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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구경 Mar 09. 2023

작년의 실패 회고하기 - ②

롤러코스터 하강을 시작합니다. '더닝 크루거 효과'


1. 롤러코스터 하강을 시작합니다. '더닝 크루거 효과'



모든 것이 치솟을 대로 치솟은 고물가 시대.

요즘의 물가처럼 아슬아슬한 꼭대기에 있던 게 하나 있다면 그건 바로 나의 자신감, 정확하게는 2022년 퇴사 후의 자신감이었다. 당시에는 몰랐다. 화성 탐사까지 가능할 것만 같던 자신감 롤러코스터가 사실은 하강 직전의 꼭대기에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더닝 크루거 효과(Dunning-Kruger effect)'에 대해 들어봤는가? 잘못된 결론에 도달하더라도 능력이 없기 때문에 실수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현상을 뜻하는데, 네이버 지식백과에서는 이것을 '무식하면 용감하다'라고 덧붙여 설명하며 여럿을 때린다. 아- 은은하지만 제법 타격감 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 (사진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즉 이 효과는 능력이 부족할수록 자신의 능력을 높게 사고, 반대로 능력이 뛰어날수록 스스로를 과소평가하는 인지 편향의 하나로, 문득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라는 속담이 떠오른다. 비슷하지만 다른 점은 우리의 벼는 자기가 잘난 줄 알지만, 겸손이라는 미덕을 행한다는 것이고, 더닝 크루거 효과의 '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본인의 능력을 정말로! 과소평가한다는 것이다. 한때 온라인 커뮤니티를 돌며 유행하던 '학사, 석사, 박사 그리고 교수의 차이'라는 짤은 많은 이의 공감을 사며 더닝 크루거 효과를 알기 쉽게 보여준다. 

 

더닝 크루거 효과를 그래프로 표현하면 아래와 같다. 


1. 대부분 공감할 사진. 그런데... 교수님?! / 2. 우매함의 봉우리. 수치스러울 정도로 하늘을 찌른다. (사진 출처 : 네이버 이미지)



아는 게 거의 없는 상태일 때 자신감은 허공을 찌르는데, 그 지점이 바로 '우매함의 봉우리(Peak of Mt. stupid)'. 그리고 이것이 바로 퇴사를 고민한 순간부터 직후까지의 내 상태였다.


5년하고도 6개월의 회사 생활을 하며 아는 것이 많아졌다고 자부했다. 대부분의 업무를 어려움 없이 쳐내고, 지역의 문화예술 생태계를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고 생각했으며, 기획자적 능력도 적당히 키웠다고 판단했다. (여기서 가장 큰 문제가 발생했다) 무엇보다 업무의 권한과 책임이 생겼다고 착각했으니. 이제는 홀로서기를 할 수 있다고, 나의 인적 자원과 역량이 퇴사 이후에도 쓰임새 있게 활용될 것으로 생각했다. 성급하거나 쉬운 결정은 아니었지만, 퇴사하는 많은 이가 그렇듯 퇴사의 이유를 하나둘 수집해가며 정든 직장을 퇴사했다. '멋지다'는 응원의 말과 우려의 말을 잡곡밥처럼 적당히 섞은 주변의 인사와 함께.



2. 저... 죄송한데 와이파이 비밀번호가 뭔가요?



'내가 쌓은 역량과 노하우로 나만의 땅을 일구자.'라는 생각으로 도착한 두 번째 땅은 긱 워커(Gig Worker)의 세계. 조직의 울타리 안에 있던 시절에는 '프리 에이전트(Free Agent)' 같은 워크 스타일을 선망했다. 멀리서 보면 희극이요, 남의 떡이 커 보이는 법. 특히 공간과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일의 길이와 폭을 자유자재로 늘릴 수 있는 프리 에이전트의 업무 형태는 고정적인 업무로 고된 직장인에게 가장 큰 매력 요소로 다가왔으니. 특히 자신의 전문성을 기반으로 원하는 일을 선택할 수 있다는 자유는 나의 퇴사에 불을 지피는 점화제가 되었다. 


퇴사 직후 어느 평일의 오후. '이제는 넥스트 스텝을 밟아야지!'라는 마음으로 노트북과 함께 집을 나섰다. 낯선 공간에서 글도 쓰고, 뉴스레터도 읽다 보면 새로운 인사이트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집에서 조금은 먼 외곽의 카페를 찾았다. 주문한 음료와 함께 노트북을 편 순간, 아차차! 와이파이 연결이 안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회사를 다닐 때는 데스크톱을 켜면 자동으로 인터넷이 연결되며 각종 업무 프로그램이 세팅되니, 와이파이를 찾아 두리번거리는 이 상황이 익숙지 않았다. 너무나 당연하지만, 공간의 제약이 없는 업무 환경에서는 빠르게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캐치하거나 핫스팟을 연결할 줄 알아야 한다는 사실을 인지하자 하나의 작은 장벽이 생기는 느낌이었다. 


어느 하루는 자리에 앉아 두리번거리다 한쪽 벽에 와이파이 표시가 칠해진 안내문을 발견했다. '저기에 있군'을 외치며 일어나던 중 테이블에 한쪽 무릎을 거세게 받고야 만 나는, 왕복 10보라는 기나긴 여정(?)을 지나 안내문 앞에 도착했다. '아이고, 내 무릎이야. 그래서 비밀번호가 뭐길래.' 절뚝거리며 바라본 안내문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비밀번호 - 없음'


그래서 비밀번호가 뭐길래?!



짧은 탄식과 함께 자리로 돌아온 순간, 나는 작은 환경 변화에도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가만 생각해보니 나는 와이파이 연결뿐만 아니라 핸드폰으로 길 찾는 데에도 굼뜨고, SNS를 빠르게 활용하지도 못하는 디지털 문맹이 아닌가 싶었다. 고작 작은 것 하나로 자책을 느낄 일인가 싶겠지만, 방대한 정보를 빠르게 소화하는 능력과 높은 효율이 경쟁력인 시대에서 내게 일상은 처음부터 세팅할 투성이였다. 문득 내가 도착한 두 번째 땅이 건축 허가도 받지 않은 '나대지' 같은 존재라는 사실이 실감 났다. '쿠궁쿠궁-' 더닝 크루거 효과 속 우매함의 봉우리에서 롤러코스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3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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