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번째 조각
나는 몹시 심술 맞은 마음을 먹었다.
금기를 깨보기로, 사회적 통념과 합의에 도전해 보기로.
도대체 누가 출생이나 탄생을 숭고하다고 하던가.
새로운 생명이 생겨나는 것에 대한 경이로움의 표현일 거라는 추측은 한다.
하지만 낳는 쪽의 의견도 들어봐야 하는 것 아닐까.
내가 낳아봐서 아는데(!!!) 출산과 배설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리고 그 과정은 오욕과 수치로 점철된 즘생의 길이다.
생명의 소중함과 존엄, 감동, 사랑, 모성애 같은 말들은 화려한 프릴장식 같은 거다.
그 화려한 레이스 장식을 걷어올려보면 추레하기 짝이 없는 현실이 드러나겠지.
마치 내가, 무통 주사를 맞았던 때처럼.
밀려오는 진통 속에 반라의 몸으로 차가운 시술대 위에 누워있던 나.
배는 산 만했건만, 마취의는 나에게 몸을 웅크리라 명했다.
안 그러면 무통을 놔줄 수 없다는 협박과 함께.
움직이지 말라고도 했지.
진통이 오는데 어떻게 안 움직이나.
굼벵이도 밟으면 꿈틀 한다는데 몸의 중간부가 썰려나가는 것 같은 통증 앞에 미동도 않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
내가 관우냐. 내가 관우냐고.
도대체 이 임신과 출산은 어디부터 잘못된 걸까.
어려운 문제이다.
시도 때도 없이 토해대는 입덧의 시기부터 어긋난 걸까.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의 공기는 남달랐다.
각양의 몸에서 나는 다양한 냄새들이 각종 체액, 기름들과 뒤섞여 끈적해진 공기.
들큰하면서도 미적지근한 공기가 내 숨구멍으로 꿀렁꿀렁 미끄러져 들어오면 이를 막으려는 듯 계속되는 욕지기.
구역질은 딸꾹질과도 같아서 일단 한 번 시작되면 쉽사리 가라앉힐 수가 없다.
앞의 구역질이 뒤의 구역질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구역질의 연쇄반응.
아무것도 비워낼 것이 없어, 위액도 다 나오고 난 후에도 계속되는 그 구역질.
숨통이 졸리는 소리만 컥컥 뱉어내던 구역질.
하지만 그 입덧을 내가 치욕스럽게 기억하는 것은 구역질로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이가 커지고 출산이 다가오던 어느 날, 갑자기 토할 것 같아 여느 때처럼 화장실로 달려갔다.
보이지 않는 손이 내 내부에서부터 장기를 콱 쥐는 것처럼 발작적으로 치밀어 오르는 구역질과 동시에 그날은 오줌도 함께 터져 나왔다.
가뜩이나 아기집에 자리를 내주는 바람에 방광이 차지하는 공간을 작았을 터이고, 수문을 꽉 쥐고 잠가둬야 하는 근육이며 인대들은 출산을 준비하며 한껏 늘어나있던 터였다.
구역질도, 구역질에 박자 맞춰 터져 나오는 오줌도 나는 그 어느 것도 멈출 수가 없었다.
안타깝게도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앞서 언급했던 무통주사를 맞던 그 순간, 조명은 강렬했고 시술대는 차가웠다.
척추에 주삿바늘을 꼽히는 입장에 왜 안 무서웠을까.
하지만 다가올 진통이 더 무서웠다.
하여 어떻게든 진통을 참으며, 굽혀지지 않는 몸을 웅크리려 바르작거렸던 나.
그러다 아래쪽에 이상한 느낌이 났다.
뭔가 터치면서 미적지근한 액체가 내 몸을 적셔왔다.
맹세코 오줌을 싼 건 아니었다.
양수가 터졌다.
그러더니 상황이 급박하게 흘러가더라.
원래 이 병원은 산모와 아이의 인격적인 출산을 중요시하는 곳이었다.
가족분만실에서 가족들의 응원 가운데, 산모가 고른 음악이 은은히 흐르고, 갓 태어나 세상빛을 처음 보는 아이가 눈부시지 않도록 낮은 조도의 조명 아래에서 남편은 사랑을 담아 준비한 편지를 읽어주는 낭만적인-하지만 이름은 어려운- 르 봐이예르 분만법을 제공하는 곳이었다.
나의 출산은 그 모든 준비를 무로 돌렸다.
아늑한 가족분만실 대신 마취과 옆에 붙어 있는 정신 나갈 정도로 하얗고 천국처럼 밝은 수술실에서 긴급하게 분만이 시작되었기 때문이었다.
첫 번째 진통은 제대로 힘을 주지도 못하고 지나가버렸다.
조금 숨 돌릴 틈을 준 후, 두 번째 진통이 시작되었다.
의료진의 인도에 따라 고통 속에 힘을 주던 그 두 번째 진통에서 나는 기이하게도 아이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사실 그때 얼마나 아팠는지는 기억이 없다.
아팠다는 “사실”은 기억에 남아있는데 “고통”자체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다만 그 고통의 순간에 나는 내 밑에 껴있는 이 작은 아기가 열심히 나오려고 애쓰고 있다는 게 느껴지면서 뭐라 할 수 없는 애정에 가까운 고마움을 느꼈다.
어쩌면 이건 고통을 나눈, 전우들이 가지는 동지의식일지도 모르겠다.
함께 사선을 넘는 경험을 통해 아이와 나는 “우리”로 묶였다.
나는 이 순간이 나의 모성애의 시작지점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모성애는 숭고하지도 아름답지도 않았던 거다.
나의 인격의 산물도, 여성성의 결과물도 아니었다.
유혈이 낭자한 중, 고통과 두려움, 수치심을 홀로 감당하며 나를 둘러싼 모두가 인간인데 나만 짐승 같던 그 순간에.
그 외롭고 무서웠던 순간에.
작은 아이가 나와 함께 생사의 싸움을 싸웠다.
나의 고통을 끝내주려 애써주었다.
.
그러니 내가 이 아이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출산은 사실 배설과 비슷했고, 고통이었고, 수치스러운 순간들의 연속이었지만, 그 마침표만큼은 그저 사랑이었다.
그 마침표가 뭐길래.
열 달간 경이의 대상이었던 나의 일부가, 사랑하는 타인으로 “우리”가 되었다.
본래 떨어져 나간 신체는 문학사에서 항상 공포와 혐오의 대상이 되기 마련이건만 아이는 도리어 내게서 떨어져 나감으로써 사랑이 되었다.
그 마침표 때문에.
오늘도 나는 고운 레이스로 배내옷을 떠 나의 출산에게 입혀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