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별과 오리온자리

여섯 번째 조각

남편이 앓아누웠다.

남미 배낭여행 중 가장 경이로웠던 페루의 피삭.

그곳에서 남편은 고산증세가 나타나 깨질듯한 머리를 부여잡고 끙끙 앓았다.

모리셔스에서는 허리가 말썽이었고, 남아공 동부 해안을 여행할 적에는 때아닌 독감을 앓았다.

40일간의 남미 배낭여행을 마친 후엔 꼬박 한 달 동안 몸져눕기도 했다.

나의 모험의 대미를 매번 남편의 병으로 장식하는 꼴이었다.


부부는 일심동체라지만 때로는 동전의 양면처럼 영 다른 방향을 바라보기도 한다.

유튜브에서 오로라에 대한 영상을 봤다 치자.

남편은 “세상 정말 좋아졌어요. 저 추운 곳에 직접 가지 않아도 이렇게 다 볼 수 있고”라며 소파에 누워있는 걸로 흡족해한다.

하지만 그 말에 맞장구쳐줄 아내는 이미 다른 세상에 있다.

건성으로 “어 그렇네요”라고 답하면서 핸드폰으로 당장 구글맵을 불러와 어디로 가야 오로라를 볼 수 있는지, 그 주변에 어떤 호텔이며, 식당, 관광지가 있는지를 찾아 수많은 노란 별들을 지도에 박아 넣기 시작한다.

그렇게 내 욕망의 노란 별들이 구글맵을 뒤덮어 은하수를 이룰 때 즈음이면, 노트북을 붙잡고 바탕화면에 새로운 여행 폴더를 생성해 일정과 예산표를 만들기 시작한다.


사실 내게는 이 과정 자체가 이미 여행이나 다름없다.

아이가 오로라를 보면 얼마나 놀라워할까.

그 신비하게 너울거리는 빛의 장막을 사랑하는 가족들과 본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그렇게 상상으로 사전답사를 마친 나의 여행들은 설렘과 소망을 담은 노란 별이 되어 록키 산맥에서, 동유럽에서, 이태리 북부 돌로미티에서,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미국 올랜도의 테마파크들에서 반짝이고 있다.


노란 벽돌길은 도로시 일행을 오즈에게 인도했다.

나의 이 노란 별들도 나를 꿈같은 모험의 세계로 인도해 줄까.

노란 길의 끝에서 도로시가 만난 것이 볼품없는 사기꾼 오즈 영감이었던 것처럼, 내 소망의 끝이 사랑하는 남편의 고통뿐이면 어쩌나.

나는 모험과 여행을 포기해야 할까.


도대체 왜 나는 그렇게도 떠나고 싶어 할까.

도로시의 모험은 캔자스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목적이라도 있었지만, 나의 이 열망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젊은 시절에야, 경험이 미천하니 새로운 세상과 새로운 경험을 동경할 수도 있다.

지금의 나는 내일모레면 하늘의 뜻을 깨우쳐야 마땅한 중년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노란 별을 쫓아 떠나고 싶다.

새로운 세상을 보고 싶다며 가본 적도 없는 노란 별들이 떠 있는 그 풍경을 그리워한다.

어쩔 수 없나 보다.

그냥 “이 모습이 나의 만듦새이구나”하고 받아들이는 수밖에.


그렇다면 남편의 만듦새는 어떠한가.

나의 노란 별 지도가 온 세계를 뒤덮고 거미줄처럼 얽혀가며 광활한 우주를 만들고 있는 반면에, 남편의 하늘에는 오로지 "우리 집"이라는 별자리만 빛나고 있다.

내가 아무리 세계 방방곡곡을 영업하며 남편의 하늘에 나의 노란 별들을 흩뿌려 놓으려 해도 소용없는 짓이다.

나의 우주는 매일 팽창하는 우주인 반면, 남편의 우주는 매일 깊어지는 우주인 까닭이다.

온 세상이 내 집이기를 바라며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고 싶어 하는 나와 달리, 남편은 우리 부부와 아이가 꾸린 가정을 소중하게 여기고 사랑하며 그 안에서 온전히 기뻐한다.


우리의 결혼 생활은 이토록 다른 남편과 나의 우주를 "우리의 우주"로 엮어내는 과정이다.

오늘도 팽창과 응축을 반복하는 우리의 우주.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별자리는 오랫동안 항해사들의 길잡이었던 오리온의 허리띠, 삼태성.

우주 가득 흩뿌려진 노란 별들 가운데, 길을 잃지 말라는 듯 오늘도 삼태성이 빛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