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망가라치바 Jan 01. 2024

후지산! 그런데 이제 바이크를 타고 - 제6화

안녕 이즈, 다시 도쿄로

Day 5


이즈에서의 아침은 아주 쾌적했다. 게스트 하우스와 달리 제대로 된 호텔의 침대가 편안한 덕분인지 아니면 전날 저녁의 온천욕 덕분인지 알 수 없지만 기상은 상쾌했다. 형도 감기기운은 없다고 했다. 도쿄로 돌아가야 하는 날이고 꽤 장거리를 가야 하기 때문에 그 부분은 다행이었다. 우리는 침대를 대충 정리하고 조식을 먹으러 갔다.

2022년 당시는 아직 코로나가 완전히 끝나지 않아서 마스크를 쓰고 있다. 이걸 2024년에 쓰고 앉았으니 얼마나 게으른 작가인가

조식 메뉴 자체는 일본 비지니스 호텔에서 나오는 메뉴들과 비슷했다. 날계란, 낫또, 스크램블 에그나 소시지 등 그냥 빠르고 간편하게 준비할 수 있는 효율적인 메뉴들이 전부다. 하나 특이하다면 특이한 부분은, 괴상한 파스타 메뉴가 꼭 하나씩은 나온다는 점이다. 한국 고등학교 급식 파스타 같은 그 케첩 파스타가 인상적이다. 개인적으로는 날계란을 밥에 비벼서 계란밥을 해 먹는 걸 좋아한다. 일본 계란과 한국 계란이 어떻게 다른지는 모르겠지만 한국 계란은 날계란으로 먹으면 비린내가 좀 나지만 일본은 그런 게 좀 덜하게 느껴져서 먹기 편하다.


아침을 해결한 후에는 빠르게 준비를 하고 체크아웃했다. 도쿄로 향하기 전에 들러야 할 곳도 있고 갈길이 멀다. 호텔을 나가서 새벽사이 바이크에 내린 비를 닦아내고 바로 출발했다. 목적지는 미토 해수욕장인데 러브라이브라는 애니메이션의 배경이 되는 곳이라는 모양이다. 나는 그 만화를 잘 모르지만 해변에서 후지산이 보이는 풍경이 좋다고 하니 안 갈 이유가 없었다.


장소 자체는 멀지 않았다. 호텔이 있던 시내를 빠져나가 산을 하나 넘으니 바로 해변길로 들어서고 목적지가 보였다.

해변 반대쪽으로 보이는 후지산이 멋지다

마을 자체는 조용한 휴양지 마을이고 수족관이 있는 게 뜬금없었지만 해변에서 보이는 풍경 자체는 참 좋았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후지산이 바로 눈앞에 있었는데 벌써 저 멀리 보이는 곳까지 왔다는 게 신기했다. 반대로 이 정도 거리인데도 후지산이 보이는 게 대단하기도 했다. 도대체 얼마나 큰 산인지. 근처의 관광안내소도 잠시 찾았는데 위에서 얘기했던 애니메이션의 캐릭터 상품들이 잔뜩 놓여있었다. 역시 일본, 애니메이션 하나가 지역경제를 먹여 살리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사진을 찍고 잠시 풍경을 즐기다가 우리는 다시 바이크에 시동을 걸었다. 이제는 진짜 도쿄까지 긴 여정을 시작할 시간이다. 도쿄로 돌아가는 길에 에노시마에는 잠시 들를 생각이었지만 거기까지만 해도 몇 시간을 달려야 하는 길이다. 중간에 멈추지는 않을거지만 바이크로 달리기 좋은 해변도로가 있다는 것 같아서 그 길을 따라갈 생각이었다.


이즈를 벗어나 해변을 달리는 동안 거의 폐허가 돼버린 온천마을이 몇 개 보였다. 리조트 하나가 통째로 폐허가 되어있는 것들을 보니 을씨년스러우면서도 뭔가 쓸쓸하게 느껴졌다. 형 얘기로는 코로나의 영향 + 지방쇠퇴가 맞물리면서 이런 곳들이 일본 전국에 꽤 많아졌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한국의 미래를 엿본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한국의 현실을 보면 일본보다도 더 빠르고 심하게 진행될 테니 거의 도시 단위로 폐허가 되어갈지도 모른다.


주변의 폐허와 상관없이 바닷가를 달리는 길은 시원했다. 탁 트인 태평양이 말 그대로 바로 옆에 있었다. 풍경을 보기도 하고 이런저런 수다를 떨다 보니 에노시마까지는 금방이었다.

에노시마에서 해변가와 다리를 찍은 사진. 아직도 후지산이 보인다!

에노시마는 이즈와 요코스카 사이에 있는 작은 섬의 이름으로 위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다리를 통해 들어갈 수 있다. 긴 해안선에 뜬금없이 작은 섬이 하나 있으니 지도에서도 찾기 편할 것이다. 소문에 의하면 여기가 일본 폭주족들의 성지였다고 하는데 우리가 흔히 폭주족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의 바이크는 없었다. 애초에 유명한 관광지라서 차도 많고 바이크도 많았지만 청룡쇼바는 없었다. 한번 보면 좋았을 텐데 아쉽기 그지없다.


개인적으로는 그다지 호감이 가는 지역은 아니었는데 사람도 차도 너무 많아서 흡사 한국 관광지를 보는 것 같았다. 내가 원하는 건 멋있는 바이크 코스나 고즈넉한 자연과 시골이지 사람에 치이는 관광지가 아니니까 말이다. 그래도 일단 구경은 해야 할 것 같아서 안쪽에 있는 신사까지만 딱 보고 돌아오자고 했다.

일본 어디를 가도 이런 토리이를 볼 수 있다.

