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SR, 명상과 마음챙김이 전 세계를 휩쓸기까지
안녕하세요! 구독자님 :)
마디입니다. 지난 한 주도 잘 지내셨어요?
요즘 전 10분의 구독자분들과 함께 요가와 웰니스 산업 전반을 공부하는 챌린지를 하고 있어요. 지난 주엔 시중에 나온 명상과 마음챙김 어플에 관한 조사를 하고 있었는데요, 좀 궁금한 것이 생기더라고요.
’마음챙김’이라는 말은 어디서 온 건지, 또 왜 이렇게 전세계적으로 유행하게 된 건지요. 찾아보니 이 질문의 답은 바로 MBSR에 있었습니다. 미국의 존 카밧진이라는 사람이 만든 마음챙김에 기반한 스트레스 감소 (Mindfulness-based Stress Reduction) 프로그램의 줄임말이죠.
명상의 세계적인 표준이 된 이 프로그램 뒤엔 재밌게도 우리나라의 한 스님, 노벨생리학상과 불치병, 그리고 45년의 시간이라는 이야기가 숨어있더라고요. 오늘 레터에선 이 MBSR에 대해 얘기해볼게요.
1944년, 뉴욕. 실험에만 골몰하는 한 생물의학자와 틈만 나면 뉴욕의 미술관에서 시간을 보내던 예술가가 만나 한 아이를 낳았습니다. 아이의 이름은 존 Jon. 존은 아주 어릴 때부터 아버지와 어머니가 세상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어요.
제 어머니는 모네처럼 세상을 보셨어요. 그림자, 빛의 반사, 색채... 예술가의 눈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셨죠. 반면 아버지는 콜럼비아 대학교의 면역학자로, 4개 학과의 교수를 겸임하실 정도로 뛰어난 과학자셨습니다 - 존 카밧진
자연스럽게 존은 과학적인 시선과 예술적인 시선을 통합하는 데 관심을 가지며 자랐죠. 존은 아버지의 뒤를 따라 과학의 길을 걷게 되었고, 분자생물학 박사과정을 위해 진학한 MIT에서는 노벨상 수상자 살바도르 루리아의 실험실에서 공부했습니다.
하지만 교수님께 많이 혼났다고 해요. 다른 제자들은 DNA의 이중나선형을 밝혀낼 정도로 뛰어난 과학적 성과를 내는데, 존은 과학적으로 증명하기 어려운 생물의 ‘마음’ 따위에만 관심을 기울였기 때문입니다. 확실한 수치와 검증에 익숙한 과학자들에게 이런 문장으로 시작하는 졸업논문을 제출했다고 생각해보세요.
"죽기 전에 죽는 사람은, 죽을 때 죽는 것이 아니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리야? 루리아 교수는 존 때문에 교수직을 내려놓고 싶다는 농담까지 할 정도로 존의 특이함을 견디기 힘들어했습니다. 물론, 말년에는 존에게 명상을 가르쳐달라고 하게 되지만요.
이렇게 쉽게 밝혀내기 어려운 생명의 ‘마음’에 관심을 기울이던 박사생 존은 우연히 학교에서 선불교에 관한 강연을 듣게 됩니다. 1965년이었습니다. 요가레터 1호에서 소개했던 스티브 잡스가 학교를 다닐 때와 비슷한 분위기였어요. 자유, 섹스, 마약, 로큰롤, 히피의 시대였죠.
지금이야 미국인 5명 중 1명이 명상을 한다지만 그 당시 미국인들에게 요가, 명상, 참선 등 동양철학 전통은 엄청나게 새로운 것이었습니다. 대부분은 명상을 ‘수정 구슬'을 응시하는 미친 짓이라고 생각했죠. 이런 분위기 속에서, 존은 학교 근처 케임브릿지 선원(Zen Center)에서 명상을 하게 됐는데요. 이 선원에서 한국에서 온 숭산스님을 만나게 됩니다.
존이 한국어로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숭산 스님은 하얀 고무신을 신고 보스턴에서 세탁기 수리공으로 일하곤 했습니다. 늘 겸손하게 일하고 솔직한 태도로 제자들을 대하는 숭산스님에게 존을 포함한 당시 미국 학생들은 많은 매력을 느꼈어요. 숭산 스님의 설법은 비록 짧은 영어로 이루어졌지만 듣는 이의 폐부를 늘 정확하게 찔렀거든요.
What am I?…. Don’t know!
