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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서 Nov 17. 2019

1. 덜컥 붙어버린 첫 직장

< 제 3 장 >  취업의 문 앞에서 방황

‘토익점수 땄고, 봉사활동도 했고, 그럼 이제 뭘 하지?’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취업을 걱정했다. 어느덧 4학년 마지막 학기다. 할만한 건 다 한 것 같은데 취업이 안 됐다. 대기업은 서류조차 통과되지 않았다. ‘뭐 해 먹고 살지? 아무데나 일단 지원하고 봐야하나? 영어를 쓰는 일을 하고 싶은데 외국계 기업은 어떻게 취업하는 걸까?’      


보이는 대로 입사 지원을 했다. 사람인, 인쿠르트, 잡코리아에는 매일 엄청난 양의 구인 공고가 올라왔다. ‘이렇게 기업이 많은데 우리회사는 어디 있는 걸까?’ 신입사원을 뽑는 곳이면 매일 10개 이상의 기업에 지원했다. 즐겨찾기 목록엔 온통 구인사이트뿐이었다.      


‘서울시 무역서포터즈모집 (feat. 정부 지원)’     


서울시에서 실행하는 무역서포터즈는 수출중소기업과 학생들을 매칭시켜주고 최종적으로 채용한 기업에 지원금까지 주는 사업이었다. 학생들에게는 사전교육으로 3주간 6시간씩 무역실무와 무역영어에 관련한 교육이 제공됐다. 하루에 만 원씩 지원금도 받을 수 있었다. 기업과 매칭을 해 준다는 문구가 솔깃했다. ‘일단 무료니까. 한번 해봐도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바로 지원했다. 9호선을 타고 등촌역 2번 출구로 나오면 교육장이 있었다. 크리스마스가 지난 12월 27일. 아침 9시부터 4시까지 3주간의 교육이 시작됐다.     


또래 애들 100명이 있었다. 같이 수업을 듣고 이력서를 업데이트하고 면접을 준비했다. 이 프로그램의 핵심은 기업 매칭이었다. 2주차 교육이 끝나자 참여기업의 명단이 나왔다. 100명의 학생, 100개의 기업. 떨어지면 이상한 상황이 됐다.     


‘여기는 필름회사, 여기는 제조업, 이건 무슨 기계를 만드는 회사인가? 부품공장인가. 오, 여기가 일본에서 유명하다는 지퍼회사군.’      


각 기업의 홍보 담당자가 와서 프레젠테이션하는 날이었다. 팀장급이나 인사담당자가 와서 회사소개를 하고 질문을 받았다. 다들 마지막으로는 많은 지원 부탁드린다고 인사를 했다. 회사에서도 좋은 학생들을 뽑고 싶어했다. 100대 100이지만 중소기업과의 매칭이다 보니 직원 수가 50명을 넘어가는 회사를 손에 꼽을 정도였다. 조금만 규모가 크면 경쟁률도 치열했다. 여기서도 스펙이 높은 친구들은 회사를 골라서 갔고, 규모가 큰 회사들은 학생들을 골라서 데려갔다.      


취업이 어렵다 보니 학벌이 좋은 아이들도 많았다. 그렇다면 나는 어디에 지원해야 할까, 전략을 잘 짜야 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기업 소개를 했다.     


“설립된 지 이제 5년이지만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기업문화는 자유롭고, 창의성을 중요시합니다. 젊은 사람들이 많고 회사와 함께 성장하고 있습니다.”     


S모 회사의 팀장님이셨다. 회사소개가 시원시원했다. 화면 속 사진에서도 자유로운 기업문화가 느껴졌다. 창의적인 직원을 찾고 있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1지망, 2지망, 3지망에 회사 이름을 적어 이력서를 보냈다. 며칠이 지나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벌써 몇몇 친구들은 면접을 보고 있다는데 마음이 조급했다. 서포터즈 담당자에게 연락했다. 가고 싶은 회사가 있는데 팀장님의 연락처를 알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팀장님께 마음을 담아서 문자를 보냈다. 꼭 입사하고 싶다고 말이다. 팀장님은 친절하게 답장을 주셨다. 얘기를 하다 보니 내가 제출한 이력서는 총 10장이었는데, 그중에 한 장만 받으셨다는 것을 알게됐다. 어렵게 준비한 자기소개서와 경력증명서가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던 것이다. 내 간절함이 보였는지 팀장님은 이력서를 다시 보내라고 했다. 그리고 얼마 후 면접일정을 알리는 문자가 왔다. 나는 그 면접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여기 보세요~!”     


