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한 번째 조각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온다.
Women are supposed to be very calm generally: but women feel just as men feel; they need exercise for their faculties, and a field for their efforts as much as their brothers do; they suffer from too rigid a restraint, too absolute a stagnation, precisely as men would suffer; and it is narrow-minded in their more privileged fellow-creatures to say that they ought to confine themselves to making puddings and knitting stockings, to playing on the piano and embroidering bags. It is thoughtless to condemn them, or laugh at them, if they seek to do more or learn more than custom has pronounced necessary for their sex.
Jane Eyre, Charlotte Bronte
여성은 늘상 평온할 거라 여겨진다. 하지만 여성도 남성과 동일한 감정을 느낀다. 여성들도 그들의 남자 형제들만큼이나 자신의 능력을 펼치고, 노력을 쏟아낼 장이 필요하다. 가혹한 속박이나 절대적인 정체상황에서 여성은 남성만큼이나 고통스러워한다. 조금 더 특권을 가진 동료-피조물들이 여성은 집안에 처박혀 푸딩이나 만들고 스타킹을 뜨고, 피아노를 연주하며 가방에 수놓는 것이 마땅하다 한다면 이는 너무나 편협한 것이다. 관습이 여성에게 필요하다 규정한 것 외에 무엇인가를 더 하려 하거나 더 배우려 드는 여성들을 향해 비난을 퍼붓거나 조롱하는 것은 생각머리 없는 일이다.
제인 에어, 샬롯 브론테
여자라고 집안에만 처박혀 만족할 수는 없다. 남성이나 여성이나 발전 없는 상황, 정체상황은 고통스럽다.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 내가 사는 의미가 무엇인가 고민하고 고통스러워할 수밖에 없다.
사실 집 안이냐, 집 밖이냐는 중요하지 않다. 브론테의 말마따나 자신의 재능과 노력을 펼쳐낼 장이 마침 가정의 영역이라면 그는 행복하게 그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세계 인구의 반이 여성인데, 그들이 모두 살림과 육아에 재능을 가지고 거기에서 성과를 내며 보람을 느낄 거라 생각하는 것은 정말 편협하고 무심한 견해 아닌가.
엄마라서 자녀를 사랑함이 마땅하지만, 엄마기에 나 자신과 내 일생의 소망, 재능이 당연히 희생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야 마땅한 것이 엄마라는 자리도 아니다. 가정이 누군가의 희생 위에 세워진다면, 이는 나머지 가족 구성원이 그 희생양 한 명을 착취하는 삶을 영위하고 있다는 뜻이다. 내가 나의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과 나 자신을 사랑함이 함께 가면 좋겠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한정된 시간과 재화, 체력으로 인해 갈등상황에 놓일 때가 더 많다. 이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을 개인에게만 전가한다면 가혹한 율법이 될 테고, 사회에게만 돌린다면 평생 투덜이 스머프가 되어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끝나게 될지도 모른다.
항상 세상 살며 균형 잡기가 제일 어렵다 느끼는 요즘인데. 이 문제에 있어서도 균형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적으로는 내가 개인적인 움직임, 여성이 자신을 위한 일들을 시작해야 할 것이고, 외적으로는 사회를 향해 변화를 향해 움직여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는 연대가 중요하겠다 싶다.
직장인인 경우에도, 가장 고통스러운 경우는 그 직장에서 돈을 벌며 생계는 유지하지만 스스로가 정체되어 있다고 느끼는 경우더라. 그렇게 보면 참으로 사람은 떡으로만 살지 못하는 존재임이 틀림없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사람은 죽는 그 순간까지 자라나고 변화해야 행복하다.
태생적으로 하늘로부터 받은 소중한 한 조각들, 그것이 재능이든 소명이든을 받아 품고 사는 게 사람인 것 같다. 남성과 여성을 떠나 그 한 조각은 그 사람 속에 파묻혀 발굴당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거다. 삶의 어느 시점에라도 그 한 조각을 찾은 사람들은 기뻐하며 이를 갈고닦으며 산다. 이 한 조각은 기이하게도 발굴되지 않았을 때엔, 그 사람의 속에서 계속해 그를 찔러대며 현 상황을 고통스럽게 느끼게 한다. 그리하여 자신을 찾아내라고, 그렇게 자극해 댄다.
안타까운 것은 너무 늦게 그 조각을 찾아내는 사람. 혹은 일평생 살며 그 한 조각을 찾지 못하는 사람. 혹은 그것을 찾는 것이 마치 배부른 소리인 것처럼 내외적으로 비난받아 금지당하는 사람. 내적인 자극에서 오는 고통과 불만을 일평생 다스리며 살아야 하니 얼마나 힘들까. 게다가 현실에 만족할 줄 모른다, 감사할 줄 모른다, 분수에 넘치는 일을 꿈꾼다는 도덕적 비난까지 받게 되면 얼마나 억울할까.
여성이기에, 엄마이기에 너무도 당연하게 가정의 영역을 떠맡아 그 속에서 만족할 것을 강요받아 고통스러워하는 여성들에게. 자신의 영역이 아니기에 끝없이 일을 쳐내는 것에 머물며 정체되어 하나님께 받은 그 한 조각이 자신을 찔러대어 고통스러운 여성들에게. 비난과 조소보다는 격려를 보내본다.
나 역시도 그 한 조각이 찔러대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 찔림은 거대하지만 나의 성장은 보잘것없어 보일 때가 많다.
그렇기에 이 고통스러운 싸움을 하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이 글로써 위로와 지지, 연대의 마음을 담아 보낸다.
이 밤, 잠들지 못하게 찔러대는 한 조각이 있다면 부디 그 찔림을 외면하지 말고 그 소중한 조각을 세상에 드러내어주시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