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콩밭에 붉은팥 한 알갱이

다섯 번째 조각

by 시골쥐의 풀방구리

“현관이 깨끗하면 도둑이 들어왔다가도 도로 나간다고 했어.”

어려서부터 엄마가 늘 하시던 말씀이다.

외출했다 들어오면 아무렇게나 신발을 벗어놓지 말고 가지런히 정리하라는 뜻이었다.

자매품 “신발 정리가 안 되어있으면 오던 복도 도로 도망가.”도 있다.

내가 어렸을 적에 세콤 같은 보안 시스템이 흔하지도 않았거니와 있더라도 몹시 비쌌는데, 잠시의 품을 들여 신발을 정리하면 도둑을 막을 수 있다니 안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게다가 복도 불러들인다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친정에 가면 지금까지도 현관이 항상 깨끗하고 단정하다.

그래서인지 부모님은 일흔이 넘도록 도둑 한 번 맞지 않고, 다복다복 잘 살고 계신다.


콩 심은 데 콩이 나야 마땅하건만 어찌 된 일인지 우리 엄마가 콩을 심은 그 자리에는 팥이 나버렸다.

내 얘기다.

우리 집 현관은 뭐랄까.

갓 잡아 올려 난전에 풀어놓은 그물 같다.

각양의 신발들이 펄떡거리며 뒤엉켜있다.

복이 들어오려다가 도로 도망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 집에 들어온 신발이 다시 나가지는 않았음이 분명하다.

사람이 셋이면 신발이 세 켤레. 많아 봐야 여섯 켤레가 나와 있으면 충분할 텐데 지금 우리 집 현관에 나뒹굴고 있는 신발들은 모두 열 켤레나 된다.

신발이 새끼를 친 건가, 아니면 오병이어의 기적이 펼쳐졌는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세탁 보냈다가 끈을 꿰어야 하는데 귀찮다고 꿰지 않은 내 운동화 한 켤레.

그 운동화 대신 신고 다니고 있는 내 운동화가 또 한 켤레.

남편의 운동화 한 켤레.

딸의 운동화가 두 켤레.

방학식 날 딸이 학교에서 가져온 실내화 한 켤레.

어저께 물놀이장 가서 신었던 딸의 아쿠아 슈즈 한 켤레.

가족 한 명당 크록스 하나씩 세 켤레.

총 열 켤레의 신발이 짝과 헤어져 여기저기 펄떡이고 있다.

풍어로 인한 만선의 기쁨이 그득하다.

도둑이 들어와 자기 신발을 하나 더 벗어놓더라도 아무도 모를 것이다.

엄마가 봤으면 도둑보고 ‘어서 오십시오’ 하는 현관이라고 혼내시겠지.


돌이켜보면 내 공간이라 부를 곳이 책상밖에 없던 학창 시절에도 자그마한 내 책상은 항상 어지러웠다.

개중에서도 논문을 쓰던 시절은 혼돈의 정점이었다.

끝맺지 못한 생각들이 줄기줄기 이어지는 시절인지라 책이나 출력물들을 섣불리 치워버릴 수 없었기에 책상 위에 하나씩 늘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면 책들이 산을 이루다 못해 산맥을 형성했다.

'공부란 책의 숲을 거닐며 사색하는 것이다'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 싶거든 눈을 들어 내 책상을 보라.

거장들의 각종 사상과 지혜가 담긴 책들이 거대한 퇴적층을 이루고 있고, 불쌍한 논문 노예 하나가 화석을 캐듯 깔짝이며 여기서 조금 저기서 조금 지식을 캐 모으는 모냥이었다.

당시 나는 운 좋게도 대학원 정독실에서 두 자리를 쓸 수 있었는데, 책상 두 개 가득히 자료를 쌓아놓느라 간신히 노트북 한 대만 놓을 수 있었다.

마우스를 움직일 자리가 모자라 논문 한 줄을 한 번에 긁지 못하고 두 세 단어씩 끊어 긁어야 하는 딱한 모양새라니.

대학원 동기가 어떻게 여기서 공부를 하냐며 정리부터 하라고 잔소리를 늘어놓았지만, 본래 연꽃은 진흙탕에서 피는 법이라는 뻔뻔한 항변으로 내 소중한 퇴적층을 지켜내곤 했다.


정리를 못 하는 것은 게으름, 비위생과 동의어이기에 그간 받은 핍박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어쩌겠는가 태생이 팥알인 것을.

모두가 푸르른 콩밭을 찬양하는 세상에서 한 알의 붉은 팥알로서 독야청청, 아니 독야적적 붉음을 뽐내며 살아갈 수밖에.

하지만 솔직히 이 팥알의 워너비는 항상 콩이었다.

비록 내가 팥알이지만 나라고 미니멀리스트들의 정갈하고 깔끔한 콩밭에서 살고 싶지 않았겠는가.

십여 년의 결혼생활 동안 이사 때마다 수 없는 시도를 했다.

시작이 창대하고 끝이 미약해서 그렇지.

그 결과, 우리 집은 현관에서 보다시피 콩밭과는 거리가 멀고 먼 진흙탕, 난전 바닥이다.


감사한 것은 격세유전이 일어나 이 팥알의 딸은 반지르르 이쁘기 그지없는 콩알이다.

내가 나만의 공간인 책상을 한껏 어지르고 살았듯, 딸은 자신의 방을 예쁘고 단정히 꾸미는 것을 좋아한다.

침대부터 책상, 책장 어느 하나 모자람 없이 정리해 놓고 소품샵처럼 아기자기한 인형이며 장식품으로 꾸며놓는다.

가끔은 자신의 방뿐 아니라 내가 어질러놓은 거실까지도 싹 치워놓는다.

오늘은 외출했다가 들어오니 단정하기 그지없는 현관이 나를 맞이했다.

딸의 작품이다.

평소라면 아무렇게나 벗고 황급히 들어갔겠지만, 오늘만큼은 뒤돌아 벗어놓은 신발을 갈무리하고 들어간다.

거 보라고, 진흙에서 곱디고운 연꽃이 피지않았냐고 온 세상에 외치고 싶다.


이전 04화멸종위기 청신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