또 그 당시 선원에는 사회적으로 봤을 때 무척 이상하고 특이한 사람들이 찾아오곤 했는데요, 스님은 선원을 찾아오는 그 누구나 받아들였다고 해요. 미친 사람, 이상한 사람 그 누구도 내쫓거나 포기하지 않았어요. 어려울지라도 연민과 사랑으로 모두를 품는 이런 스님의 태도는, 존에게 나중에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한국의 선 전통의 아름다움은 알아차림은 둘이 아니라는 (non-dual, 不二) 것입니다. 알아차림은 우주와 같습니다. (…) 숭산스님은 우리에게 “모른다”는 것의 중요성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어느 정도 모르는 지에 대한 알아차림이 마음챙김의 핵심입니다. 이는 우리가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심지어 우리가 모른다는 것을 모르는 것을 아는 것을 가르쳤습니다 - 존 카밧진
선불교를 시작으로, 다양한 영적 스승과 함께 공부한 존이지만 그의 직업은 여전히 분자생물학자였습니다. 그러다 매사추세츠 의대에서 근육발달에 대한 연구와 해부학에 대한 강의를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고 자리를 병원으로 옮겼어요. 이 때 30대 중반이었던 그의 눈길을 사로잡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불치병과 만성 질환으로 끊임없는 고통 속에 사는 사람들이었죠.
존의 눈에 비친 병원은 그야말로 Dukha Magnet, 고통의 자석이었습니다.
말기 암, 만성 두통, 만성 요통.. 이런 환자들은 고통에 몸부림치며 계속 병원의 문을 두드렸지만 마땅한 치료법 없이 발길을 돌려야했죠. 평생 생물학자였던 존은 의사나 심리학자로서의 경력은 전무했지만, 스승님의 가르침대로 이런 사람들에게 연민을 갖고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참선 중에 어떤 생각이 그의 뇌리를 스쳤습니다.
바로 존 자신이 오랜 명상가로서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는 깨달음이었습니다. 존은 고통받는 환자들을 위해 그간 공부했던 선불교, 위빠사나, 하타요가, 베단타의 다양한 가르침을 적용해 환자들이 사용할 수 있는 스트레스 감소 및 이완 프로그램을 개발했어요. 이원론을 벗어나, 세계 최초로 종교를 배제한 명상을 의료계에 과학적인 지식으로 도입하려는 시도였죠.
마음챙김에 기반한 스트레스 감소 Mindfulness-based Stress Reduction
MBSR이 탄생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영어의 ‘약’과 ‘명상’이라는 단어는 동일한 어원적 뿌리에서 나왔습니다. (…) 우리는 MBSR을 통해 ‘사람들에게 스스로 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치면 어떨까?’로 접근했습니다. 의사와 의료진들에게 받는 치료를 보완하기 위해서 말이죠. 사람들은 자신의 몸과 마음의 알아차림을 배양할 책임이 있습니다 - 존 카밧진
1979년, 매사추세츠 대학병원 지하 1층 동물실험실 옆에서 첫 MBSR 클래스가 시작됐습니다. 특이한 건, 만성 통증, 불안장애, 암, 우울증…. 진단명과 관계없이 모든 환자들을 한 교실에 모았다는 점이었어요.
살아있고, 숨을 쉬고, 몸이 있고, 마음이 있다면 누구든 MBSR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프로그램 기간은 총 8주. 전통적인 불교 명상법을 일반인에게 맞게 수정했고, 고통 때문에 오래 앉아 있기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위해 요가의 몇 가지 아사나는 누운 자세로 바꿔서 진행했습니다. 참가자들은 걷기 명상, 마음 챙김 식사, 호흡, 스트레칭과 하타요가, 바디스캔 등을 경험했어요.
시간이 지나며 조금씩, 사람들은 곧 ‘지금 내가 느끼는 이 고통이 내가 아님을, 또 이 고통이 영원하지 않음’을 알아차리고 비로소 깨어있는 상태에서 휴식할 수 있었습니다. 마음챙김 Mindfulness 라고 이름 붙여진 바로 그 상태를 경험할 수 있었죠.
일반적으로 통증이 있을 때, 그것에 대한 생각과 감정반응이 괴로움을 만듭니다. “견디기 힘들어”, “아파 죽겠어”, “영원히 지속되겠지”, “내 인생은 망했어” 이 모든 것은 생각일 뿐이지만 그것을 믿으면 사실이 됩니다. 명상을 통해 자유를 얻는 방법은 “이것 때문에 죽겠다”라는 생각이 들 때 의구심을 갖고 스스로에게 질문해보는 것입니다. - 존 카밧진
존은 처음부터 알았습니다.
