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를 보고
한 사회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연 발생적으로 느끼더라도 외면해버려야 하거나 넘어버릴 수 없는 어떤 것 그리고 그것을 어긴 사람들에 대해서 우리가 ‘그 것(행동)은 잘 못 됐다.’ 라고 말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그것은 도덕적 관념 혹은 사회적 약속이라고 불린다. 영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에 표면 위에서 보여지는 서사-기표(시니피앙) 이면에 깔려있는 기의(시니피에)와 함께 무의식으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대해서 얘기해 보고자 한다.
옥희는 오해한 채로 그것이 되기를 소망한다.
“동네 사람들이 우리 집을 과부집이라고 부른답니다. 과부가 뭔지 난 잘 몰라요. 그래서 할머니한테 물어 봤더니 아버지가 없어서 그런다나봐요. 이 세상에서 우리 엄마처럼 이쁜 사람은 없을 거예요. 근데 내가 과부 딸이기 때문에 우리 엄마도 과부랍니다. 그리고 나는 올해 여섯 살 난 처녀애 랍니다.”
영화를 보지 않은 관객도 대부분 아는 ‘옥희’의 목소리로 영화는 시작한다. 옥희는 영화 속의 나오는 인물들을 모두 자신의 목소리로 설명하고 있지만, 정작 자신의 모습에 대해서는 자신이 오해한 채 설명한다. 위의 1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보여주는 대사에서 마지막에 자신을 설명하고 있는 ‘나는 올해 여섯 살 난 처녀애 랍니다.’ 라고 오해한 부분에 주목해 보자. 옥희는 스스로를 여섯 살인 ‘어린애(아이)’가 아니라, 여섯 살인 ‘몸’을 가진 ‘처녀애(아이)’로 스스로를 보고 또 설명하고 있다.
이 부분을 명확히 보여주는 장면은 옥희가 엄마에게 꽃을 전달 하는 부분에서 읽혀진다. ‘꽃’은 영화에서 ‘사랑’을 대신하는 기표로 작용한다. 옥희는 아저씨는 주지 않은 꽃(사랑)을 엄마에게 전달한다. 왜냐하면 엄마는 여섯 살 난 처녀가 아니므로 옥희는 받지 못하는 꽃을 엄마는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화는 사회적 관념을 한 번 더 명확히 하는 기표로 꽃을 사용하는데 그 이유는 ‘꽃’을 아저씨가 주지 않았는데, 옥희가 주었기 때문에 ‘잘 못’전달 된 것이라는 것을 기의에 깔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가 계속 되면서 한 번 더 옥희가 무엇인지 인식하지 못한 채 소망하는 바를 말하는 부분이 나온다. 바로 사랑방 손님에게 ‘아버지가 되었으면 한다.’라고 말하는 지점이다. 옥희는 아버지가 없는 채로 자랐고, 아버지라는 존재를 오해한 채로 (아버지가 무엇인지 모르는 채로) 사랑방 손님인 아저씨에게 아버지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 이야기를 아저씨한테 말했을 때의 시점을 보면 더 명확히 잘 알 지 못한 채 말한 다고 할 수 있는데, 사랑방 손님인 아저씨의 방에서 그림을 그리고 밥을 같이 먹는 등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서로 조금씩 더 가까워 진 후, 뒷동산에 다녀온 후 유치원 친구가 ‘아버지 하고 어디 갔다 오는구나.’ 라고 얘기한 이후에 옥희는 아버지가 되었으면 한다고 이야기 한다. 옥희는 아저씨와 그림을 그리고, 대화를 나누고, 뒷동산에 다녀오는 것이 좋기 때문에 ‘아버지가 되었으면 한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옥희는 처녀가 무엇인지, 아버지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그것이 되기를 소망했다. 그래서 실패했다.
달걀을 ‘이미’ 삶았기 때문에 안 된다.
사랑방 손님은 ‘삶은’ 달걀을 좋아하고, 그 사실을 알게 된 옥희는 엄마에게 전달한다. 그 후 식사 시간이 되면 사랑방 손님은 자신이 좋아하는 삶은 달걀을 먹는다. 영화의 서사에서 삶은 달걀은 표면적으로 ‘사랑(애정)의 신호’로 표현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가 알 듯 이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왜일까? 그 이유는 ‘삶은’ 달걀이기 때문이다. 한 차원 더 나아가서 ‘이미’ 삶은 달걀이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달걀은 그대로 품고 있으면 무언가(생명)가 되지만, ‘이미’ 삶아버린 달걀은 무언가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과부인 엄마에게 달걀은 ‘이미’ 삶아버린 것이라면, 아저씨에게는 생명을 품고 있는 것이라는 것을 영화는 편지를 통해 관객에게 전달한다. 바로 아저씨가 사랑을 다름아닌, “생명처럼 절대적인 것임을 자부하고, 또 고백합니다.” 하고 표현 한 부분이 그렇다. 아저씨는 할 수 있지만, 옥희 엄마는 달걀을 이미 삶아버렸기 때문에 사랑을 할 수 없는 것이다.
다시 이 글의 처음으로 돌아가며 끝을 맺고자 한다. 소설을 영화화 하며 우리나라의 문예영화의 시작을 알린 이 영화는, ‘기표’를 통해 사회의 통섭은 건드리되, 이루어 지지 않음(‘기의’)을 보여주며 대중성과 작품성을 모두 가져갔다. 그리고 현재까지 소설을 영화화 하는 문예영화의 주요한 ‘기표’와 동시에 ‘기의’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시간이 많이 흘렀고 사회가 변했다고 하지만 ‘삶은 달걀’은 여전히 안 되는 건지 이어지는 질문을 뒤로 하고 글을 마친다.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1961, 103분, 드라마, HD
감독 : 신상옥
출연 : 최은희, 전영선, 김진규
줄거리 : 할머니(한은진 분), 어머니(최은희 분)와 함께 사는 옥희(전영선 분)네 집에 죽은 아버지의 친구였다는 화가 아저씨(김진규 분)가 사랑방에 하숙을 하게 된다. 아저씨와 옥희는 금방 친해져서 뒷동산에 놀러간다. 돌아오는 길에 유치원의 친구가 “아버지하고 어디갔다 오는구나”하고 말한다. 그 말을 듣고 옥희는 아저씨에게 아버지가 되어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니까 아저씨는 얼굴을 붉힌다.
옥희는 어머니를 기쁘게 하려고 유치원에서 꽃을 어머니에게 가져다 주면서 얼떨결에 사랑방 아저씨가 주라고 했다며 거짓말을 하게된다. 그러는 사이에 두 어른은 서로 그리워하는 사이가 된다. 그러나 이 사이에 시어머니의 무서운 눈초리가 끼어들어 두 사람의 사이를 갈라놓고야 만다.어느날 사랑방 아저씨는 예쁜 인형을 옥희에게 꺼내주고서 멀리 떠나 버린다. 어머니는 옥희의 손을 잡고 뒷동산으로 올라가 아저씨가 타고 있을 열차가 멀리 사라지는 것을 우두커니 바라본다. 그리고 옥희가 거짓말로 아저씨가 주었다는 꽃도 함께 던져 버린다. 어린 옥희는 어머니의 슬픈 듯한 모습을 지긋이 바라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