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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체 Nov 06. 2022

엄마와 함께 제마를

20221106 jtbc마라톤

 공교롭게도 7월 27일 엄마 훌쩍 떠나시던 날이 함께 운동하는 모임 ㅇㅍㅋㅇ에서 11월 6일 오늘  있을  jtbc마라톤(다들 제마라 부른다) 대비 대장정인 '100일 프로젝트' 시작하는 날이었다. 둘째 수능 잘 보라고 아빠가 할 수 있는 기도로 제마 풀코스를 잡았다. 기록도 좋지만 42.195 풀을 열심히 달리는 그 모습으로도 나는 적당한 기도와 선물이라고, 잘 받아주라 했다.


 월요일 응급실 후 수요일 퇴원이시니 그날 밤부터 프로그램대로 잘 따라가야지 했다. 동네에서 같은 로컬 크루들이랑 혹은 나 혼자 다섯 번 이상 풀을 달렸고 서브 4도 해봤으니 이번엔 345 정도 생각하고 준비해야지 했다.


 모든 것이 지나가 버렸거나 발에서 멀어졌다.


 혼자 계획도 구도도 없이 마구 10킬로씩 뛰었다. 빠르거나 늦거나 페이스와 시간은 상관없었다. 오직 하나였다. 한시도 떠나지 않는 엄마의 죽음에 대한 실질적 수용의 불가능을 눈물만으로는 안되었고 그럴 방안도 없었다. 그리하여 밤마다 달렸다. 한참을 달리고 잠들고 다시 해가 뜨면 또 달릴 생각만 했다.


 그래도 제마를 신청했다. 목표도 그냥 완주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부담 약간에  덜컥 신청했다. 조바심 없이 차분히 달리기로 했다. 고운 엄마 사진 한 장 호주머니에 넣고 달리기로 했다. 둘째의 염원이 이뤄지기를 함께 묶어 달리기로 했다.

 어제는 날이 찼다. 오늘 새벽은 어제만큼 차갑지 않아 다행이었다. 아내가 상암 월드컵공원에 내려주고 환복하고 비옷을 걸치고 워밍업 러닝을 마치고 8시 안되어 D그룹에서 출발했다. 25킬로까지는 서브 4와 345 페이스를 오가며 달렸다. 상쾌하고 깔끔했다.


 25킬로 신답인지 대공원쯤인지 좌표를 기억하지도 못할 만큼 갑자기 돌연 공포감으로 냅다 질러오는 몸이었다. 다리가 무겁고 쥐가 나려는 신호가 느껴졌다. 발등에 뭉침이 느껴져 서둘러 끈을 느슨하게 풀었다. 30킬로 천호대교를 넘었던가.  언덕들을 지나며 속으로 쥐만 나지 않기를 간절히 빌었다. 엄마와 엄마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빌었다. 작은 소망인데 제발 좀 들어주세요,  이러면서.


 결국 올림픽공원 한체대 지날 때 어느 건물 앞 계단으로 달려가 양말을 벗고 테이핑 한 밴드들을 떼고 신발끈을 다시 묶었다. 32  33  34 지나가는 숫자들을 보며 중도포기 DNF만 하지 말자, 컷오프 5시간 안에만 들어가자고 되뇌었다.


 가락시장에서 학여울역이랑 삼전동으로 빠지는 램프를 들어섰다. 35  36킬로 지점이었던 것 같다. 두 다리  쪽과 장요근이 동시에 쥐가 났다. 서지도 앉지도 걷지도 못한 채 먼지투성이 회색 가드레일에 손자국을 선명하게 찍은 채 한참을 정지했다. 쥐 나는 순간이 가끔 있었지만 이런 끔찍하고 대대적인 근육들의 난동은 처음이었다. 포기도 생각도 뭔가 움직임이 가능해야 할 수 있다. 온전히 그 잠시 동안은 진공의 공포였다, 쪽팔림은 한 푼이나 됐을까. 힘내라고 들려주는 고마운 말들이 약이 되었다. 슬슬 다리가 움직여졌다.


 삼전역 근처 약속 장소에서 아내가 손을 흔들었다. 눈물이 쏟아지려는 걸 주워 담았다. 사진 찍고 있었다. 종합운동장이 보였다. 트랙 한 바퀴가 어찌 그리 멀던지 자못 폼 잡고 들어가 사진 잘 남기려던 의욕도 사라졌다. 이온 음료 한 통을 다 마시고 짐을 찾고 걷는 동안 여러 번 잎새 떨어진 나무를 붙잡았다. 모두들 사진을 찍고 안녕을 하고 근처 처가에서 점심을 먹었다.


 엄마와 주고받은 대화는 기억나는 것들이 '쥐 날까 무서우니 쥐 안 나게 도와줘'와 '엄마, 완주만이라도 했으면 해'였다. 이런 젠장이었다. 고작 그것?  


 나의 애통이, 슬픔이 엄마에게 한없는 짐이 될까 두려웠다. 엄마와 슬픔 아닌 맑고 환한 얘기 하고 싶었다. 고작 날 낳고 키우고 애쓰시던 그날들에 한치도 빗나가지 않은 나의 이기와 처지와 한탄이었다. 애석해도 어쩔 수 없다. 그것이 슬픔과 함께 다시 마알간 평온으로 가는 길이라면 애석해도 어쩔 수 없다. 엄마를 그냥 부르기로 했다. 짜증내고 투덜대던 아들이 어찌 금세 변하겠는가.


 엄마는 오지 못해도 가을은 오고 제마도 11월도 다시 올 테니 나는 엄마에게 징징대고 투덜대고 달리고 달릴 게다. 


 슬픔 오거든 달리는 일 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달리고 달릴 것이다.


   생각해보니 달리면서 기도하기로 한몇 가지 한 개도 못했다. 사실 쥐가 날 것 같은 위태한 시간엔 오직 근육들의 소리에 민감해서인지 아무것도 쉽게 생각해내고 인식하기 어려웠다. 다음엔 노력해보겠다, 지대하게, 진심으로. 기록은 4시간 25분이었다. 엄마는 역시 짱이었다. 엄마 덕분에 끝까지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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