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번째 조각
돌밥의 시즌이 시작되었다.
돌밥이란 방학 내도록 아이들에게 삼시 세끼를 먹여야 하는 엄마들의 부담감을 '돌아서면 밥을 해야 한다'며 자조스럽게 표현한 말이다.
사실 현실은 이것보다 더하다.
돌아설 틈도 없이, 아침을 먹으면서 점심은 뭘 해야 할까 고민하고, 점심을 먹으면서는 저녁메뉴를 걱정한다.
먹는 것만 걱정일까.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먹는 문제가 해결되면 일만이천봉이 기다리고 있다.
방학이라 심심하다는 아이를 데리고 어디를 가야 할까.
아이가 행여나 더위라도 먹으면 안 되니까 너무 덥지 않으면서도, 사람이 많지 않고, 유익한 곳이 어딜까.
당연히 가성비도 챙겨야지.
더구나 방학이라고 놀기만 할 수는 없으니, 지난 학기 복습도 하고 다음 학기 예습도 해야 한다.
아차차. 방학 숙제도 있지.
이런 모든 생각이 머릿속에서 쉼 없이 돌아간다.
그렇게 삼시 세끼와 간식, 아이의 학업과 의미 있는 체험 활동까지 쥐어짜내고 나면 나의 정신은 마른걸레처럼 바싹 말라 더 이상 창조적인 생각을 뱉어낼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만다.
나는 아이의 삶에 자신의 소망을 투영하지 않으리라, 나의 꿈을 따라 쫓으리라 결심했는데!
여러 사람에게 영향을 주는 의미 있는 글을 남기고픈데!
현실은 마른걸레라니.
이 마른걸레가 시간과 체력을 쥐어짜가며 기다리는 시간이 있으니, 바로 육퇴의 시간이다.
아이가 잠들고 난 후, 육아의 직무가 끝나는 엄마 퇴근의 그 시간은 모든 엄마가 갈망하는 시간일 것이다.
그 달콤하고도 귀한 시간에 양서에서 뽑아낸 지혜로 나를 채워 넣으면 한 올 한 올 살아있는 도톰하고도 보송한 새 수건이 될 수 있겠으나.
손가락 하나 까딱할 기력이 없는 마른걸레는 가까운 곳의 구정물을 빨아들이듯 핸드폰을 집어 들고야 말았으니, 오호통재라.
좋은 글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다.
그러려면 많이 써봐야 하고, 좋은 글을 많이 읽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나는 소파에 널브러져 졸음에 못 이겨 핸드폰을 얼굴에 떨어뜨릴 때까지 영양가도 없고 그닥 보고 싶지도 않은 영상을 보고 또 본다.
화면을 넘기는 손가락의 신경질적이고도 그악스러운 그 움직임.
마치 폭식증 환자가 먹고 싶지도 않은 음식을 괴로워하면서도 욱여넣는 것처럼, 무의미한 정보들을 뇌의 주름주름에 거칠게 쑤셔 넣는다.
마른걸레 같던 정신은 이제 바싹 튀겨 딱딱해진 베이컨처럼 굳어버린다.
딱딱한 베이컨에서 좋은 글이 나올 수 있을까.
종이를 갖다 대면 기름만 묻어 나오겠지.
이런 기름 묻은 종이에 무슨 글을 쓴단 말인가.
그래서일까.
버지니아 울프는 여성이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연 500파운드의 수입과 자물쇠가 달린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했다.
당시 500파운드가 어느 정도의 돈이었을지 궁금해 알아보니 요즘으로 환산해 보면 세전 6000만 원 정도의 전문직 남성이 벌어들이던 수입이란다.
누구에게 의존하지 않고, 자물쇠가 달린 나만의 방에서, 하녀를 고용해 잔일로부터도 해방되어 글쓰기에만 집중하기위한 조건인 것이다.
“울프 여사님, 제 수입은 연 3000이 조금 넘는 것 같네요.
방은 고사하고 제 책상도 없어 식탁 한 켠을 책상 삼아 쓰고 있구요.
그러니 제가 글을 쓰면 전력 낭비이고, 행여나 책으로 낸다면 종이 낭비가 아닐까요.”
그렇게 내가 글을 쓰지 못할 이유를 주절대니 울프 여사가 손을 들어 거실 한구석을 가리킨다.
그 손 끝에는 제인 오스틴과 브론테 자매들을 위시한 ‘거실 한구석에서 글을 쓰던 여성 작가들’이 말 같잖은 변명을 하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다.
당신들은 자신의 글에 만족했나요.
사람들의 인정을 받는 서사시가 아닌 사람들이 얕잡아보던 소설을 쓰는 자신이 싫진 않았나요.
나는 빈약한 내 글이 싫어요.
베이컨 기름이 스며들어 투명해진 종이 너머로 얄팍한 내가 다 드러나는 내 글이 싫어요.
폭닥하고 도톰한 수건이 아닌, 걸레처럼 낡고 해지고 얇아진 내가 싫어요.
아무 말 없는 그녀들에게 내 심정을 토로하고 보니, 결국 내가 싫은 건 나 자신이었다.
바싹 마른걸레 같고, 딱딱한 베이컨 같은 나.
욕심 사납게도 이상은 천국문 앞에 던져두고, 현실은 게으르게도 진흙탕 속이라 괴로운 나.
내가 내가 싫어한 것이 내 글이 아니라, ‘글에 비쳐 보이는 나의 모습’이라는 것을 깨닫자 도리어 마음이 편해진다.
내 글 너머에 딱딱해진 베이컨처럼 바싹 말라 늘어져있는 내가 안쓰럽다.
바짝 마른 내가 건네는 구깃구깃한 종이를 가만가만 손으로 쓸어 펴면서 다시 한번 더 읽어본다.
빈약하다. 뻔하다. 볼품없다. 하지만 솔직하다. 꾸밈없다. 정직하다.
글도, 글에 비친 나도 사랑스럽다.
기름으로 얼룩지고 구겨진 종이를 괜히 한 번 더, 쓰다듬듯 손다림질을 한다.
내일 아침식사는 베이컨과 계란프라이를 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