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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드의숲 Mar 28. 2019

호텔 인턴

90년 대 생들의 공포의 인턴 체험기  

이 이야기는 몇 년 전 호텔에서 인턴으로 근무했던 학생들의 실제 경험담을 소설 형식을 빌려 각색하여 쓰였음을 미리 알립니다.


주연은 담배를 거칠게 꼬나물고는 성당 한쪽 벽에 기대어 섰다.

"아 썅 졸라 힘드네! 2시간을 넘게 계속 서 있었어!"

그녀는 뭔가 억울하다는 생각에 혀가 돌아가는 대로 지껄여댔다.

"다리 겁나 아파 진짜!"

옆에 있던 정연은 유니폼 치마를 엉덩이부터 쓰다듬으며 쭈그려 앉고는 투덜거렸다.

"아니 왜 이렇게 바쁜 거야. 그래도 1시간에 한 번은 좀 쉬게 해줘야 하는 거 아냐?

소정선배도 불쌍하다. 막내라고 계속 데스크에 서서 스탠바이하고 있고."

"몰라 김대리 말로는 자기들도 신입 때 그랬데."  

"그럼 우린?"

"우린 인턴인데 우리라도 쉬게 해 줘야지."

정연은 파우치를 뒤적거려 레종 프렌치를 꺼내 들고는 담뱃갑 머리 쪽을 툭툭 손바닥으로 때려가며 대꾸했다.


프런트 오피스 안과 밖은 업무형태가 조금 다르다.

보통 오피스 안에서는 한 달 예약 상황까지 살펴가며 호텔 전 객실을 컨트롤하고 여러 종류의 페이퍼 워크를 처리한다. 그래서 전반적인 호텔의 객실 상황을 읽을 수 있는 선임들이 오피스 안에 앉아서 업무를 보는 경우가 많다. 반면 오피스 밖 데스크는 고객 접점 지점이다. 주 업무인 체크인 체크아웃에서부터 고객들의 온갖 문의나 요청사항, 가벼운 컴플레인은 이곳에서 다 처리가 된다. 호텔에서 그날그날 일어나는 이벤트나 행사 정보 등 모든 사항들을 전부 숙지해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주연은 꼬나문 담배에 불을 붙이고는 달큼하게 빨아들였다. 담배는 어둠 속에서 빨갛게 빛을 발하고는 타들어가며 치익 소리를 냈다.


"뭔 놈의 호텔에 사람이 이렇게 많이 와. 우리나라 사람들은 도대체가 이해가 안가 넓고 편한 자기네 집 놔두고 왜 비싼 돈 들여 가며 여기서 자냐."


"그러게. 객실도 좁아터진 게 별로 좋지도 않더구먼."


"참 아까 걔네 봤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이 예약했다고 체크인하러 온 거. 걔네 미성년자 같던데" 정연은 가느다란 실눈을 뜨며 말했다. 


"아아! 아까 그 커플? " 주연은 맞장구를 쳤다.


"그래 보이긴 하던데. 소정선배가 체크인했으니 뭐 신분증 확인했겠지. 근데 그 계집애 몸매는 엄청 좋던데!"

주연은 자신의 가슴을 살짝 움켜쥐며 초라한 표정을 지었다. 


"야 장난해! 그거 뽕이야. 딱 봐도 알겠더구먼. 대한민국 사람 체형으로는 그 몸매에 그 가슴이 절대 나올 수 없어. 그런 가슴은 우리에겐 파란 눈과 같은 거야."


"미친년 부러우니까 크흐흐"


"야! 가짜가 뭐가 부러워! "


그들은 그렇게 한 껏 수다를 털었다.


