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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래이스 Sep 12. 2024

27. 꿈을 향한 전혀 다른 접근법

한국 속담에 '사람은 한양으로 보내고 말은 제주로 보내라'라는 말이 있다. 사람에게 한양이 큰 물이고, 말에겐 제주가 큰 물이다. 우물 안 개구리가 되지 말고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 큰 물에서 놀라는 것이다. 나에겐 이곳 캐나다가 큰 물이 되었다. 물론 다양한 배경과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한데 모여 어울려 살면서 배우는 것도 많았지만 내가 엄청난 자극과 동기부여를 받은 것은 꿈과 직업에 대한 나와는 전혀 다른 마음가짐이었다. 


나는 두 권의 출판된 책을 썼고, 드라마 보조작가로 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나 자신을 언제나 작가 '지망생'라고 표현했다. 우리나라엔 수많은 작가와 배우 '지망생'들이 있다. 계속 노력을 하다가 데뷔를 하게 됐지만 크게 알려지지 않으면 '무명'이 된다. 그리고 우리가 생각하는 '작가', '배우', '감독'등등의 직업 타이틀을 가지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한다. 그 극소수 밑으로 그들처럼 되려는 수많은 조무래기들이 있다. 만약 본인이 영어를 좀 한다 하면 '지망생'을 영어 단어로 번역해 봐라. 학생, 수련생, 연습생 등등 말고 지망생이란 단어는 없다. 굳이 번역기를 돌리면 'wannabe'가 나오긴 하지만 아무도 실제로 이 단어를 쓰는 사람은 없다. 그럼 이번엔 '무명'을 번역해 봐라. 무명은 익명으로 번역될 것이다. 하지만 무명과 익명은 전혀 다른 뜻이다. 


토론토 국제 영화제 행사장과 파티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은 모두 Actor, Writer, Director로 자기 자신을 소개했다. 배우? 열심히 오디션 보러 다니는 애들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배우 지망생이다. 이 물가 비싼 도시에서 렌트도 내고 생활비도 쓰려면 당연히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그들에게 주된 수입원이 무엇인지 묻지 않는다. 지금까지 광고촬영, 단역 출연 몇 개가 전부라고 해도 자기 자신을 당당하게 배우라고 소개한다. 작가도 마찬가지다. 내가 글을 쓰는 일로 직장인만큼 돈을 벌지 않았다 할지라도 매일 글을 쓰면 작가다. Author(저자)는 아닐지라도 Writer(작가)인 것이다. 그 누구도 '네가 무슨 작가야!'라고 자격 운운을 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한국에서 소설 작가가 되려면 출판사 투고나 웹소설이면 플랫폼 연재밖에 없고 영화, 드라마 같은 대본을 쓰고 싶으면 공모전이나 업계에서 오래 일해 인맥을 쌓은 후 제작사와 계약을 맺는 것, 이 두 가지 경우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지구 반대편, 한국에서 먼 곳에서 살고 있으니 업계에서 일해서 제작사를 찾는 것은 불가능이다. 그래서 나에게 유일한 방법은 공모전 당선뿐이었다. 하지만 이곳 친구들은 나에게 "그렇게만 생각하지 말고 그냥 네가 하나 찍어. 그렇게 시작하는 거야."라고 말했다. 좋은 카메라가 있는 Filmmaker 친구가 있고, 연기를 하는 친구들이 있다. 생각해 보니 룸메이트가 CGI 회사에서 일하며 마블 영화와 존웍을 작업한 기술자다. 유럽과 북미에는 이런 식으로 짧게 찍은 Short Film을 여기저기 출품하고, 인터넷에 올리며 자기 자신을 알리는 경우가 많다. 누군가는 내게 '나는 내가 먼저 연락한 적은 없고, 내 작품을 보고 항상 먼저 연락이 왔어.'라고 말했다. 


나는 내 꿈을 향한 전혀 다른 접근법을 여기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 배웠고, 이는 내게 큰 동기부여와 자극이 됐다. 나는 비로소 '작가가 되고 싶으면서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 사는 아이러니'를 깨고 이곳에서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아니, 오직 이곳에서만 할 수 있는 것들. 어떤 게 잘 될지 모르니 그때까진 그냥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해보고 싶기도 하다. 나는 지구 반대편인 이곳에서 자신감과 자존감을 얻고, 동기부여와 자극을 받고, 꿈을 향해 나아가는 힘을 충전했다. 비록 당장이라도 한국에 돌아가서 부모님 얼굴을 보고 매운 주꾸미 볶음에 소맥을 마시며 수다 떨다가 나의 침대에서 오래된 인형들을 끌어안고 자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잠시 미뤄 두기로 한다. 나에게 있어 더 큰 물인 이곳에 조금 더 헤엄 쳐 보고 가겠으니 거기 그대로 기다리고 계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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