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밀라노
작가님, 무척 오랜만에 띄우는 편지입니다. 그간 안녕하셨을까요. 저는 안녕하다고도 안녕하지 않다고도 말하기 어려운 며칠을 보내는 중입니다.
편지하지 못하는 시간 동안 저는 아주 긴 여행을 다녀왔어요. 무려 한 달이나 한 곳에 머무르며 보고 듣고 느끼는 여행이었습니다. 두 아이를 오롯이 혼자 돌보아야 한다는 육체적, 심리적 부담이 있긴 했지만 잊을 수 없는 귀한 기억들을 한 아름 안고 온 것은 분명합니다. 여행 이야기만 하자면 저의 지금은 매우 안녕해야 할 것이나, 긴 여행 끝에 두 아이가 지독한 열 감기로 며칠째 앓고 있는 터라 마냥 안녕하다 말씀드리기는 어렵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저는 꽤 좋은 날들을 보내고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여행이란 뭘까요. 어렸을 때부터 없는 살림에 휴가철마다 여행을 데리고 다녀주셨던 엄마 덕분에, 저에게 여행은 오랫동안 쉼표였습니다. 지루한 일상과 일상 사이, 고단한 일상과 일상 사이, 바쁜 일상과 일상 사이. 그 사이에 며칠 간의 여행은 언제나 쉼표처럼 놓였습니다. 며칠 일상을 떠나 여행을 한다고 해도 일상의 지루함과 고단함, 바쁨은 해소되지 않았지만 여행을 기다리는 동안, 여행을 하는 동안, 여행에서 돌아온 얼마간은 숨통이 트였으니까요.
이번에 두 아이를 데리고 훌쩍 떠난 제주 여행도 쉼표를 기대한 여행이었습니다. 작가님이 알고 계신 것처럼 저는 올초부터 꽤 깊은 우울을 겪었고, 때론 우울에 일상을 잠식당할 만큼 힘든 날들을 보냈어요. 제주 여행을 결정하고 예약까지 마친 것이 5월이었습니다. 그때의 저는 바닥을 치다 못해 심해로 꺼지던 중이었으니, 이번 여행은 감정에 휘둘려 꽤 즉흥적으로 결정한 것이나 마찬가지였지요.
짐을 꾸리고, 부치고, 두 아이와 손을 잡고 비행기에 오르던 순간을 잊지 못합니다. ‘아, 진짜 쉼표다!’ 생각했거든요. 일상적인 공간에서 벗어나 일상적인 시간과는 조금 다른 시간을 살 것 같다는 기대, 일상적인 이들과 잠시 이별하고 일상적인 일들에서 조금은 벗어난 일들을 할 것 같다는 설렘이 한꺼번에 몰려왔습니다. 두 아이를 혼자 돌봐야 한다는 부담감 따위는 고개를 내밀 자리도 없었어요.
그곳에서 저는 매일 글을 썼습니다. 혼자 일기장에 써볼까도 했지만, 그럼 어느 순간 흐지부지 되지 않을까 싶어 이곳, 브런치에 아예 매거진을 만들어 매일을 기록했어요. 그리고 여행자의 마음으로 매일의 여행에서 발견한 문장들을 썼습니다. 두 아이가 잠자리에 드는 아홉 시 반쯤부터 열두 시 반까지, 그날의 문장을 고르고 하루를 정리해서 글을 발행하는 일이 지속되면서 제 여행은 조금 다른 모습이 되어갔어요.
쉼표를 기대했던 여행이었는데, 쉼표 하나로는 정의할 수 없는 많은 생각이 오갔습니다. 삶 전반을 돌아보게 되었달까요. 어떻게 살아왔던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그런 생각을 자꾸 하게 되었습니다. 이게 여행 덕분인지 글쓰기 덕분인지 여행지에서 글을 쓴 덕분인지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이번 여행은 제게 아주 특별한 경험을 선물해 주었습니다.