주연과 정연은 스위스 호텔학교 동기였다. 방학을 맞아 귀국하여 현재 호텔에 인턴사원으로 근무 중이다. 경력도 경력이지만 인턴 근무는 방학숙제 같은 것이다. 스위스 호텔학교들은 전 세계 호텔들과 연계해 인턴 프로그램을 기획하여 방학 때마다 학생들을 호텔로 내보낸다. 물론 우리나라에 '열정 페이'가 이슈화 된 후부터는 호텔들이 예전만큼 인턴들을 잘 채용하진 않지만 몇 해전까지만 해도 방학 때만 되면 서울 대부분의 호텔들은 스위스에서 공부한 인턴들로 붐비곤 했다.


주연과 정연은 공통점이 많았다. 90년생에 같은 학교 동기에 아버지가 고위급 공무원이고 술과 담배를 하고 그리고 몸에 타투가 있었다. 스무 살이 되던 해부터 정연이는 자신의 발목에 나비를 수놓았고 주연이는 두 견갑골 사이에 예쁜 십자가를 새겨 넣고 다녔다.


이슬비는 그쳤지만 저녁 하늘은 어두웠다. 마치 염탐이라도 하듯 멀찌감치 떨어져 담배를 피우며 둘의 모습을 지켜보던 정 과장이 그들 앞으로 서서히 다가서기 시작했다. 독한 담배연기를 하늘로 길게 내뿜던 주연은 정 과장이 다가오는 걸 보고 쥐고 있던 담배를 손가락으로 멀리 튕겨냈다. 담뱃불이 바닥을 몇 번 튀며 물수제비를 뜨듯 불수제비를 만들었다. 정연도 슬그머니 손을 뒤로 해 담배를 바닥으로 떨어뜨려 발로 비벼 껐다. 정 과장은 주연이가 던진 담배꽁초를 향해 방향을 틀어 걸어갔다. 그리곤 아무 말 없이 꽁초를 주웠다. 그는 선명히 새겨진 빨간 립스틱 자국을 보고 하얀 이를 드러내며 미소를 짓고는 말했다.


"아이고 이 장초를 아깝게시리...여기다 담배꽁초를 버리면 안 돼요 주연 씨. "


정 과장은 벌어진 잇새를 내보이며 능글맞게 웃고는 주연이가 버린 장초를 두 눈 모아 바라보며 얘기했다. 둘은 눈을 흘기며 불편한 기색을 살짝 드러냈지만 곧장 표정을 숨겼다. 이를 눈치챈 정 과장은 나긋한 말씨로 그들을 안심시키려 했다.


"난 담배 피우는 여자가 참 매력적이더라. 사실 내 와이프도 담배를 피우거든."


"주연 씨하고 정연씨 여기 온 지 얼마나 됐지?"


"저희 3주 다 돼가요."


주연이 대답했다.


"아 벌서 그렇게 됐구나. 그동안 바빠서 얘기 나눌 틈도 없었네"


"나 의식하지 말고 담배 피우며 얘기해요. 담배 뭐 피워?"


"아...네 저희 둘 다 레종 프렌치요."


"아 박하맛! 나도 가끔 그거 피우는데. 나 신경 쓰지 말고 담배 피우며 얘기해요"


정 과장의 종용에 둘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담배는 단절된 두 섬을 잇는 매개체였다. 교류가 없던 두 섬에 정과정이 먼저 배를 띄었고 건너편 섬에 도달해 다리 놓기를 제안했다. 그리고 정 과장의 다리 놓기는 성공적이었다.


"저는 과장님이 꼰대인 줄 알았는데." 주연이 말했다.


"나 꼰대 아니야 얘네가 날 뭘로 보고!"


정 과장은 정색했다. 그리고는 실실 웃으며 '미'톤으로 말을 이어갔다.


