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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곰씨 오만가치 Jul 04. 2024

엉뚱함과 말의 관성

대중적이지 않은 예시였을까

  어릴 때부터 약간 똥고집 같은 게 있었다. 결혼 지금도 가끔 그런 것 때문에 난감할 때가 있다고 아내는 나에게 얘기해 준다. 그렇다. 관종인지 엉뚱함인지 모를 노릇이지만 스스로는 꽤나 진지함이 묻어 있다. 묘한 곳에서 이상한 의미를 찾기도 하고 생각과 다른 말을 뱉기도 한다.


  아직도 기억나는 장면이 있다. 트라우마라는 것을 믿는 편은 아니지만 말이라는 것을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계기다(그래서 나는 글을 더 좋아한다). 입학 후 신입생 소개 자리였다. 원래도 어디 나가 말하는 것을 어려웠던 나에게 강의실을 가득 채운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건 쉬운 게 아니었다. 머리가 어떻게 되었었나 보다.


  긴 말을 이어나가다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지낼 수 있도록 하겠다"로 끝났어야 했는데 나도 모르게 "그렇기 때문에"라는 말이 나와 버렸고 그 접속사를 틀리고 싶지 않았는지 "저를 건드리지 않아 줬으면 좋겠다"로 마무리되었다. 강의실은 갑분싸가 되었고 나는 속으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쟤 뭐지 하는 분위기 속에 강의실 구석에 앉았는데.. 나중에 뒷풀이 자리에서 동기들한테 한 소리 들었지만 그거 내가 말이 잘못 나와서 그런 거라고 사과했다. 그리고 나의 대학 생활은 무난히 마무리되었다. 어쩌면 군대를 가지 않은 나였기에(전문연구요원), 동기들 보단 선배들과 지냈고 그마저도 동아리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서 무탈했을 수도 있다.


  나는 탁구를 좋아해서 탁구 동아리 생활을 했다. 그리고 사회에 나와서도 어떤 계기로 탁구 카페 활동을 열심히 했었는데 운영자의 눈에 띄었는지 특별한 회원이 되었다. 그리고 운영진 개편과 함께 게시판지기를 맡게 되었다. 하지만 게시판지기 인사말이 참 엉뚱했다. 누구는 웃었고 누구는 정색했다. 나는 무척이나 진지했는데 말이다.


킨키키즈 같은데(좌) , HEYHEYHEY(우)

 

  나는 BOA가 일본에서 활동할 때, 일본 예능 영상을 자주 찾아봤다. 지금처럼 유튜브 같은 것이 있던 시절이 아니라 <일본TV>라는 카페에서 찾아보는 정도였다. 그러는 도중에 토크쇼에 남자 AV 배우들이 나와 얘기를 나누는 것도 있었다(유명했던 토크쇼였던 거 같은데..). 남자 AV 배우라는 사람들의 얘기에 호기심이 생겨서 끝까지 본 것 같다. 


  그중에 인상 깊었던 부분이 배우로서 적합한 사람은 오히려 조루인 사람일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평소에 오래 하는 사람들은 촬영 현장에 들어가면 분위기와 긴장감 때문에 감독의 사인이 나와도 좀처럼 끝낼(?) 수 없는 경우가 생긴다는 것이다. 다른 얘기보다 그 말이 왜 뇌리에 남아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그 의미를 '적합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 종종 훌륭히 일을 해낸다'라고 해석했다. 


  어디에든 의미를 찾아낸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나는 그 예가 적절하다고 생각하고 게시판지기 인사말에 적었던 것이다. 나는 운영진에 적합해 사람은 아닌 것 같지만 누구보다 잘 해낼 수 있을지 모르니 잘 부탁한다고 썼다. 그랬더니 어르신들께서 탁구 게시판에 AV배우 얘기 썼다고 노발대발하셨다.


  지금 생각하면 무슨 깡이었는지 싶지만 당시에는 꽤나 멋지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묘한 곳에서 좋은 의미를 찾는 것은 분명 장점이고 자기 검열이 없었던 시절이 좋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이제는 잘 다듬어서 예쁘게 만들어 내는 법을 익혀야 할 것 같다. 


  철학은 어디에나 있는데 표현은 꼭 공식이 있는 것 같아 아쉽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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