섬 안쪽으로 들어가는 길에는 여러 상점들이 늘어선 길이 있고 그 위로 신사와 전망대까지 올라가는 길이 보였다. 전병이나 특산품 같은 것들을 팔고 있었지만 크게 흥미가 가지는 않았다. 해가 지기 전에 도쿄에 도착하려면 시간도 얼마 없었기 때문에 오른쪽 사진을 찍고 바로 발길을 돌렸다. 에노시마는 너무 대충 돌아보는거 아닌가 싶겠지만 사실 한국인 입장에서 그렇게 흥미가 가는 지역은 아니었다. 만약 한국인들 중에 이 지역에 흥미를 가지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아마 다음에 얘기할 부분 때문이 아닐까 싶다.


에노시마 근처에는 유명한 명소가 하나 더 있는데, 그건 바로 슬램덩크 오프닝에 나오는 철도 건널목이다. 에노시마와 가마쿠라 지역이 한국판은 북산, 일본판은 쇼호쿠라고 불리는 주인공 학교가 그려지는 배경지이기 때문에 에노시마라는 이름이 나왔을 때 이미 알고 있는 사람도 있었을 것 같다. 다만 문제는 그 건널목이 있는 길 자체가 차량 통행량이 많고 관광객도 많아서 바이크를 잠시 세울 공간이 없다는 점이었다. 뭐 해결책은 간단하다. 멈추지 않고 지나가면서 보면 되는 것이다. 물론 나도 슬램덩크를 좋아하지만 엄청난 노스탤지어를 느낄 정도는 아니고, 보기만 한다면 멈추지 않아도 불만은 없었다.

오프닝 장면과 실제 사진. 사진은 일본 관광청에서 가져왔다.

에노시마를 나와서 해변가 도로로 들어서자 형이 그 건널목이 나오면 알려주겠다고 했지만 막상 가보니 형이 알려줄 필요조차 없었다. 열차가 지나가는 타이밍에 사진을 찍으려고 기다리는 관광객들이 여럿 대기하고 있어서 누가 봐도 저기겠구나 싶었다. 사람도 많고 복잡한 것이 차라리 바이크로 지나가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형 얘기로는 코로나 이전 아직 관광이 활발할 때는 위 사진의 전차에 중국인 관광객들이 가득했다고 한다. 그로 인해 지역 주민들이 전차를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게 되자 중국인들에 대한 전차 이용 금지를 요구했을 정도였다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주변 길이 좀 막혀서 건널목을 구경할 시간은 충분했고 운 좋게 전차가 지나가는 것까지 봤으니 도로에서 보는 편이 오히려 좋았다. 건널목을 지나서 이젠 진짜 도쿄행인가? 싶었지만 아니었다. 가는 길에 있는 작은 바이크 카페에 들러서 잠시 쉬기로 했다. 이게 글로 보면 금방인 것 같지만 실제 시간으로는 거의 5~6시간을 바이크로 달린 상태라 꽤 지쳐있었다.

808Cafe10R, 바다가 보이는 좋은 카페였다.

카페의 이름은 808Cafe10R, 바이크 라이더들이 자주 찾는 모양이지만 일반 운전자가 찾아도 괜찮을 것 같았다. 간단한 음식들과 음료 종류를 파는데 나는 당을 좀 집어넣으려고 따뜻한 초코라떼를 한잔 마셨다. 위에 왼쪽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이미 해가 지는 중이다. 되도록 해가 지기 전에 도착하는 게 안전하기도 하지만 바이크의 렌탈시간 때문에라도 서둘러야 했다. 우리는 15분 정도 휴식을 취하고 다시 바이크에 올랐다.


여기서부터는 말 그대로 도쿄까지 쭉 달리는 거라 사진이 없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여기서부터의 라이딩이 이 날의 코스 중에는 가장 좋았다. 요코하마 만을 가로지르는 대교 요코하마 베이브리지를 통해 석양에 잠겨가는 도시를 뒤로하고 달리면 내가 영화의 주인공이 된 것 같았고, 이미 어둠이 내린 거대한 해안 공장단지 사이 고속도로를 달리는 건 마치 스팀펑크 세계관을 보는 것 같았다. 공장 굴뚝 여기저기에 불빛이 번쩍이고 연기가 피어오르며 서서히 하늘이 어두워져 갔다.


도쿄 도심을 달리는 것도 좋았다. 복잡한 도로와 많은 인파를 껄끄러워하는 나지만 도쿄를 관광할 때는 언제나 저 사람들 사이에 있었는데 하고 생각하니 뭔가 생소한 느낌이었다. 간판들은 번쩍이고 도로는 시끄럽지만 "대도시"의 야경도 나쁘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서울로 돌아가 강남 대로를 달려도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여행이란 신기하다. 같은 것도 다르게 보이게 해 준다.


다행히도 바이크 렌탈 시간은 아슬아슬하게 늦지 않았다. 바이크를 반납한 후에는 형의 바이크를 둘이 타고 집으로 향했다. 저녁식사는 근처 시장골목에서 야키니쿠를 먹었는데 얼마나 지쳐있었는지 딱히 사진을 찍지 않았다. 이제는 놀랍지도 않다. 우리는 지난 여행얘기를 하고 맥주를 마시고 고기를 잔뜩 먹은 후 각자의 숙소와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돌아가는 길에 맥주를 하나 더 사서 유튜브를 보다가 잠을 청했다. 기나긴 바이크 여행의 마지막으로는 소박해 보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아주 만족스러운 마무리였다.


물론 아직 완전히 끝은 아니다. 진짜 마지막 날이 남아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후지산! 그런데 이제 바이크를 타고 - 제5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