"요즘 같은 시대에 여자가 담배 피우는 게 흉인가? 눈치 볼 것 없어! 당당하게 펴! 내가 와이프를 선택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담배 때문이었어. 남들 시선에 아랑곳 않고 카페에 앉아 담배 피우던 그 모습에 반했지. 사실 대한민국은 지독히도 타인 지향적인 사회야. 남들 시선을 너무 의식해. 그런데 당시 와이프는 그런 건 개나 줘버리라는 듯 담배에 불을 붙이고는 연기를 하늘로 훅하고 내뿜는데, 답답했던 내 마음이 다 뚫리는 기분이 들었다니까. 그게 너무 멋있었어." 정 과장은 당시를 그리워하며 아쉬운 마음을 드러냈다.


"어느 틈에 주연이와 정연이도 입에 담배를 물고 있었다. 과장님 멋지다. 저도 과장님과 같은 생각을 가진 남잘 만나보고 싶네요!"


"저도요!"


"나 같은 사람이 흔한가? "


셋은 깔깔대며 웃었다.



"그런데 왜 호텔을 전공했어? 호텔리어가 꿈이야?"


정 과장이 주연과 정연을 보고 물었다.


주연이 입에서 굴뚝같은 담배연기를 뿜어내며 말했다.


"전 호텔에서 일할 줄 꿈에도 몰랐어요. "


"그럼 어떻게 여기까지 왔어?"


"엄마 아빠가 절 호텔학교로 보냈어요. 공부 못하는 자식 어설픈 곳에서 대학생활시킬 바에야 유학이라도 보내버리는 게 낫다고 판단하신 거죠. 자신들 체면도 걸려있는 문제고."


주연은 무거운 짐을 내려놓듯 주섬주섬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그래서 절 스위스로 보낸 거예요. 그들에게 유학은 좋은 변명거리이자 기대의 상징 같은 거니깐요. 누가 자식 얘길 꺼내면 '우리 애는 지금 외국에서 유학 중이에요.' 이보다 더 좋은 말막음이 어딨어요. 그리고 이미 제 갈길은 정해져 있어요. 회사도 그렇고 결혼도 그렇고. 공부 마치면 부모님이 정해준 회사에 입사하고 사회생활 조금 하다가 시집가는 거. 저도 모르는 제 남편을 이미 정해놨다니 말 다했죠. 그런데 재밌는 건 우리 엄마 아빠는 저한테 크게 관심을 안 가져요. 제가 뭘 좋아하는지 뭘 싫어하는지도 모르세요... 하루에 한 번 전화가 오는데 그냥 의무감 같은 거란 생각이 들어요. "


 정 과장의 성마른 물음이 주연이의 아픈 가슴을 저미게 했다. 담배연기에 희뿌옇게 가려진 주연이의 눈망울이 가로등 밑에서 슬프게 빛나고 있었다. 그곳은 깊이를 알 수 없는 외로움으로 가득 찬 심연 같았다. 정 과장은 괜한 말을 했나 싶었다. 옆에 있던 정연이도 담배만 뻐끔거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원래 인생은 독고다이야! 세상에 혼자이지 않은 사람이 어딨냐. 요즘엔 나도 집에 있는 게 더 외로워. 직장에서 갖은 모욕 참아가며 죽자살자 일하면 뭐해. 집에 가면 애들은 아빠가 왔는데 아는 체도 안 하고 마누라는 워낙에 자유로운 영혼이라 살림 놓은 지 오래됐고. 다 그렇게 살아. 내 인생인데 내가 감당해야지. 그래도 너는 정해진 길이라도 있잖냐."


정 과장의 말씨에서 애처로움이 묻어났다.


"너희들 들어갈 시간 안됐어?" 정 과장이 스마트폰을 밝히며 시계를 들여다봤다.


"아 네 같이 들어가요 과장님!" 


"평소엔 말 섞을 기회가 별로 없어서 잘 몰랐는데 과장님 참 인간적이시네요." 


정연이가 얘기했다.


"그래? 너희가 몰라서 그러는데 나 원래 굉장히 인간적이야. 재밌고."


셋은 달빛 없는 하늘 아래를 나란히 걸으며 근무지로 향했다.



<다음 회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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