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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님 Mar 28. 2024

쉼의 시간 동안 나를 알아가다

타인과의 거리

휴직기간이 6개월쯤 들어서면서 나는 조금씩 나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남편도 아이들도 아침에 각자 회사와 학교로 집을 나서고 저녁에 들어오니 하루 종일 혼자 나만의 시간을 원 없이 즐기면서 나는 그 많은 시간에 운동하고 책 읽고 집을 환기하고 다이어리를 쓴다. 특별히 어디를 가려고 하지도 않고 사람도 잘 안 만나고 혼자 그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렇게 심플한 내가 참 좋다. 혼자 잘 놀고 외롭지 않은 내가 참 좋다. 이제는 너무 다른 사람에게만 맞추려고 하지 않고 내 의견을 말하기 시작한 내가 좋아졌다. 타인이나 가족보다 나를 먼저 챙기기 시작하면서 내가 점점 좋아졌다. 이제는 절대 나를 잃어가면서까지 타인을 위해서 희생하지 말아야지 다짐했다.


 남편이 쉬는 날 영화를 보러 가자고 제안했을 때 평소에 나라면 그냥 수락했을 테지만 이제는 나 자신에게 한번 더 물어본다 정말 가고 싶은지.. 그런데 나는 영화 보러 가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막상 가서 보고 나면 잘 봤다며 괜찮긴 했지만 가기 전 망설임의 이유는 내가 굳이 영화 보러 영화관에 가는 걸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영화관 자체가 소리도 너무 크고 기가 빨리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시간보다 조용히 도서관이나 카페에 앉아서 음악을 들으며 책을 보거나 다이어리를 쓰는 게 훨씬 좋다. 이런 나의 성향을 그동안은 모르고 단순히 잔인하고 폭력적인 영화를 싫어하는 줄만 알았는데 이번에 쉬면서 이 시간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남편의 영화 보자는 제안을 잘 거절하고 혼자의 시간을 즐기러 카페에 간다.


 은퇴하고 시간이 많은 친정아빠와 늘 몸과 마음이 아픈 친정엄마가 안쓰러워서 자주 만나고 커피도 사드리고 했지만 만날 때마다 듣게 되는 부정적인 말들.. 평생 후회 속에 사는 두 사람은 입만 열면 여기가 아프네 저기가 아프네 너무 늙었네 돈이 없네.. 등의 신세한탄을 쉴 틈 없이 쏟아낸다. 그런 한탄을 듣고 있자면 저 밑에 있는 우울함이 다시 불쑥 올라와서 나는 집에 와서 한없이 우울한 감정에 빠져버렸다.

전화는 어찌나 자주 하는지 노이로제가 걸릴 정도였다. 그동안은 안쓰러운 마음에 참고 그들을 받아주었지만 나가 우울함이 생기고 아이들에게 히스테리를 부리는 내 자신을 마주하니 더는 끌려다닐 수 없었다. 나와 내 가정을 지켜야 했기에 이제는 어느 정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게 되었다. 그 거리 두는 과정도 물론 순탄하지는 않았지만 더는 참고 회피하지 않고 어느 정도 직면하면서 거리 두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시부모님과의 식사 자리도 거절하면 혹시 서운해하실까 하는 두려운 마음에 시간을 포기하면서 수락했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줄이고 거리를 유지하게 되었다.


 물론 매번 거절하지는 않지만 매번 수락하지도 않게 되었다. 나를 먼저 챙기기 시작하면서 나를 소중하게 생각하게 되니 정말 내가 원하는 게 맞는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나를 제외한 사람은 모두 타인이다. 가족도 타인이고 나는 오로지 '나'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나는 휴직기간 동안 혼자의 시간을 보내면서 깨달았다. 그렇게 어떤 역할과 숙제하듯이 지냈던 날들을 조금 내려놓으니 나의 삶이 타인과 나 사이에 밸런스를 유지하게 되었고 나는 조금씩 회복하며 지금 시간이 만족스럽게 느껴졌다. 오늘 하루가 만족스럽고 내일이 기대가 되는 날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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