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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곰씨 오만가치 Oct 08. 2023

불안한 마음

이제 좀 쓸까?

  아는 길이었다. 분명.. 쭉 뻗은 길을 지나면 시골길이 나타나고 어느 정도 지나면 다시 고속도로와 만나는 그 길이었다. 나는 누군지 모를 사람들을 태우고 호기롭게 길을 떠났다. 그리고 만난 시골길은 시골길이라기보다 장애물에 가까웠다. 깊은 바다 옆을 한 명씩 지나갈 수밖에 없는 좁은 길이었다. 처음 보는 길인데 나는 알고 있었다. 어느 정도 지난 뒤 길이 없는 쪽으로 나는 풀을 뜯으며 나아갔다. 여기가 당연히 맞다는 듯이..


  결국 일행들은 무사히 어느 산장에 도착했다. 그리고 다음 날 다시 길을 떠날 준비를 해야 했다. 아니, 임무를 완수한 사람들끼리의 헤어짐이랄까. 그런 분위기였다. 그 속에 그녀가 있었다. 한참을 좋아했던 가수가 있었다. JPOP의 3대 여왕으로 불렸던 하마사키 아유미. '하고 싶은 말 없어?'라고 묻는 그녀의 질문에 대학원 시절 내한을 준비하던 때가 생각났는지, 그때 만나면 꼭 하고 싶었던 말이 기억났는지 '타키시메떼 쿠다사이(안아줘요)'라고 했고 그녀는 나를 꼭 안아주고 떠났다.


  20살 때부터 시작했으니 20년도 훌쩍 넘었다. 사회로 나오고 나서부터는 앨범내면 의리로 사는 수준이 되었고 최근에야 인스타그램 팔로워 하며 가끔 소식을 볼 뿐이다. 근데 왜 갑자기 꿈에 나왔을까? 그게 참 이상했다.


  표절과 립싱크가 한국 가요계를 뒤숭숭하게 하던 시절 우연하게 듣게 된 노래로부터 인연은 시작되었다. 그리고 전곡 작사를 한다는 그녀가 좋았다. 노래는 테크닉이 부족했을까. 자주 쉬기도 했고 듣고 라이브는 불안했다. 그래도 좋았다. 그땐 자기 메시지를 가졌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좋았다. (당시에 나는 서태지나, 이승환, 박정현을 좋아했었다. 문세 아저씨도..)


'시작하지 않으면 시작되지 않는 거야'


라는 좌우명을 만들어줬다. 'Fly High'라는 노랫말 중에 있는 문장인데.. 군대와 대학원을 고민하던 나에게 영감을 줬다. 그 뒤로도 줄곧 좌우명이 되어 있다.


  그러고 보면 이 누님은 내가 꽤나 기로에 서 있을 때마다 꿈에 나오곤 했다. 대학원 진학할 때, 전문연구요원과 기계연구원 사이를 고민할 때, 매너리즘이 왔을 때 그리고 어젯밤.


  어떻게 보면 퇴준생이 되었다. 임원을 보고 달리는 것보다 인생 2막을 준비하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이런 과도기는 늘 불안하다. 준비는 더딘데 잃어가는 건 빠른 느낌이랄까. 어차피 삶은 선택과 집중이니까 하나를 얻으려면 하나를 놓아줘야 하는 게 그게 참 어렵다.


  '글먹'을 꿈 꾸며 본격적으로 읽기를 시작한 지도 벌써 2년이 훌쩍 지나버렸다. 일 년 정도 읽으면 글을 쓸 수 있을 줄 알았다. (대박은 아니라도 글을 본격적으로 쓸 줄 알았다) 물론 쓰곤 있지만 그리고 스토리도 잡혀가고 있지만 '각 잡고 쓴다'라는 것은 할 수 없었다. 여전히 부족하고 여전히 읽어야 할 책이 많았고 무엇보다 읽는 게 너무 익숙해져 버렸다.


  글 쓰는 것에 가장 중요한 것이 '평범한 자기 글과 마주하기'라고 했다. 읽을수록 주옥같은 말들이 머릿속에 은연중에 자리 잡는다. 그냥 막 쓰면 되는데 그게 잘 안된다. 더 좋은 것이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리고 계속 읽지 않으면 잘못될 것 같은 불안감도 함께 덮친다. (이건 약간 공돌이적 마인드다. 기술은 늘 진보하니까. 인문학도 진보할 거라 생각한다)


  하나의 테마가 없이 마구다지로 읽다 보니 스펙트럼은 넓어지는데 깊이가 없다. 그래서 또 읽는다. 읽다 보면 그렇게 또 하루가 끝난다. 그러면서 또 여러 일을 벌인다. 원래 일을 잘 벌리는 성격이지만 일을 벌이면 글 쓸 시간이 사라진다는 걸 알면서도 굳이 또 벌린다. 불안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혼자서 다할 수 없는데 다 하려고 하는 마음이 있다. 그런 마음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러다가 또 문득 전문서적을 열어 본다. 기술은 미친 듯이 발전하고 있고 나는 여전히 모르는 것투성이다. 내가 아는 것 안에 웅크리고 있으면 마음이라도 편하겠지만 우물에서 머리를 빼꼼 내민 나는 광활한 세계에 주눅 들어 있다. 마치 세렝게티 초원 한 중간에 있는 구덩이에 있는 기분이다.


  SF 소설을 적다가 웹소설에 기웃거린다. 그러다가 역시 나는 정리 쪽이 좋은 가봐 하면서 벽돌책 쉽게 읽기 같은 책을 적을까 생각을 한다. 인스타그램을 하고 유튜브에 기웃거린다. 해야 하고 배워야 할 것들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하나씩 해나가다 보면 다 하게 되는 것도 알지만 역시 가는 길은 순조롭지 못하다. 인생이 늘 굴곡진 거라는 걸 알고 있지만 아는 것과 느끼는 것의 차는 크다.


  그래도 어쩔 수 있나. 회사에선 열심히 회사 일하고 퇴근하면 또 열심히 읽고 쓰고 하는 거지.


'살아가는 것과 같은 속도로

 안달하지 않고 게으름 피우지 않고

 끊임없이 글을 써 나가야 합니다'


  다자이 오사무의 이 말이 그저 치열하게 글을 써라는 것이 아니란 걸 안다. 글이 삶이 되려면 얼마큼의 행동이 겹쳐져야 할까. 책을 읽다가 무심코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몇 자 끄적여 본다. 쓰다 보면 언젠가 책으로 엮을 날이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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