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번째 조각
나는 요즘 자꾸 까먹는다.
아직 40대 중반인데 벌써 치매가 오나 싶어 덜컥 겁이 날 때도 있다.
또래 엄마들이 다들 비슷한 상황이라길래 괜찮은가보다며 위안삼고 있다.
하지만 10대, 20대와 비교하면 확연히 기억력이 떨어진게 느껴진다.
책을 읽어도 앞에 나온 인물이 기억이 안나는 것은 물론, 방금 읽은 내용이 기억이 나지 않아 되돌아가 읽어야 하는 일이 빈번해졌다.
한 때는 총명했는데. 깜빡깜빡할 때마다 내게 남은 총기들이 공기 중으로 포자뿌리듯 팡팡 뿌려지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얼마 전 딸이 나에게 “엄마, 왜 영화에서 우주여행을 하고 돌아오면 지구랑 시간이 달라져?”라고 물어왔다.
늘 책을 가까이 두고 살았다 생각했지만, 그간 얼마나 문학만 편식을 했는지 우주와 관련된 책을 읽은 기억이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밖에 없었다.
그나마도 흐린 눈을 섞어가며 간신히 해치운 책이어서 “예이 나는 우주먼지다! 지구를 타고 신나게 여행 중이지!”정도의 이미지만 남아있는지라 딸의 저 질문에 답해줄 도리가 없었다.
제미나이에게 초등학생이 이해하기 쉽게 대답해 달라 요청했더니 꽤나 놀라운 답을 주었다.
평소 우리는 시간과 공간을 움직이는 데 힘을 쓰는데, 지구에서 살면서는 공간을 움직이는 데엔 거의 힘을 쓰지 않고 시간을 흐르게 하는 데에만 힘을 쓰고 있단다.
그런데 우주여행을 떠나게 되면 공간을 움직이는 데 많은 힘을 쓰게 되므로 시간을 움직이는데 쓰는 힘이 줄어들게 되고, 결과적으로 지구의 사람들보다 시간이 덜 흐르는 셈이라는 게 아닌가.
이 설명에서 시간을 움직이고 있다는 표현이 너무 생경하면서도 놀라웠다.
나는 현재에 가만히 서있고 미래에서부터 다가온 시간의 흐름이 나를 지나 과거로 흘러가는 줄 알았는데, 사실 내가 시간을 흐르게끔 하고 있었다니.
그렇다면 노화에 의한 죽음은-잠시 이과생들은 모두 눈을 감아주세요-더 이상 시간을 움직일 힘이 없어 하나의 생명이 자연스럽게 멈추게 되는 현상인 걸까.
어쩌면 쉬임 없이 시간을 흐르게 하던 내가 나이 먹어가며 점차 힘에 부쳐 잠시 숨을 고르는 순간들이 생기고, 그 순간들이 깜빡임으로 내 삶에 나타나는 걸 지도 모른다.
일상의 건망증을 내가 취사선택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잊고 싶은 것들, 쓸모없는 지식과 정보들의 소각장치로 사용할 수 있을 거다.
상처받은 순간들, 부끄러운 실수들, 알고 싶지 않았던 정보들을 깜빡깜빡하며 기억 저편으로 날려버릴 수 있을 텐데.
그렇게 유용한 건망증이라면, 갱년기의 변화들을 조금 덜 슬프게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이 깜빡임은 사안의 무게를 전혀 구분하지 않고 무작위로 벌어진다.
꼭 기억해야 하는 약속, 가지고 나갔어야 하는 서류, 잘 챙겨둔 열쇠 따위의 정보가 머릿속에서 하얗게 사라지고 마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깜~하고 어두워졌을 때 잠시 생각이 안 나다가도 -빡!- 하고 다시 불이 들어오면 기억이 되돌아와야 할거 아닌가.
깜빡! 하고 불이 다시 켜졌는데 그만큼의 기억공간이 하얗게 텅 비어있으니 정말 곤란하다.
어딜 간 걸까.
나도 모르는 내 무의식이, “아 본체가 점점 시간을 움직이기 힘들어하는 군. 안 되겠어. 난파선의 뱃짐을 내려 배를 가볍게 하듯 기억을 좀 덜어내야겠어!”하며 마구잡이로 던져서 버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도대체 중요한 정보들까지 던져버리며 이 배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 걸까.
그렇게 마구잡이로 계속 비우기만 하다, 마침내 이 배가 침몰을 피하기 위해 요나를 던졌듯 나마저 던져버리면 어쩌나.
나의 존엄을 잃고 껍데기만 남은 배가 과거에 좌초될까 두렵다.
하여 나는 오늘도 메모앱과, 다이어리를 작성하고, 알람을 설정해 마구잡이로 던져대는 기억의 배에 맞선다.
행여나 이 배가 나를 던져버리지 못하도록 오늘도 나는 돛대에 나를 꽁꽁 묶어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