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세 번째 조각
학창 시절, 국어교과서에 실린 작품 중 아직까지 기억나는 몇 작품이 있다.
나는 그 작품들을 사랑했고, 읽고 또 읽으며 곱씹었다. 하지만 세월 앞에 장사 없다고 이제는 내 기억 속에 편린으로만 남아있음이 아쉬울 뿐이다. 아름다운 목걸이 었건만, 세월의 풍화를 맞아 이제는 기억 속에서 알알히 나뒹구는 구슬이 되어버렸다. 오랜만에 서 말만 남아버린 이 구슬들을 꿰어보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시인의 이름도 영롱하기 그지없는 김영랑 시인. 도대체 햇발이 돌담에 뭐라고 속삭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시를 처음 읽었을 때 은쟁반에 옥구슬이 굴러가는 소리를 글로 남긴다면 이 시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더랬다. 돌담에서 속삭이는 햇발이 새악시 볼의 부끄럼을 띄우고 보드레한 실비단 하늘을 따라 흐르는 그 세상. 갓난아기의 피부처럼 곱고 연한 그 세상의 한켠에는 작은 사탕가게가 하나 서있다.
색색의 사탕으로 가득 찬 선반 위를 유영하는 새콤하고도 달콤한 향기. 낡았지만 먼지 한 톨 없이 반들반들하게 닦인 카운터에는 바스락바스락거리는 종이봉지가 놓여있을 거다. 그 위에 오도카니 놓인 은박지에 싼 버찌씨 몇 알. 형광등보다는 백열등의 색감을 가진 따뜻하고 투박한 듯 소박한 가게. 가게 주인은 사탕값으로 버찌씨를 받고도 도리어 거스름을 내준다. 아이의 손에 놓이는 2센트 동전. 정말 그게 그 2센트가 맞았던가?
갑자기 하늘이 어둑어둑해진다. 비가 오려나. 손바닥 위에 놓인 동전을 자세히 살펴보니 은전이다. 아내가 머리맡에 놓고 간 은전 한 닢이다. 방구석에만 머무르는 나에게는 쓸모도 없는 이 은전. 아내의 내객이 아내에게 남기고 간 은전. 아내는 그 은전을 또다시 나에게 준다. 나는 이 은전을 아내에게 주고 아내의 방에서 하룻밤 잠을 잔다. 나는 돈을 쓸데가 없지마는, 아내의 방에서 자는 게 좋아 은전의 필요가 생겼다. 은전. 이제 나는 은전이 필요하다. 하지만 내게는 없는 은전. 나는 이불을 덮고 슬피 운다.
은전 한 닢을 바꾸었던 거지는 울었던가. 이 은전 한 닢을 바꾸기 위해 그는 얼마나 많은 시간 동안 한 푼 한 푼을 모아 왔을까. 이게 뭐라고, 그저 이 은전 한 닢을 가지고 싶었을까. 누군가에게는 아무것도 아닐 이 은전 한 닢이 그에게는 왜 그렇게 소중했을까. 이런 그를 보고 누가 뭐라고 힐난할 수 있을까.
“이 바보.”
소녀가 돌을 던진다.
맞으라고 던진 돌이 아니기에, 첨벙하고 물만 튀길 뿐이지만, 나의 마음을 몰라주는 소년에게 야속함을 담아 그의 마음을 향해 던진 것은 맞다. 이 파문이 그 아이에게 가 닿기를. 이 파문이 그 소년의 마음도 흔들어 움직여주기를. 하니 그날의 공명을 다시금 느끼고 싶었던 소녀가 그날의 옷을 입고 떠나기를 원한 것은 잔망스러움이 맞다. 그 나이의 아이들은 다 그런가 보다. 여자아이들은 남자아이들보다 먼저 큰다. 부끄러움도 먼저 깨닫는다. 그래서 소중한 마음을 겹겹이 가려놓고서야 간신히 전한다.
“늬이 집에 이런 거 없지?”
이것이 사랑 고백임을 알아챌 수 있는 소년이 몇이나 될까. 왜 소녀들은 “나는 너가 좋아, 그러니까 이 감자를 받아줘.”라고 말하지 못할까. 대신 돌을 던지고, 감자를 던지고, 말을 던진다. 사랑하는데 사랑한다는 말을 듣지 못하고 큰 소년들은, 아비를 아비로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 세상 때문에 울화가 가슴에 쌓인다.
그러니, 설렁탕 하나를 사다 주면서도 곱게 사다 주질 못한다. 없는 살림에 설렁탕이라니 얼마나 귀하고 귀한 한 그릇인가. 이걸 발길질과 함께 던져준다. 참담한 노릇이다. 누군가는 이걸 사랑이 아니라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그저 가난하기 때문에 버린 것들이 있을 뿐이다. 나는 아픈 네가 걱정된다고, 마침 오늘 벌이가 괜찮았기에 당신 먹고 얼른 기운차리라고 귀한 설렁탕을 사 왔으니 어서 먹어보라고, 내가 변변찮게 벌어와 당신이 고생한다고 미안함과 죄책감을 담아 전달할 마음을, 말을 버렸을 뿐이다.
“설렁탕을 사다 놓았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울부짖듯 사랑을 전달하는 이 세상에서는 버찌씨를 받고도 거스름돈을 내어주는 어른을 만나게 된다면 그 운수 좋음을 의심해봐야 한다.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돌담에 햇발 대신 내가 사는 세상에는 사락사락 눈이 내릴 뿐이고, 그나마도 그 눈 오는 소리는 사랑하는 이의 숨죽인 울음소리를 가려주지 못한다.
나는 들어도 못 들은 척하는 것일 뿐.
아내가 어떻게 돈을 버는지, 왜 나에게 수면제를 먹이는지 생각하다가도 그저 백치처럼 관둬버리는 이는 박제된 천재인가 아님 그저 호강에 겨운 룸펜일 뿐인가.
생각의 흐름을 따라 나는 구슬을 꿰어서 보배를 다시금 만들고자 했건만, 어째 결과물은 내 안의 도서관이 불타 모든 책들이 한데 엉겨서 눌어붙어버린 모냥이다.
나는 그렇게 학창 시절, 국어책에서 만난 작품들을 기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