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매미는 깜깜한 땅속의 꿈을 꾸는가.

열 번째 조각

by 시골쥐의 풀방구리

죽을 듯이 울부짖는다. 매미 얘기다.

저들의 절창은 우는 것일까, 소리 지르는 것일까.

영단어 cry가 두 가지 뜻을 다 품었듯, 매미의 저 행위는 울음과 소리를 다 포함하고 있는 듯하다.

가로수가 마치 아파트 한 칸이라도 되는 냥, 한 그루에 한 마리씩 붙어 악지르는 녀석들을 지나는데, 문득 보도블록 한편에 매미 허물이 보였다.

무슨 종류의 매미인지 허물의 크기가 엄지손가락보다도 큰 거대한 허물.


계속 가던 길을 가며 이상하리만큼 커다랗던 매미 허물을 생각하고 있는데, 문득 매미 허물이 나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인 나.

지금은 어린 내 딸의 갑옷이 되어 아이를 지켜주기도 하고, 품어주기도 하며 열심히 키우고 있지만, 수년이 지나고 이제 아이가 자신의 날개로 날아야 하는 순간이 오면.

그날이 오면.

아이는 주저 없이 나를 벗어던지고 자신의 세상으로 날아가겠지.

그리고 세상과 맞서 악을 지르며 아등바등 살아가겠지.

그날이 오면.

보도블록 끄트머리의 매미허물 안수현 씨는 어떤 기분일까.

아이가 쏙 빠져나가고 남긴 허전함을 슬퍼할까.

아니면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받아버리려나.


내게도 시끄럽게 세상을 향해 외치던 푸르디푸른 매미의 철이 있었다.

허나 그 짧고 소란했던 절창의 끝, 생명을 갈무리하고 길러내는 시기는 깜깜한 땅 속의 시기였다.

평생 나의 자아를 펼치는 데에만 집중해 왔는데, 그래서 멋들어지게 날 수도, 울 수도, 악지를 수도 있는 일원으로 성장했는데.

갑자기 그 자아를 내려놓고 다른 생명을 품어 기르는 일이 쉬울 리 없다.

내가 죽어 땅 속에 묻히는 시간이었다.

평생을 통틀어 가장 빛나는 시간을 경험했지만, 동시에 매미로서는 암흑의 시간이었다.

그렇게 양육과 돌봄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함께 땅 위로 올라가 저 하늘로 다시금 날아오르면 좋겠건만 그럴 수 없는 것이 자연의 섭리.

아이는 나를 버리고 날아가야 한다.

그래야 날 수 있다.

그리고 남겨진 매미 허물 안수현 씨는 그날이 오면 어떤 기분일까.


우리 엄마는 어땠더라.

아직도 기억난다.

나의 결혼식날 아침.

첫 딸이 결혼한다는데, 엄마는 화장대 앞에서 콧노래를 부르고 계셨다.

서운함도 아쉬움도 없이, 날아오르려는 나를 기뻐하며 축하해 주셨다.

어쩌면 엄마는 드디어 매미 허물이 된 스스로를 축하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수많은 위험과 어려움으로부터 유충을 훌륭히 지켜 길러내야지만 다다를 수 있는 완성의 상태가 아닌가.

푸르른 시절의 절창도, 땅 속에서 길고 어둡던 침묵도.

그 모든 일을 무탈히 해내었다는 완성의 징표.


매미 허물.

얇고 바스락거리는 허물은 어쩌면 스치는 바람에도 공명할지 모른다.

자장가 같이 작고 낮은 음성으로 읊조리듯 부르는 노래. 혹은 울림.

악지르는 울음이 잦아들고 읊조리는 울림이 번져올 그때를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