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31 댓글 2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다시 시작하는 학교 이야기

by 진아 Mar 16. 2025

올해 3월 새로운 학교로 발령이 났다. 앞으로 4년 동안 근무할 새 학교는 개교한 지 5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이미 지역에서는 꽤 이름이 알려진 문과 계열의 특목고다.


전보 희망 내신서를 작성할 때, 내가 이 학교를 희망한다고 하자 주변에서는 대부분 우려를 표했다. 신설학교에 특목고에 기숙형 학교라 수업도, 업무도 일반고와는 비할 수 없게 힘든 학교라는 소문이 팽배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가정과 일의 양립이 매우 어려운 학교일 수밖에 없었다. 아직 아홉 살, 일곱 살 어린 두 아이를 키우는 나로서는 쉽게 희망할 만한 학교가 아닌 게 분명했다. 고민이 안 되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이상할 정도로 이 학교에 끌렸다. 교직 15년 차가 되면서 학교에서는 중견교사 소리를 듣는 연배가 되었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기보다는 기존의 것들을 기한 내 해내는 것만으로도 벅찬 순간들이 많았다. 마침 작년에 ‘다정한 교실은 살아 있다’라는 책을 쓴 것이 큰 변곡점이 되었을 것이다. 그 책을 쓰면서 나는 여전히 교직에서 무언가를 배우고 싶어 하고, 그로써 성장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여러모로 무리가 되는 일들이 생기겠지만, 그건 닥치면 해결하기로 하고 내신서를 썼다.


그리고 2월, 운명처럼 나는 희망하던 학교에 발령을 받았다.


첫해에는 부장교사를 피하고 싶었다. 일을 피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여러모로 내가 근무하던 학교와는 다른 점이 많은 학교였으므로 적응할 시간이 있었으면 했다. 담임교사를 강력하게 희망했으나, 인생이 어디 계획대로 될까. 나이와 연차에 맞게, 부장을 맡게 되었다. 내가 맡은 부서는 ’ 인문교육부‘. 쉽게 생각하면 학교에서 일어나는 모든 ‘독서‘ 관련 업무를 총괄하는 부서였다. 다른 부서였다면 고사도 해보았을 텐데, 인문교육부라 그러지 못했다. 내가 가장 잘할 수 있고, 가장 좋아하는 일이었으니.


3월 정식 개학도 하기 전부터 1박 2일 부장 워크숍에, 3일간의 새 학년도 설계주간이 이어졌다. 학교 분위기와 업무 파악이 전혀 안 된 상황에서 각종 회의와 모임에 참석하며, ‘내가 잘 선택한 게 맞을까, 잘 해낼 수 있을까’ 불안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꼭 그만큼 ’잘해내고 싶다,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들의 일원이 되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학교에 모인 선생님들은 내가 만난 어떤 선생님들보다도 열정적이셨고, 배울 점이 많은 분들이셨다. 그 힘든 일정 속에서도 누구 하나 불만을 표하거나 인상을 찌푸린 분이 없었고, ‘함께 하면 잘할 수 있다, 혼자 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우리가 다 함께 해주겠다‘며 선뜻 손 내밀어 주는 분들이 많았다. 적지 않은 교직 경험 속에서도 특별한 경험이었다.


어찌어찌 개학 준비를 하고, 개학 날 아침이 되었다. 첫 수업 준비에, 업무 파악에 정신없는 날들을 보내고 맞이한 개학이라 두려움과 설렘을 두루 느끼며 학교로 갔다. 기숙형 학교라 개학 날 학교 앞은 아이들을 태워다 주러 오신 학부모님들과 출근하는 선생님들의 차량으로 인산인해였다. 혼이 쏙 빠지는 출근길을 뚫고 무사히 교무실에 도착하자, 이제 이곳이 내가 4년간 근무할 곳이라는 실감이 났다.


그리고 2교시, 나는 교직 인생에서 결코 잊지 못할 장면과 마주했다. 그것은 바로 ‘신입생 입학식’이었다.




이제껏 숱한 입학식을 봐왔지만 그런 입학식은 정말로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1교시에 배정된 학급에서 담임 선생님과 먼저 만났던 신입생들은 학교의 마크가 박힌 가운을 입고 입학식장으로 내려왔다.(이 가운은 졸업식날도 입는 가운이라고 한다. 대학교 졸업 가운을 생각하면 된다.) 입학식장 앞에는 레드카펫이 깔려 있고, 양쪽에는 선생님들과 선배들이 서서 박수를 쳐주었다. 신입생들을 박수는 받으며 입학식장으로 입장했고, 식장 안에 있던 2, 3학년 학생들과 선생님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신입생 전원이 자리에 앉을 때까지 기립 박수를 쳐주었다. 학생들이 모두 자리에 앉고 나면 선생님들은 앉을자리가 없었는데, 선생님들은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학생들이 앉은자리 주변으로 빙 둘러 서서 입학식이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이후 이어진 흐름은 보통의 입학식과 유사했으나 선배의 환영사는 또 달랐다. 작년도 학생 회장이었다고 하는 3학년 여학생이, 아직 보지 못한 후배들을 떠올리며 온마음을 담아 써온 환영사에는 진심 어린 환대의 말들이 가득했다. 학교에 대한 애정이 담뿍 담긴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입학식이 이어진 약 한 시간 동안, 누구 한 명 휴대전화를 보며 딴짓을 하는 아이가 없었고 그건 선생님들도 마찬가지였다. 개학 첫날, 선생님들의 업무가 얼마나 많은지 아는 나로서는, 1학년 담임도 주요 부장도 아닌 선생님들이 입학식이 이어지는 한 시간 내내 식장을 지키며 박수를 보내고 함께 웃는 그 장면이 너무나 신선한 충격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가, 그것이 너무 놀랍고 궁금했다. 누구 한두 사람의 노력이나, 관리자의 강압으로는 결코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도대체 어떤 에너지가 이런 일을 가능하게 하는 걸까.


내가 놀라웠던 것 이상으로 신입생 아이들도 그랬을 것이다. 아이들은 입학식에 참여하기 위해 가운을 입어야 하는 것부터 뭔가 다르다는 것을 직감했을 것이다. 더하여  오직 자신들을 위해 깔려 있던 레드카펫 위를 걸을 때, 선배들과 선생님들의 기립박수를 받을 때 많이 놀라고 쑥스러운 만큼 ‘아, 내가 이곳에서 환대받고 있구나’ 느끼지 않았을까. 먼저 온 사람들에게 환대받는 느낌. ‘나‘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이들이 오직 내가 이곳의 일원이 되었다는 사실만으로 환대하는 사실. 짧은 시간 동안 학교에 대한 아이들의 자부심을 채워주는 데에 그만한 일이 또 있었을까 싶다.


새 학교에서 근무한 지 약 2주가 지났다. 그 사이에도 이미 많은 일들이 있었다. 여전히 자주 놀라고, 자주 감동한다. 그리고 정말 많이 배운다. 앞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은 수업 이야기, 내가 맡은 업무 이야기(아마 여러 독서 프로그램 이야기가 될 것이다), 학교 이야기를 기록해보려 한다.


여전히 학교에는 희망이 있다, 사랑이 있다.
<다정한 교실은 살아있다> 중에서.






매거진의 이전글 <2월의 학교> 정든 학교, 사람들. 모두 안녕.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