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한국에 가고 싶어졌다. 엄마와 아빠가 보고 싶었고, 오래된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싶었고, 명절이라고 집안 식구들 다 모여 맛있는 저녁에 술을 마시고 싶었다. 이 각박한 세상에서 매일 출근하며 열심히 사회생활 하는 어린 사촌동생들을 만나 밥 한 끼 사주며 응원해주고 싶었고, 오랜 시간 후에 마침내 남자친구가 생긴 친구와 만나 이 나이에 미혼 여성으로서 느끼는 감정과 비혼, 노산에 대해 떠들고 싶었고, 나처럼 드라마 작가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들과 만나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고민, 걱정, 근심을 반으로 나누고 싶었다. 그 끝에 내가 실제로 할 수 있는 거라곤 '내년 이맘때 한국에 가겠다'라고 주변에 다짜고짜 메시지를 보내는 것뿐이었다.
혹 누군가 이 글을 읽으며 '그럼 한국 오던가'라는 생각이 들었을까. 당장 이곳에서 벌려 놓은(?) 일이 있기 때문에 쉽지 않다. 아니, 저에게도 인생 계획이라는 게 있을 거 아닙니까! 인터넷에 해외에 사는 한국인들이 쓴 글을 읽어보니 나보다 상황이 심각하더라. 몇 년 만에 한국에 가서 엄마를 봤는데 엄마가 살짝 치매가 온 것 같다고 더 심해지면 어떻게 해야 하냐는 글이었는데 대부분의 댓글이 '어쩔 수 없지. 요양 병원 보내드려야지.', '네가 한국에 가서 엄마를 돌봐드릴 수는 없으니 좋은 요양병원을 찾아봐야지.' 등등의 의견. 순간 나는 '해외에서 얼마나 부귀영화를 누리고 산다고 나를 낳아준 엄마가 아픈데 옆에서 병간호도 못 하는 건가' 분노했지만 사실 그들은 해외에서 외국인과 결혼해 자식을 낳고 키우니 본인의 가족이 그곳에 있는 것이다. 본인도 엄마인 입장에서 배우자와 자식을 내버려두고 한국에 가서 엄마를 돌보긴 쉽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치매는 몇 달 병간호로 끝날 게 아니니까.
3년 동안 한국에서 생활하고 갑자기 캐나다로 돌아오겠다 결정했을 때 사촌동생은 나에게 '언닌 참 불효녀야'라고 말했다. 부모님에게 얼굴을 자주 못 보여드리는 자식은 불효녀일까. 한국 갈 때마다 부모님을 뵈면 그 사이 더 늙어 있는 모습에 억장이 무너져 내린다. 컴퓨터도 스마트폰도 잘 적응하셨는데 이제 은퇴할 나이가 되니 키오스크는 영 어렵나 보더라. 사실 키오스크는 가게마다 기계가 다르고 시스템이 달라서 나도 그 앞에서 엄청 버벅댄다. 궁금한 게 있을 때마다 시차가 13시간이나 차이나는 곳에 사는 딸에게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니 부모님은 갑자기 자식 없는 노부부가 되었다.
그래서 내 마음은 한국에 있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나의 엄마와 아빠가 사는 곳. 말하지 않아도 내 맘을 알아주는 사람들이 있는 곳. 먹기 위해 사는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이 많은 곳. 그래서 언제든 상황이 되면 한국에 돌아갈 수 있게 발 한쪽을 빼지 않고 있는 느낌이다. 고향을 향한 사무치는 그리움은 해외에 나와 살아본 사람이 아니라면 절대 모를 것이다. 자발적으로 나와서 사는 나도 이 정도인데 일제강점기에 강제적으로 한국에서 살지 못한 사람들은 얼마나 한이 됐을까. 외국에 나오면 더 애국자가 된다는 말을 혹시 들어본 적이 있는가. 외국에서 살면 한국이란 나라 그 자체가 바로 내 부모처럼 느껴지게 되는 것 같다. (하지만 여기서 한국인 만나면 피하고 보는 아이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