이것이 하나의 이벤트로 끝나지 않고 전세계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닿을 수 있으려면 정식 의학 논문으로 써서 발표해야 한다는 걸요. MBSR 연구팀은 통증, 불안, 뇌 기능, 면역 기능, 건선 등 많은 부분에 효능을 보이는 이 MBSR의 효과를 모두 기록했습니다.
1982년, 드디어 MBSR이라는 이름으로 명상이 과학계에 첫 발을 내딛습니다. 존과 연구진은 이후에도 MBSR을 거쳐간 수천 명의 환자들의 데이터를 10년 동안 수집했고요. 90년대에는 MBSR 커리큘럼도 만들어 미국 전역으로 MBSR 지도자들을 배출했습니다.
과학과 기술을 부정하지 않으며 종교색 없이 이뤄지는 이 프로그램에 사람들은 마음을 더 쉽게 열었습니다. MBSR은 전 세계 병원과 의료센터로 확대되었고 기하급수적으로 명상 관련 연구가 증가했어요. 마음챙김 Mindfulness, 명상 Meditation 이 포함된 학술 자료는 이제 백만 건이 넘어 갈 정도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해서 입증되고 있는 MBSR의 효과를 몇 가지로 요약해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 신체 건강: 만성 통증 감소, 혈압 안정화, 면역력 강화, 염증 반응 감소, 두통 완화, 염증 및 원발암 유전자 개선, 텔로미어 재생
- 정신 건강: 불안과 우울 감소, 스트레스 대처 능력 향상, 감정 조절 능력 개선, PTSD 증상 완화, 수면의 질 개선, 집중력/주의력/기억력 향상, 의사결정 능력 향상, 창의성 증진, 학습 능력 향상
- 관계적 측면: 대인관계의 질 향상, 공감 능력 증가, 의사소통 능력 개선, 갈등 해결 능력 향상, 일과 삶의 균형 개선, 업무 생산성 향상, 스트레스 회복탄력성 증가
2000년대 들어서부터는 이제 환자들이 아닌, 만성적으로 스트레스와 자극에 노출된 현대인에게 적합한 마음챙김 역시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최근에는 과도한 디지털 기기, 미디어 사용으로 오는 자극과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한 MBSR 기반 방법이 주목 받고 있습니다.
마음챙김을 능숙하게 실천하는 방법은 무한히 많으며, 배울 수 있는 스승과 가르침도 다양합니다. 모두 궁극적으로 같은 방, 즉 열린 마음을 가진 인간 인식의 방으로 들어가는 서로 다른 문입니다. 이러한 인식은 지능의 한 형태이며, 실제로는 인식되지 않는 초능력입니다. 그것은 항상 여기 있고, 언제나 활용할 수 있으며, 심지어는 오랜 시간 동안 머물러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삶 자체가 진정한 명상 수행이 됩니다. - 존 카밧진
1. MBSR은 과학자이자 명상가인 존 카밧진이 다양한 동양철학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1979년에 만든 의학적 스트레스 감소 프로그램이예요.
2. 명상과 현대 의학을 접목해 만든 이 8주 과정은 과학적 연구를 통해 다양한 효과가 입증되었어요.
3. 지금은 환자들뿐 아니라 만성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의 정신 건강을 위한 많은 명상 프로그램의 근간이 되고 있어요.
가만히 눈을 감고 명상 어플 속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를 따라가면서 상상했어요.
히말라야 동굴 속, 아시아의 산 속, 그리고 미국 병원의 지하까지. 세상의 모든 고요한 시공간에서 명상하던 이전의 사람들을요. 또 45년 전, 예술과 사람의 마음을 궁금해하던 과학자의 연민 어린 시선에서 시작된 프로그램이 지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고 있는지 생각하며, 참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용하는 언어만 다를 뿐 결국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요가의 일부를 차용한 MBSR 역시 현재 순간에 머무름, 판단하지 않는 것, 몸과 마음의 연결을 느끼는 것을 강조하니까요. 결국 우리가 함양하고자 하는 것은 깨어있음, 알아차림, 평화의 마음가짐이겠죠.
오늘 MBSR과 존 카밧진 박사님의 이야기가 여러분께는 어떻게 가닿았는지 궁금하네요.
곧 뉴스레터 플랫폼을 이사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다음 한 주는 요가레터를 쉬어가요. 조금 더 읽으시기 편한 요가레터로 정비해 돌아올게요. 11월과 12월에 함께 요가와 웰니스 트렌드를 공부하고 싶으신 분들은 이 링크에서 대기 신청해주세요.
10월 마무리 잘 하시고, 11월 첫째 주에 만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