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작은 모성애

열일곱 번째 조각

by 시골쥐의 풀방구리

나는 부모가 자식을 제일 사랑하는 줄 알았다.

꼬마쥐를 낳기 전까지는.

부모의 사랑이야말로 조건 없고 헌신적이며 대단한 무엇이라 생각했더랬다.

나의 엄마 아빠가 나를 그렇게 사랑해 주셨으니까.


물론, 어느 집이나 그렇듯, 서로 간에 부족함이 있는 관계였다.

하지만 철들고 나니 그 부족함을 탓할 수는 없었다.

어른의 눈으로 본 부모님은 스물일곱 어린 나이에 연년생 아이들을 낳아

사랑으로 키우려고 아등바등

많은 희생을 해오셨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꼬마쥐를 임신했을 때, 내심 기대가 있었다.

나도 이제 그 모성애라는 것을 가지게 되겠구나.

아이가 생긴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나는 아이를 보자마자 사랑하게 될까.


그런데 아이를 낳고 나서도 나는 여전히 나였다.

내 안에 그 대단한 '모성애'라고까지 부를만한 무엇이 생겼는가 묻는다면

글쎄올시다.


오히려 꼬마쥐가 커가면서 내가 느끼는 것은

얘는 어떻게 이렇게 나를 좋아하지.

어떻게 이렇게까지 나를 사랑하지.

조건 없이 나에게 다가오고, 나를 원하고

때로는 너무너무 엄마가 좋아서 절박해 보이기까지 하는 꼬마쥐.


자기가 원하는 만큼 내가 반응해주지 않으면

화를 내고, 어떤 때는 슬피 울고,

또 어떤 때는 소리 지르는 꼬마쥐.


왜 누구도 나에게 말해주지 않았을까.

태어날 너의 아이가 너를 이렇게 많이 사랑해 줄 거라고.


그래서 엄마랑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엄마가 나만 안아줬으면 좋겠고,

엄마가 나만 봤으면 좋겠고.


점잖은 남편을 만나 지금까지 서로 사랑하며 살고 있지만

그렇기에 이렇게 질투하고 불타오르는 사랑은 경험해보질 못했다.

몸 둘 바를 모를 지경이다.


오늘도 꼬마쥐는

학생들의 과제를 채점하고,

마감이 다가오는 글을 쓰느라 바쁜 내 곁을 맴돌며

엄마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보채다

끝나지 않는 일들에 고개 파묻고 바쁘다는 엄마가

밉고 서러워 울며 자러 갔다.


"엄마는 엄마일 뿐만 아니라 안수현의 삶이 있는 거 알아

그렇게 살아야 하는 거 알지만.."

끝을 흐리며 울먹이며 들어가는 아이를 도닥일 새도 없이

도리어 정신 사납게 징징거린다고 매몰차게 굴었다.


일이 끝나고 고요해진 밤.

이제야 꼬마쥐가 아까 놓고 간 마음이 보인다.


잠시 안아주고 들여보낼 걸.

십 분이라도 같이 놀아줄 걸.

세상에서 가장 작은 모성애가

세상에서 가장 큰 후회를 짊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