찰칵, 입사하니 사진 촬영을 해야 한다고 했다. 사원증에 들어갈 사진이었다. 부끄러워하며 디자인팀에 가보니 스튜디오가 있었다. 해외로 나가는 제품 홍보용 사진을 여기서 찍기 때문에 사내에 스튜디오가 있다고 했다. 어색하게 포즈를 잡고 사진을 찍었다. ‘해외마케팅부 연서’ 나의 첫 사원증이 만들어졌다.     


“팀장님, 홍보용으로 만들어 봤는데 이건 어떤 것 같으세요?”

“팀장님, 마케팅은 우리가 담당하는 게 아닌가요?”     


해외마케팅 2팀, 아시아를 담당하는 팀의 막내였다. 명함에는 분명 해외마케팅부서라고 적혀있는데 5개월째 수출입업무만 하고 있었다.      


“연서~ 중국에서 이번 달 주문이 몇 건 있는지 보내 달라고 해. 이번에 신상품 나온 거 리스트 전달해주고. 다 하면 패킹하는 거 도와줘~”      


돌이켜보면 순서가 잘못됐다. '좋아 보여서' 지원서를 내고 입사하고 싶다는 열정을 표현하면 안됐다. 그 전에 내가 맡게 될 업무가 무엇인지, 나는 그 업무를 하고 싶은지 생각했어야 했다. 직무를 선택할 땐 누가 시키지 않아도 그 분야에 전문가가 되겠다는 마이 들어야 한다. 하지만 나는 전부 반대로 했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 좋아 보이는 회사에 가고 싶었고, 멋있어 보이는 명함 타이틀이 갖고 싶었다.    


모든 일이 나와 맞지 않았다. 일을 잘 하려면 업무에 관해 공부도 하고 개선점도 생각해보고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 하지만 그런 마음이 들지 않았다. 심지어 마케팅 업무를 하는 것도 아니고 하는 일 자체는 영업이었다. 신규 업체를 찾고 수출입 통관업무와 포장업무를 했다. 창의적인 인재를 원한다고 했지만, 의견을 내면 번번히 거절당했다. 위에서 이미 결정되었다는 답변만 들었다. 점점 지쳐갔다. 일요일 저녁 8시만 되면 마음이 불안했고, 출근길에는 지하철이 멈춰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회사에 가는 일이 점점 두려워지고 있었다.      


마음이 아프니 몸이 먼저 반응했다. 밥을 먹어도 속이 더부룩했다. 소화가 되지 않았다. 자꾸 위가 부풀러 올랐다. 병원에 가니 만성위염이라고 했다.      


“연서씨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선배님, 배가 너무 아파요. 자꾸 부풀어 오르고 있어요. 저도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탕비실에서 배가 찢어질 듯이 아파서 울던 날, 퇴사를 결심했다. 한 달만 더 있으면 수습기간이 끝나고 정규직으로 전환이 될 예정이었다. 인턴 5개월이 지난 시점에 더 못하겠다고 했다. 회사만 오면 스트레스를 받아 더 이상 다닐 수도 없었다.      


팀장님과 1:1 면담을 하고, 사장님과 면담을 했다. 사장님은 특별히 우리회사가 문제가 있는지, 개선할 점은 없는지 친절하게 물어보셨다. 특별한 문제는 없었다. 회사의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내 시선은 항상 밖을 향하고 있었다. 친구의 시선, 가족의 시선, 교수님의 시선까지. 그들에게 잘 보일 만한 직장과 직업을 갖고 싶었다. 이름있는 회사와 해외마케팅이라는 멋진 부서명이 가지고 싶었다. 직업을 설정하는 기준이 잘못되다 보니 결국 처음으로 돌아가야 했다. 더 자주 마주하고 얘기했어야 할 나 자신은 마음 한 구석에 방치해 둔 채 말이다.     


나의 첫 사회생활은 실패했다. 그리고 실패의 상징으로 한 가지가 남았다.     


지금도 나를 괴롭히고 있는 만성위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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