이제와 이번 여행을 정의해 보자면, 이번 여행은 쉼표가 아니라 한 챕터를 끝내는 마침표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상과 일상 사이, 잠깐 쉬어가는 자리가 아니라 하나의 이야기를 맺는 챕터의 가장 끝 마침표. 공교롭게도 올해 저는 만 39세이고, 곧 ‘만’이라는 단어가 붙어도 사십 대임을 부정할 수 없는 나이가 됩니다. 어쩌면 이번 여행은 제 인생 전반전의 마침표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작가님, 우리가 몇 살까지 삶이라는 여행을 할 수 있을까요? 정말 큰 행운이 주어져 소위 말하는 평균 수명까지 이 여행을 이어간다고 하면 팔십 대 중반쯤이겠지요. (어떠한 변수도 없이, 무사하고 무탈하게 그럴 수 있다면 그야말로 ‘행운’일 겁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면 사십을 맞이하는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말 그대로 인생 전반전이 끝나고 후반전이 시작되는 셈이니까요.
인생의 전후반은 축구의 전후반과는 좀 다른 듯합니다. 축구의 전후반은 둘 다 치열하게 달려야 하지요. 어쩌면 후반전이 더 치열할 겁니다. 그런 점에서 인생의 전후반은 축구보다는 등산에 가까운 것 같아요. 열심히 올라온 산을 조심히 내려가야 하는 등산이요. 이제 더는 정상을 보고 앞뒤 없이 내달리는 일보다는, 안전하고 무사하게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야 하는 일에 마음을 쏟아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제주 여행은 정상에 올라 잠시 ‘야호-’ 하며 산메아리도 듣고, 심호흡도 크게 하며 호흡을 고른 시간이었습니다. 정상이라고 해서 지금 제가 가진 것이 최상이다, 더는 도전할 과제가 없다, 인생 목표에 도달했다, 뭐 그런 것은 결코 아닙니다. 내려가는 길에도 수많은 과제들이 있을 것이고, 몸과 마음이 허락하는 한 저는 또 최선을 다해 과제들을 해내겠지요. 제가 표현한 ‘정상’이라는 것은 지금까지의 시간과 앞으로 다가올 시간을 가르는 길목 같은 느낌이라는 게 더 정확할 것 같습니다. 저는 이번 여행에서 이제껏 제가 걸어온 십 대와 이십 대, 삼십 대의 길을 찬찬히 떠올려 보았어요. 앞으로 제가 찬찬히 밟아내려 갈 사십 대와 오십 대, 육십 대와 칠십 대의 길도 어렴풋하게나마 상상해 보았고요.
지금에 와서 변명 아닌 변명을 하자면, 제 내면에서 일어나는 이토록 많은 변화와 마주하느라 긴 시간 동안 작가님에 편지를 띄우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여행 내내 작가님께 편지를 쓰는 마음을 생각했어요. 그리고 지금, 작가님께 무사히 편지할 수 있음에 안도하고 있습니다.
제가 여행에서 한 챕터의 마침표를 찍는 동안, 작가님도 꽤 긴 여행을 하셨지요? (작가님도 이곳, 브런치에 여행지의 기억을 하나둘 풀어내고 계신 걸 보니 우린 어쩔 수 없이 ‘쓰는 사람‘으로 살아갈 운명인가 봅니다.) 작가님의 여행은 무엇이었을까요. 쉼표? 마침표? 물음표? 느낌표? 말줄임표? 각종 문장부호들을 다 상상해 봅니다.
작가님, 제가 ‘여행지에서 발견한 문장’의 마지막 글에도 썼지만 긴 여행 끝에 제가 도착한 곳은 ‘여행 같은 일상’이었습니다. 여행자의 마음으로, 조금은 더 너그럽게 삶이라는 여행을 즐겨볼까 해요. 우리 남은 여행에서도 오래 함께 해요.
9월이라는 달이 무색한, 열대야의 밤을 보내며.
멀리, 대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