다.
20대의 나는 경제적 관념이 없었다. 충동적 소비자였다. ‘일단 쓰자, 미래의 내가 벌어올 거야.’라는 생각뿐이었다. 신용카드를 만들어서 스스로에게 족쇄를 채웠다. 현명하지 못한 소비는 언제나 발목을 잡아당긴다. 하고 싶은 게 있더라도 조금 더 돈을 소중히 생각했어야 했다. 다른 곳과 비교해 볼 수 있었고 할인을 받을 방법이 있는지 알아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생활비가 필요했다. 부모님께 손을 벌릴 수는 없었다. 강남역의 스터디룸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매일 8시부터 4시까지 근무했고, 출근하면 1시간 동안은 청소만 했다. 40인실의 세미나실을 포함해 14개의 룸과 화장실을 매일 쓸고 닦았다. 청소 후에는 허리가 아팠다. 그래도 즐거웠다. 목표가 있었으니까.
“아~ 오셨어요! 6번 방으로 가세요, 아이스 아메리카노 드시죠?”
일주일 정도 지나니 손님의 얼굴이 익숙해졌다. 단골손님들이 좋아하는 음료를 기억해 두었다가 먼저 얘기하기도 했고, 안부도 물으며 몇 마디 주고받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쉬는 날이면 손님들이 날 찾기도 했다. 사장님은 월급을 올려주셨다. 서비스업은 즐거웠다. 카톡 친구가 된 손님들이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취업은 성과가 좋지 않았다. 1년 동안 하고 싶은 대로 했지만, 불합격 횟수만 늘어날 뿐이었다. 대한항공, 아시아나, 캐세이퍼시픽, 카타르, 싱가포르항공, 진에어, 제주항공, 이스타까지 당시 채용을 진행했던 모든 항공사의 면접에서 탈락했다. 그 중 가장 끔찍했던 면접은 카타르항공의 면접이었다.
카타르항공은 채용 담당자들이 한국으로 와서 지원자에게 직접 이력서를 받는다. 이걸 CV제출이라고 한다. 9시부터 CV제출이 시작이라면 3시간 이전부터 이미 대기 줄이 만들어져 있다. 이력서를 낼 때는 간단한 대화가 이루어진다. 그렇게 때문에 늦게 줄을 서면 저녁 6시가 되어야 면접관을 만날 수 있거나, 심지어 이력서를 낼 기회를 가질 수 없기도 했다. 그래서 무조건 빨리 가야 했다. 그 날도 그랬다. 새벽 5시에 미용실에서 헤어와 메이크업을 받고 택시를 탔다. 그리고 3시간을 기다렸다.
“이름이 뭐예요?”
“연서라고 합니다.”
“지금 일해요?”
“네,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습니다.”
"좋아하는 일인가요?"
"네, 많이 좋아합니다."
“그래요 와줘서 고마워요”
“감사합니다.”
3시간을 기다리고 나눈 대화는 이게 전부였다. 그리고 합격 불합격이 결정됐다. 채용 담당자가 원하는 외모와 인상이 아니라면 절대 합격할 수 없는 선발 방식이었다.
승무원을 준비하는 친구들은 모두 여행을 좋아하고, 서비스업에 관심이 있고,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했다. 나보다 키도 크고 얼굴도 예쁜 경쟁자들 속에서 어떤 점이 내 강점인지 찾지 못했다. 오히려 그들과 비교가 됐다. 간신히 최종면접까지 갔던 싱가포르항공의 결과 발표 날, ‘합격자 명단에 없습니다.’라는 문장을 봤을 때, 자존감은 바닥까지 떨어졌다. 그 날, 나는 승무원이 되는 것을 포기했다.
다시는 강남역에 가고 싶지 않았다. 아르바이트도 그만두겠다고 했다. 사장님은 시급을 더 올려줄 테니 남아달라고 했다. 단골손님들이 연서 씨만 찾는다고 했다. 아무 말도 들어오지 않았다. 이곳에 있어야 할 이유가 없었다.
남아있는 것은 딱 하나, 카드 할부였다. 면접 준비를 하며 결제했던 학원비, 헤어와 메이크업비, 면접 정장 구매 비용 등 펑펑 썼던 돈이 몇백만 원으로 불어 있었다. 그때 처음 알았다. 할부가 무서운 것이라는 것을. 자존감도 바닥난 마당에 남아있는 것이 카드 할부라니. 족쇄에 묶여 지하로 추락하는 느낌이 들었다.
며칠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엄마 얼굴을 보기가 미안했다. 아침마다 일찍 나가던 애가 집에서 종일 잠만 자고 있으니 엄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머리를 말고 메이크업을 받고 정장을 입고 면접을 보러 나갈 때면 "우리 딸 승무원이네."라고 말하던 엄마가 생각났다. 합격하면 여행도 많이 시켜준다고 했었다. 그 생각을 하며 또 울었다. 지금은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다.
목표를 잃으니 회복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다시 일어나야 할지 방법을 몰랐다. 돈을 벌어도 어떻게 써야 할 줄 모르는 20대였다. 수입이 갑자기 끊길 때, 대안을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20대 중반에 또다시 목표를 잃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자존감은 어떻게 세워야 하는지도 모른 채 점점 빛을 잃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