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아홉 번째 조각
창틀에 걸쳐 앉아있다면, 나는 건물 안에 있는 것일까 밖에 있는 것일까.
사춘기 고민이 한창이던 중고등학교 시절, 나는 겁도 없이 7층 아파트 창문에 앉아있기를 참 좋아했었다. 물론, 겁도 났기에 한 다리는 아파트 밖으로, 한 다리는 방에 걸친 상태로 창틀에 기대앉아 한참을 바깥을 보곤 했다. 위험하지만 안전한 행동. 안전하지만 위험한 공간. 모험을 하고 싶고 벗어나고 싶지만, 정착하고 성장하고 싶은 그 시기의 혼란이 그렇게 표출되었던 것 같다.
창문이란 참 묘한 공간이다. 안과 밖을 가르지만, 동시에 그 경계를 흐려주는 장치. 창 밖을 보고 있자면, 신기하게도 내 깊은 속을 더듬이며 살피게 된다. 하니 창 밖을 바라보는 것은 독서만큼이나 대단한 지적 활동인 셈이다. 안타깝게도 나는 서울로 이사 온 뒤, 창 밖을 바라보지 않고 산다. 볼품없는 풍경, 재미없는 도시. 창 밖을 바라봐도 기쁨이 없다. 남아공 살던 시절, 창 밖에는 푸른 잔디와 꼬마쥐가 노는 트램펄린이 보였다. 우리 집 마당냥이 쩜이를 비롯한 고양이들이 오가는 것도 보였고, 때때로 후투티가 찾아오기도 했다. 따오기도 단골손님이었다. 그러니 나는 마당을, 창 밖을 자꾸 볼 수밖에 없었다. 밤이면 하늘의 별을 봐야 했다. 우리 집 지붕 위로는 은하수가 흐르곤 했다. 하지만 서울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나는 이제 창 밖이 싫어서 쳐다보지 않는다. 그러니 내가 깨달음을 얻지 못한다면, 그건 아마도 서울 탓, 도시 탓일 게다.
유일하게 창 밖을 바라보는 건, 출근길. 나는 강원도까지 기차를 타고 출근한다. 일주일에 이틀만 일하기에, 멀어도 할만한 출근이다. 무궁화 호를 타고 제천을 지나가면 세상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진다. 매번 사진으로 담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핸드폰 카메라 앱을 실행하는 그 짧은 순간에도 그만 그 풍경들은 사라지고 만다. 무궁화면 기차 중에 가장 느리건만, 풍경을 담아두기에는 너무 빠르다. 그 풍경들, 아름다운 산. 겹겹이 뻗어있는 산들과 하늘을 바라보며, 그 아래 달리는 계곡을 보다 보면 종종 기차가 터널에 들어간다. 그러면 까만 창에 내가 비친다. 출근 중인 나.
아침 8시에 나가 버스를 타고 기차를 타고 한참을 달려 마지막 택시까지 타고 간신히 오후 2시 수업에 도착하는 나. 그렇게 첫날은 3시간의 강의를 하고, 기숙사에서 홀로 잔 뒤, 다음 날은 6시간의 강의를 마치고 다시 대여섯 시간을 걸려 집에 돌아오는 나. 엄마가 없는 한 밤을 보내야 하는 딸의 눈물바람을 전화로, 화상전화로 달래줘야 하는 것은 덤이다. 그렇게 힘겹게 지켜낸 일하는 나.
그 나에게, 아니 대학에 속한 수많은 “나들”에게 대학은 지난 학기 감원을 시도했다. 강사 노조는 교섭을 통해 강의료를 동결시키는 대신 감원을 막았다. 그렇게 지나갔나 했더니 이번에는 학교가 수업 시수를 줄인단다. 변화를 받아들이란다. 받아들일 생각이었다. 9학점이던 나의 수업시수가 8학점이나 6학점이 되어도 어쩔 수 없겠단 생각을 했었다. “나들”은 그랬다. 불안했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학교는 우리에게 4학점을 배정한단다. 4학점. 시간강사니까, 수입이 반토막이 나게 된 것이다. 사실 반도 안 되는 토막.
“What are you doing now?”
“I’m looking for a summer job to pay my rent.”
“Oh, you must be worried.”
내가 가르치는 회화책의 한 구문이 입 속에서 쓰게 맴돈다. 사실 아직 통장에 꽂히는 돈이 줄어든 건 아니기에 막막하진 않다. 다만 나는 슬퍼졌다. 내가 필요 없어진 것 같아서. 좋은 선생님이었다고 생각했고 자부심이 있었는데, 결국 “나들”은 대체불가능한 어떤 존재가 되지 못한 것이다. 도태되었나. 나태했는가. 과거로 밀어내는 흐름에 맞서 계속 노를 저어야 했는데, 쪽배에 타서 잠이라도 자다 떠밀려 내려갔는가. 그 얼굴이 이 얼굴, 이 터널 속 창을 물끄러미 보고 있는 그 얼굴인가.
터널이 끝나고 다시 산과 들이 보인다. 나는 이 풍경에서 무엇을 살펴서 깨달을 수 있을까. “나들”은 노조 분회장과 함께 교무처장을 만나볼 생각이라 한다. “나”는 이제 모르겠다. 투쟁을 해야 하는가. 이곳은 내가 있을 곳이 못된다며 신발의 먼지를 털고 뒤돌아 나와야 할까. 4학점이 되더라도 강의를 계속한다면 그것은 구차한 것일까. 나는 지금 어떤 표정일까. 내 얼굴이 다시 보고 싶지만, 좀처럼 터널이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사춘기 시절 내가 걸터앉아 있던 그 창문이 비록 내게 답을 주지는 않았어도 위로가 되었음은 분명하다. 열기도 바라보기도 싫은 서울 집의 창문, 끊임없이 움직여 내가 원하는 풍경을 진득이 바라볼 수 없는 무궁화 호의 창문. 그 어느 것도 그 시절의 창문과 같은 역할을 해주지 못해 노트북을 열어 또 다른 창을 열어본다. 하얀 문서창을 열어 내 속을 쏟아내 보고, 화면을 꺼 검은 창에 비친 내 얼굴을 바라본다. 터널 속에 보이던 그 얼굴이 무심하고 뚱한 얼굴로 나를 쳐다본다. 아니다. 무심한 게 아니다. 슬퍼해야 할지, 분노해야 할지, 후련하고 홀가분해야 할지 어째야 할지 몰라 아무 표정 짓지 못해 뚱할 뿐이다.
그렇게 까만 화면을 바라보고 있자니, 속도 모르는 어린 딸이, “엄마 그럼 이제 강의 안 가? 집에 계속 있을 거야?”라며 신이 나서 목에 매달린다. “어 이제 안 가! 꼬마쥐랑 매일 밤 같이 자고 계속 같이 있을 거야!”라고도 하지 못하고 “아니? 계속할 건데?”라고도 할 수 없어 목이 멘다. 나는 지금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아니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까.
“How are you?”
“I’m fine thank you, and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