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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래이스 Sep 08. 2024

24. 이민을 향한 착각

부제 : 진짜 이민하는 이유

얼마 전, 인터넷에서 '미국 물가가 이렇다던데 이민에 필요한 비용까지 다 고려하면 현재 한국에서 받는 연봉의 두 배는 벌 수 있어야 이민이 가능하다 혹은 그래야 이민을 갈 것이다.'는 글을 봤다. 미안하지만 애초에 이 계산은 틀렸다. 이민, 특히 서양 국가로의 이주나 이민은 돈을 더 벌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부자가 되고 싶다면 한국에 남아라. 의사소통 편한 모국어에 어릴 때부터 쌓은 터전과 인맥, 사회와 시장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가지고도 부자가 못 됐는데 외국에서 사업해서 부자가 된다? 혹은 세금과 물가가 어마어마한 이곳에서 연봉 두 배를 받아 편하게 살겠다? 


흔히들 '외국에서의 삶'의 가장 큰 장점으로 '여유'를 꼽는다. 여기서 한국에서만 산 사람과 한국 밖에서 산 사람의 차이가 드러난다. 한국에서만 산 사람들은 여유를 경제적인 여유라고만 생각한다. 그래서 막연히 외국 나가면 연봉도 많이 받고, 마당 있는 집에서, 큰 차 타고 다니며 여유롭게 사는 이민 생활을 상상한다. 하지만 실제로 외국에서 살아 본 적이 있는 사람들은 이 '여유'의 진정한 의미를 안다. 그것은 경제적인 여유가 아니라 심리적인 여유다. 


오히려 이곳에서 더 아등바등 사는 경우가 많다. 투잡은 기본이고,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 내 나라에서 교육받고 이뤄놓은 경력을 모두 버리고 지구 반대편에서 새 출발을 하는 것이 쉬울 리가 없다. 이민자 중에는 게으른 사람이 없다. 다들 정말 열심히 산다. 물론 애초에 돈이 엄청 많아서 돈 쓰러 온 사람들은 다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대다수는 아니다. 


그럼 이쯤에서 드는 생각. 한국에서보다 더 열심히, 더 바쁘게 살아야 한다면서 여유가 있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일단 이곳의 사회 분위기는 "아. 너는 그래? 나는 그런데." 같은 느낌이다. 우리나라처럼 "내 생각과 경험이 옳고 넌 틀렸어!", "남들 다 이렇게 하는데 너는 왜 달라? 넌 틀렸어."라고 말하는 사회가 아니다. 어린 나이가 아닌데 직장생활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을 부끄러워하거나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일부러 파트타임이나 시즌제 일을 하는 사람들도 많다. 애초에 상대의 나이에 집착하지도 않기 때문에 "넌 그 나이에 왜 그러고 사냐" 같은 시선을 느낄 필요도 없다. 난 제발 한국에서 '처음 만난 자리에서 다짜고짜 상대방에게 나이 묻지 않기' 운동을 했으면 좋겠다. 호칭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알아야 해서 나이를 묻는다고? 그냥 00 씨, 00님으로 부르고 무조건 존대해라. 난 처음 보는 사람의 언니나 누나이고 싶지 않고, 처음 보는 사람에게 하대 당하고 싶지도 않다. 


다시 주제로 돌아가서,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미국으로 온 이민자들 중에 처음부터 돈을 왕창 들고 와서 경제적으로 여유 있게 산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건 진정한 의미의 '아메리칸드림'이 아니다. 내가 이곳에서 만난 한국인들 중 꽤 많은 사람들이 이민의 이유로 '자녀 교육'을 꼽았다. 물론 난 비혼주의자 혹은 딩크라 그건 잘 모르겠다. 내가 이민 한 이유는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였다. 내 머릿속에 꽉 차 있는 부정적인 생각을 털어내고 다 비우고 새로 담기 위해 언어도 다르고 아는 사람 한 명도 없는 지구 반대편으로 온 것이다. 이곳에 온 지 10년이 됐지만 아직도 이곳 사람들의 자존감, 남을 대하는 배려, 도전하는 자세 등을 많이 배우고 있다. 


누가 그랬지. 인생에 성공과 실패가 있는 게 아니라고. 인생엔 성공과 성공을 향한 과정만 있다고. 그 과정을 눈치 보지 않고, 부담 느끼지 않고, 질책하지 않고, 즐길 수 있는 곳. 한국도 점점 개인의 취향과 다름을 인정하는 분위기인 만큼 빨리 다양성을 인정하고 남에게 덜 간섭하며 쓸데없는 충고를 안 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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