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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콜릿책방지기 Mar 14. 2024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2>

격변의 시대를 지나오면서 굴절되는 기억들

   마르셀은 이제 주변을 다른 눈으로 보기 시작했다. “본다는 것은 정말 불가능할까?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뭔들 주지 못하랴!”(62)하고 말하면서 이제까지와는 다른 태도로 사람과 사물을 보려고 한다. 그동안은 “그들을 본다고 믿을 때에도 나는 그들의 엑스레이를 찍고 있었기 때문”(60)에 이제는 그저 있는 그대로 보려고 한다. 보는 것 이면의 것을 생각해 내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보려는 것은 보다 객관적으로 보려는 시도이다. 


   마르셀에게는 사랑의 고통도 지나갔고 병약한 육체만 남아있다. 이제는 써야 할 때라고 느끼기 시작했고 더 이상 미루지 않기로 하면서 관점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공쿠르의 글을 참고하면서 자신만의 관점을 찾아가는 것은 아마도 마르셀에게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12권은 전작들과는 사뭇 다른 톤의 문장들이다. 감정의 섬세한 곡선을 따라가는 묘사보다는 본 것들을 위주로 서술하고 있다. 


   이제부터 마르셀이 보는 세상은 이전에 경험했던 사교계와 다르다. 좀 더 현실적인 세상이 다가와 있다. 전쟁이 일어났고, 전장에 나간 사람들 뒤로 이전과는 다른 모습의 사교계가 있다. 영원할 것 같았던 성당도 파괴되고 각별한 친구였던 생루도 죽었다. 


   시간은 많은 것을 변화시키기는 하지만, 지금 마르셀이 경험하는 변화는 너무 과격한 것이다. 그동안은 잃어버린 시간 속에서도 아름다운 기억과 멋진 전통들을 찾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모든 것이 달라졌다. 그동안 신분 질서와 전통이 조금씩 변화해 왔다면 몇 년간의 전쟁을 통해서 급격하게 변화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샤를리스를 비롯한 귀족들은 여전한 모습으로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화자는 샤를리스의 숨겨진 모습을 목격하고 적나라하게 드러내듯, 사교계 사람들의 인간적 얼굴을 보여준다. 그런 모습들을 보면 쓸쓸하기도 하고 황폐한 것 같기도 한 감정이 생기는데, 전쟁이라는 배경과 마르셀이 보고 느끼고 있는 것들이 하나로 이어지는 것 같다. 이제 마르셀이 찾아가는 시간은 멀고 아련해서 아름답게 채색될 수 있는 추억들이 아니라, 현실과 맞닿아 있어서 기억해 내는 것이 고통스러울 수도 있을 시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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